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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말레이시아 독립 55주년 기념일(2012년 8월 31일)에 떠올리는 ‘하나의 말레이시아(1Malaysia)’와 가수 수디르만(Dato

말레이시아 홍석준 목포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인류학과 부교수 2012/09/05

■ 매년 8월 31일은 말레이시아의 독립기념일이다. 올해 8월 31일은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 지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57년 8월 31일, 뚠꾸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이후 초대 총리가 됨)은 쿠알라룸푸르의 머르데까(merdeka) 광장에서 “머르데까!, 머르데까!, 머르데까!”라고 세 번 외치면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 이 날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피부색뿐만 아니라 종교, 문화, 관습 등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말레이인, 화인(華人), 인도계, 그리고 오랑 아슬리(orang asli)라 불리는 여타 원주민 소수종족들은 하나의 국민국가(nation-state)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독립 선언 12년 만인 1969년 5월13일에 발생한 5.13 종족폭동을 통해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종족간의 화합과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말레이시아라는 국민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 하에서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독립 55주년 특집으로 ‘사뚜 말레이시아(1Malaysia, Satu Malaysia)’, 즉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노래한 국민가수로 널리 알려진 다똑 수디르만 하지 아르샤드(Dato' Sudirman Haji Arshad, 이하 줄여서 수디르만 Sudirman)과 그의 노래를 국민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불러내는 시도를 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 말레이시아의 엘비스 프레슬리, 말레이시아 국민가수, 노래하는 변호사, 노래하는 사업가 등 수많은 애칭으로 불렸던 수디르만은 ‘하나의 말레이시아(1Malaysia)’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말레이시아 국민통합 캠페인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하나의 말레이시아‘ 정신을 노래로 주창하던 가수로도 유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시대를 앞서간 가수로 알려져 있다.


■ 1992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수디르만은 올해로 추모 20주년을 맞았는데, 그가 태어난 날인 6월 3일을 기념하여 2012년 6월 3일에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위성방송국인 아스트로(Astro)에서는 시나르 에프엠(Sinar FM), 에라 에프엠(Era FM), 하리안 메뜨로(Harian Metro), 더 스타(The Star) 등과 협력하여 쿠알라룸푸르 세따빡(Setapak)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추모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는 종족집단 간 화합과 조화, 말레이시아에 대한 애국심을 노래하던 수디르만의 노래와 정신, 그리고 사상을 젊은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주창하는 수디르만의 노래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피부’라는 뜻을 지닌 ‘꿀릿(kulit)’이라는 노래를 들 수 있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는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피부색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의 말레이시아’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뜻과 이를 위한 그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노래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음악과 노래를 통해 말레이인과 화인, 인도계, 그리고 기타 소수종족들의 화합과 조화, 나아가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위한 국가통합과 종족집단 간 화합의 의미를 강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 이런 이유로, 그는 단지 유명한 한 명의 연예인이나 가수로 치부될 수 없었으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주창한 수디르만과 그의 노래와 공연, 퍼포먼스 등을 통해 ‘하나의 말레이시아’ 정신을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수디르만의 노래 중에서 ‘땅갈 띠가뿔루 사뚜 오고스(Tanggal 31 Ogos, 8월 31일에)’, ‘떠가깐 븐데라 끼따(Tegakkan Bendera Kita, 우리의 국기를 높이 올려라)’ 등과 같은 노래는 평소에도 자주 불리곤 하지만, 특히 독립기념일에는 젊은 세대에서조차 거의 예외 없이 사랑받는 노래로 알려져 있으며, 대형 쇼핑몰이나 슈퍼마켓 등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래로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수디르만’ 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1986년 4월 15일 쿠알라룸푸르의 초우 킷 로드(Chow Kit Road)에서의 공연이라고 한다. 수디르만은 그날 밤 구(舊)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초우 킷 로드에서 야외콘서트를 열었는데, 약 10만여 명의 관중이 모여들어 쿠알라룸푸르 일대의 교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 당시 한 현지 언론은 “한 가수의 열광적인 공연이 사람들에게 일생일대 최고로 기억에 남을 저녁을 선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의 주제가였던 ‘초우 킷 로드(Chow Kit Road)’는 현재까지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날의 공연은 이 노래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수디르만은 말레이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과 소통, 감수성, 근면, 그리고 애국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노래에는 종족성(ethnicity), 언어, 종교, 출신 지역 등을 뛰어 넘어 ‘말레이시아 국민’, ‘말레이시아 문화’, ‘말레이시아 사회’ 등을 포괄하는 공통의 정체성을 위한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그는 생전에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끼따 달람 멍하다삐 꺼히두빤, 장안 따루 빠가르 멍얼링기 끼따(Kita dalam menghadapi kehidupan, jangan taruh pagar mengelilingi kita)”, 풀이하면, “우리가 삶을 잘 꾸려나가고자 한다면 우리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 그의 사망 20년이 지난 지금, 말레이시아 국민은 그가 남긴 종족 간 통합과 조화, 한 마디로 ‘하나 되는 말레이시아’라는 문화적 유산에 대해 기억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 지금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말레이시아(1Malaysia)’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1969년 5월 13일에 발생한 종족폭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가 진정한 의미의 ‘하나의 말레이시아(1Malaysia)’가 되기 위해선 수디르만의 노래 가사나 그의 말처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내의 소수종족들을 차별하거나 종족 간 ‘울타리를 치는 일’에서 벗어나”,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위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파악하여 이를 즉시 실천에 옮기는 일이 아닐까.


※ 참고자료

-http://thestar.com.my/columnists/story.asp?file=/2012/8/31/columnists/roamingbeyondthefence/11938324&sec=roamingbeyondthefence
-http://thestar.com.my/news/story.asp?file=/2012/6/4/nation/11413060&sec=nation#134667939742123&if_height=526
-http://thestar.com.my/news/story.asp?file=/2012/9/1/merdeka/11950694&sec=merdeka
-http://thestar.com.my/news/nation/default.asp?pdate=/2012/6/4
-http://www.koreanpress.co.kr/
-http://kore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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