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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위협받는 인도네시아 시민의 자유

인도네시아 정은숙 Fairfield University 조교수 2012/06/28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이슬람, 민주주의, 모더니티(modernity) 그리고 여성 권리가 공존할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인도네시아로 가보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연설이 보여주듯이 인도네시아는 1998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 하는데 노력을 해왔다. 인구의 대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떠올랐으며 국제사회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상반되지 않음을 보여준 실례로 인정하고 현재 정치변혁을 경험하고 있는 아랍 국가들의 모델로서도 거론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지속되는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과 탄압이 인도네시아의 전면적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소수 종교 및 종족의 권리가 심각하게 짓밟히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가 빈번하게  위반되고 있다. 소수 종교 중에서도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아흐마디아 (Ahmadiyah)에 대한 폭력은 위험수준을 넘어섰다. 아흐마디아는 인도에서 발전한 종교로 이슬람과 유사하지만 선지자 무하마드 이후에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 (Mirza Ghulam Ahmad)를 마지막 선지자로 믿고 있다. 아흐마디아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슬람의 일부라고 보지만 이슬람은 아흐마디아를 이단 종교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아흐마디아를 따르는 사람들은 50000-80000명이나 되고 비공식 센서스에 따르면 이보다 더 많은 인구가 아흐마디아를 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서부 자바와 북부 수마트라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오랫동안 인도네시아에서 공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아흐마디아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이 예배를 보는 모스크가 공격당하는가 하면 특히 작년 2월에는 서부 자바에서 세 명의 아흐마디아 추종자들이 살인을 당했고 거기에 있었던 카메라맨이 이 사건을 비디오에 담아 유투브(Youtube)에 올리면서 인도네시아 전역과 외국에 까지 보도되었다. 하지만 사건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가담한 12명의 무장 세력들이 재판에 회부되기는 하였지만 4-6개월간의 감옥 형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즉 인도네시아 정부는 살인 폭력에 대하여 면죄부를 준 셈이다.
 
아흐마디아 이외에 다른 소수종교들도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다. 몇 달 전 중앙 자바 도시인 솔로(Solo)에서는 교회에서 이슬람 광신자의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으며 자카르타의 교외 브까시(Bekasi)에서는 시장이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압력을 받아 “zero-church policy(교회 제로 정책)”을 펴고 지역의 교회들을 강제로 문을 닫게 하는 사례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나 결사의 자유에 대한 위협도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스마일 만지 (Ismail Manji)는 캐나다 출생으로 페미니스트 무슬림 여성작가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해서 그녀가 집필한 책 ‘알라, 자유 그리고 사랑’에 대한 북 투어를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에서 열었는데 이슬람 지지자 전선(Islamic Defenders Front)과 같은 과격 이슬람 조직들의 폭력과 위협으로 모임을 강제적으로 끝내야 했다. 유사한 예로 올해 6월에는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 (Lady Gaga)가 자카르타에서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레이디 가가가 동성애를 미화하고 도덕성을 문란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 이슬람조직들의 위협 때문에 콘서트가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에서의 문화 활동 검열제도는 정부가 아닌 과격 이슬람조직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민주화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시민의 자유가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부의 미온적 대응이 연이은 폭력과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강한 정부임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격 이슬람세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취약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슬람 지지기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슬람 과격주의자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회유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급진적인 이슬람 세력들은 그 위세를 더욱 넓혀가고 소수 종족들은 차별과 탄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흐마디아의 경우 정부가 아흐마디아는 이슬람이 아니고 이단종교라고 규정함에 따라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아흐마디아 추종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일종의 정당성을 마련해 주었고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가벼운 형량으로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에 반해, 파푸아와 몰루카 섬 등에서는 소수 종족들이 데모를 통해 독립을 요구였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고 데모에 참가하는 시민들은 반역죄로 징역형을 받고 있다. 일관성 없는 소수 민족에 대한 정책은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둘째, 대다수 이슬람 단체들의 침묵과 수동적인 대응 또한 문제다. 인도네시아는 온건적이며 중도적인 이슬람조직들이 많이 있다. 엔우(NU)와 무하마디아 (Muhammadiyah)와 같이 일세기를 이끌어온 이슬람 대중단체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생겨난  와히드 연구소(Wahid Institute)와 마아리프 연구소(Maarif Institute) 등 배타적 이슬람을 버리고 타종교와 타 종족에 대한 인내와 이해를 기르고 다원주의 (pluralism)와 포괄적 민족주의 (inclusive nationalism)가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에 바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에게 폭력을 자제하고 평화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하지만 차별과 폭력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시민사회 단체들의 연계를 통한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 경찰 권력이 종교적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독립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련의 폭력 사태에서 경찰은 방관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한 경찰세력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며 결단력 있는 조치를 내리지 못했다. 소수자를 보호 할 수 있는 경찰이 없이는 폭력을 막을 수는 없다.
 
차별과 폭력,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그 나라의 특정종교나 문화 때문이 아닌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와 정책을 바꾸지 않고서는 변화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가 그동안 이루어왔던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인도네시아 정부와 온건적이며 중도적인 이슬람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시민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폭력으로 소수민족을 괴롭히는 어떤 조직들도 합법적 절차에 따라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도네시아 국민들 절대다수가 온건적이라 할지라도 정부와 시민단체가 침묵하고 있다면 소수의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이 법을 무시하고 그들의 손에 소수민족의 인권이 좌지우지 될 것이다. 과격한 이슬람단체들이 정부를 대신해서 국민들을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들에 대하여 강력한 대응과 처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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