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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이집트 시민혁명과 새로운 중동진출전략

이집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11/03/10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물결이 이집트 정권을 수장시키고 리비아와 예멘의 사막을 적시고 있다. 당장 리비아와 예멘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버티기’ 전술을 취하고 있지만 카다피와 살리흐 정권도 풍전등화 상태에 놓여있다. 시민혁명의 높은 파도는 다른 아랍 국가들로 넘쳐 흘러들어가고 있다. 알제리, 바레인, 모로코, 팔레스타인, 요르단, 수단 등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아랍권 민주화 열풍은 단순한 정치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상혁명으로서 아랍인은 물론 더 나아가 제3세계 권위주의 체제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구조를 바꿔놓을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리더가 없는 혁명’을 성공시켜 나가고 있다. 정보통신 수단을 손바닥 안에 가진 개인들이 모여 정권을 바꾸어 놓은 ‘새로운 틀의 21세기 혁명’이다. 과거의 혁명과 같이 권위주의에 도전하기 위해 조직력은 물론 물리력까지 갖춰 장기간의 준비와 대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민주화혁명이 중장기적으로 산유국 왕정체제에까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의 혼란으로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3월 말경까지 리비아 사태가 안정되지 않으면 향후 유가는 한동안 100달러 이상 150달러 이하로 유지될 전망이다. 저강도 고유가의 지속 현상이다. 리비아의 원유생산량은 하루 160만 배럴 정도로 전 세계 생산량의 1.7% 전후다. 세계 석유공급에 큰 영향을 주는 양은 아니지만 문제는 리비아의 원유가 가진 특성이다. 리비아의 석유는 저황경질유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이 리비아의 원유를 주로 수입한다. 북해산 브랜트유도 저항경질유이기 때문에 대부분 유럽의 정유시설은 경질유에 맞춰져 있다. 사우디가 증산을 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중동의 석유는 중질유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수입하기 적절치 않다. 결국 3월말까지 리비아 사태가 해결돼 정상적으로 원유수출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경질유 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경쟁이 가속될 것이다. 알제리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산 경질유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고유가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더불어 알제리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국한된 현상 아니다!


유가상승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번 아랍의 민주화혁명은 아랍경제의 틀도 크게 바꾸어놓을 것이다. 우선 그 배경에 있어서 생활고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집트의 경우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12.8%, 공식 실업률은 9.7%에 달한다. 실질 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 인구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30대 이하 청년층에 가장 많은 실업인구가 집중돼 있다. 혁명의 끝은 결국 경제개혁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튀니지도 전반적으로 이집트보다 지표상 약간 나은 상황이지만,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회경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경제 개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아랍권의 경제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사우디도 붕괴할 경우 유가가 200달러에 달할 것,’ ‘아랍권 정세 불안이 주식 시장 폭락으로 이어질 것’ 등의 중단기적인 여파에 집중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는 시각이다. 아랍 국가의 정권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경제 전략의 수정은 중동 경제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진출방안도 크게 전환점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우선 아랍 경제의 특성, 즉 ‘지대(地代)추구형 경제(rentier economy)’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아랍의 산유국은 석유가 바로 지대, 즉 렌트다. 월세를 받듯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국부를 창출해 왔다. 산유국의 경우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 및 가스다. 유전과 가스전을 소유한 국가, 정부, 혹은 왕족이 최대 생산자이자 최대 분배자다. 아랍 경제가 국가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이집트, 튀니지 등 저산유국과 비산유국 경제도 지대추구형 경제의 틀에 묶여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산유국에서 일해 번 해외근로자 송금은 비산유국 경제에 중요한 외화획득원이다. 또 아랍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의 최대 투자세력이다.
결국 정권의 붕괴나 정치체계의 변화는 경제구조 및 제도를 뒤집어 놓게 된다는 것이다. 유전 및 가스전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고 여기서 나온 오일머니의 분배방식도 바뀔 것이다. 혁명 정부는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보다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분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세계 최대 프로젝트 발주지역으로서 아랍권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아랍권은 그동안 석유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는데 전력할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비교적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 육성에 나설 것이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했던 대외 투자보다는 국내투자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무역을 통해 외국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에 나설 것이다. 왕족, 독재 군부의 최고 권력자가 발주와 낙찰을 결정하던 관행에 벗어나 보다 투명한 의사결정과정을 마련할 것이다. 이번 아랍권의 민주화사태가 풀뿌리 시민혁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업주의 마인드도 변화할 것


국가 경제의 틀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아랍인의 투자마인드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아랍인들은 역사적으로 제조업 보다는 현금회전에 빠른 상업에 의존해 왔다.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농토가 부족한 사막지역에서는 부를 축적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상업에 의존해야 했다. 목축을 제외하고는 상업이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다.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농토를 바탕으로 한 봉건제, 지주제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중동에 세계적인 제조업 회사 혹은 유명한 브랜드 네임 하나만 들어보자. 답은 ‘없다’이다. 아랍권 나라 수는 22개다. 또 그동안 아랍의 산유국이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생각해보면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투자시설을 사들여올 외화가 없어 사정하듯 국제사회에 돈을 빌려 산업을 일으킨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이 충분한 아랍권이었지만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극히 미약했다.
아랍인의 경제적 사고에는 ‘머천트(merchant) 마인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상인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비하한다면 ‘장사꾼’ 마인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꼭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다. 페니키아인들처럼 이슬람 이전 시대의 사람들도 상업을 중시해 왔다. 중동 출신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장사와 고리대금에만 치중하는 민족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문제는 독립국가 형성 이후에도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 상인정신이 아랍 대부분 국가의 경제와 경제인의 마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장사에 익숙한 사람이 제조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계약만 한 건 잘 성사시키면 몇 십 퍼센트를 남길 수도 있고, 사재기를 잘하면 몇 배의 이익도 올릴 수 있는 것이 장사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자본으로 할 수 있을뿐더러 제조업에 비해 관리도 쉽다. 국내외 인맥을 잘 구축해 계약 혹은 구매만 잘하면 된다. 중동의 무역상 중 고위관리 출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어느 정도 인맥을 가진 사람들은 은퇴 후 무역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 부지를 구입하고, 생산시설을 짓고, 인력을 관리하고, 품질을 높여야 하고, 최근에는 판매까지 신경써야하는 제조업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아무리 잘해도 수익 발생에 5년에서 10년씩 걸리는 제조업에 중동 경제인들은 투자하기를 꺼린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중동의 오일 머니는 부동산 사업, 주식시장, 채권, 서비스업에만 집중됐다. 모두 자금회전이 빠른 분야들이다.
산업과 더 나아가 경제 전반에 있어서 아랍의 저발전 배후에는 위와 같은 상인정신이 존재한다. 이렇다 보니 과거 수십 년간 엄청난 오일 달러에도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일부 왕족들이나 군사정권 실권자들은 엄청난 돈을 해외 부동산 혹은 금융상품에 투자하곤 했다. 최근 막대한 오일머니로 정부의 공공부문 투자 노력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민간부문이 여전히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장사와 서비스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물론 21세기에 꼭 제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동은 지나칠 정도로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다양화, 다원화할 중동 경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이번 시민 봉기의 봇물은 1980년대 말 동구권 민주화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정 산유국들로 확산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도 중장기적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문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에너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서방의 대중동 전략에 편승해 왔다. 중동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간주하고 획일적인(monolithic) 진출 전략의 틀이었다.
그러나 이번 민주화사태이후 발생할 중동의 변화에 끝은 다양화와 다원화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다양한 정치 및 경제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정권이 바뀐 나라는 물론 당장은 위기에 처하지 않은 산유국들도 적지 않은 변신의 노력을 거듭할 것이다. 나라마다 다른 정치체제 및 민주화정도가 나타날 것이고, 경제정책 또한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한 국가 내에서도 다원화한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될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 최고 엘리트 혹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 결정하던 사안들이 의회, 시민사회, 이익단체 등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을 것이다.
석유 수입, 플랜트 수출 등 아랍 및 이슬람권과 깊숙한 경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국가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동반자적 관계를 통해 진정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진출의 틀을 짜나가야 한다.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수요에 맞춰 우리 기업도 이제 중동 전체로의 단순한 상품수출 혹은 플랜트 수주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제조업에 있을 것이다. 조인트벤처를 통한 이 분야의 진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부터 아랍권은 본격적으로 제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의 기술력과 현지의 오일 머니를 결합하는 새로운 협력의 틀을 창출해야 한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의 진출 기회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발전, 담수화, 정유화학 등의 플랜트 발주도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복지와 생활수준 향상에 산유국이든 비산유국이든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멘, 수단, 시리아, 알제리, 이집트 등 그동안 서방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국가들에 대한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도 적극적인 투자로 참여해야 한다. 아랍권 정부는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석유 및 가스 자원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수를 해야 하는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중동에서 고전할 것이다. 그리나 중장기적 대책을 제대로 마련한다면, 위기와 혼란 속에는 더 큰 기회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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