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대통령의 연례 국정연설과 출산 보건법 관련 논란

필리핀 정법모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2012/08/10

■ 지난 7월 23일, 예년처럼 필리핀의 아키노 대통령은 하원에서 국정연설을 수행했다. 이 연설에서 아키노는 과거 1년의 업적을 열거하고, 향후 국정과제를 조목조목 밝혔다.


- 의회 내에서는, 대통령의 연설 중간 중간에 의원들이 박수로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장외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5000여명이 참석한 시위가 열렸고, 의회 본관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95명이 부상당했다.
-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주로 부패 전력자에 대한 처벌이 더디고, 인권활동가나 언론인에까지 가해지는 초사법적살해에 대한 정부조사가 미진한 점, 중국과의 군사적 대치상황에 자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 정부의 경제정책이 고용 증대나 임금 상승이 아닌 외국기업 유치나 광산개발 등에 중점을 둔 점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 한편, 올해 아키노를 지지하는 측과 지지하지 않는 측 모두에서 촉각을 세우고 들었던 내용 중 하나는 '출산 보건 법안(Reproductive health bill)'관련 내용이었다. 


- 집권 초부터 아키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이 법안은, 공립병원에서의 가족계획 정보 제공, 빈곤층 대상 피임 알약 무료 배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실시, 혼인 신고 시 가족계획 관련 교육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세계보건기구(WHO)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의 임산부 사망률이 10만 명당 94명에 달해 인근 국가들에 비해서도 높다고 한다. 필리핀 정부에 의한 2011년 가족 보건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5년까지의 십만 명의 안전한 출산에 대한 임산부 사망 사례는 162건에 달한 반면, 2005년에서 2010년까지 에서는 22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루에 평균 12명이 출산과 관련하여 사망한다고 한다.
ㅇ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필리핀이 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실제 보편적인 출산 보건서비스는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필리핀 국내의 시민단체들도 필리핀에서 낙태는 금지되어 있지만, 민간 약물이나 불법 시술 들이 만연해 여성들이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ㅇ 하지만 전통적으로 피임에 반대해왔던 가톨릭 측은, 이 법안이 낙태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잉태하는 일을 인공적으로 막는다는 점에서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 논란을 의식하여 아키노 대통령은, 이 번 국정연설에서는 논쟁적인 '출산 보건'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책임 있는 부모역할(responsible parenthood)'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제대로 된 양육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녀 계획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직접적으로 인구조절과 관련된 언급은 삼갔다.


■ 이는 8월 7일 예정된, 하원에서의 법안 가부 투표를 앞두고, 반대파는 자극하지 않고, 의회에는 조속히 결정을 내려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이 법안의 투표를 목전에 둔 8월 4일, 에드사(EDSA) 거리에는 가톨릭주교들과 법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포함한, 만여 명이 운집하여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가난의 원인은 '인구'나 '생명'이 아니고, '부패'라는 점을 강조하고, '피임'이 ‘부패'(Contraception is corruption)라고 지적하였다. 집회에 참여한 빌레하스 주교는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필리핀의 젊은이와 미래를 위한 것이며 영혼을 헤치는 부패와 싸우는 것이라 강조하였다. 또한 필리핀 어에 '피임'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피임이 신에 반하는 일임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필리핀인으로서의 사람됨에도 어긋나는 일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역설했다
ㅇ 한편 8월 6일에는 이 법안에 찬성하는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러 그룹들이 모여 법안을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 이처럼 사회적으로 한층 가열된 법안 논쟁은 정치권 지형으로 불이 옮겨 붙은 형세다.


- 전직 대통령인 아로요 하원의원은 사법처리의 위기에서 요양을 이유로 조사를 피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나, 이 법안에 반대하는 가톨릭 주교 측을 적극 지지하면서 반대 세력을 규합하려 하고 있다.
ㅇ 반대표를 독려하고 있는 세력들은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양심과 신심에 따라 투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란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위기도 피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 8월 7일 예정된 투표에서는 1년 여간 진행되었던 의회 내 토론을 마치게 되고, 과반수의 찬성투표를 얻게 되면 이 법안은 일련의 수정을 거쳐 법안으로 완성되게 된다. 물론 이 법안이 유효한 법이 되기 위해서는 상원에서도 관련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ㅇ 법안에 대한 반대파들을 고려하여 애초 계획된 것으로부터는 논란이 되는 문안은 이미 수정이 되었다. 1-2명의 자녀를 갖는 계획이나, 초등학교5-6학년부터 성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은 수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ㅇ 한편 여론조사기관인 SWS(Social Weather Station)에 따르면 이 법안에 대해 82%의 국민들이 이 법안에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 8월 7일 예정된 하원투표는 결국, 예정보다 빠른 8월 6일 저녁 실시되었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된 배경에 대해 반대파들은 가톨릭의 반대집회 독려 등을 두려워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출석을 줄이기 위한 꼼수라고  의구심을 표현했지만, 투표는 실시되었다.
- 병원에서 나온 전 대통령 아로요 의원이나 권투 챔피언 파퀴야오 등도 반대표에 동참했지만, 결과는 200여 명이 넘는 의원의 찬성결정으로, 이제 이 법안에 대한 의회 토론은 종결되었다.


■ 논란의 이 법안은 한 고비를 넘게 되었지만, 상원 의원 중에 공개적으로 이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이 안이 법으로 확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도. 사실 필리핀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와 유사한 법안들이 제안되었으나 번번이 가톨릭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올해 국정연설 중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이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실현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 참고자료


- 가톨릭뉴스 7월 24일자 (korea.ucanews.com)
- 마닐라 블레틴 7월 30일자(www.manilabulletin.com)
- 야후뉴스 southeastasia 7월 27일자 (ph.news.yahoo.com)
- 인콰이어러 7월 28일자(www.inquirer.com)
- 필스타 8월 5일자 (www.philstar.com)
- AFP 뉴스 8월 5일자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