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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이집트 시민혁명과 한국경제

이집트 홍성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 2011/02/21

이집트혁명은 “젊은 반란 (young revolt)'


메마른 사막에 단비대신 시민의 횃불이 불야성으로 무섭게 번지고 있다. 지난 1월 5일 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한 청년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시위가 처음 시작됐을 때 세계 언론이나 중동의 각국 정부들은 단순히 튀니지의 물가고와 실업난이 불러온 단순한 경제문제에서 비롯한 시위 정도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튀니지의 시위는 단시간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와 급기야 1월 14일 23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벤 알리 대통령이 하야하고 망명의 길을 떠나는 사태로 급진전되었다.
이에 고무된 주변 아랍-중동국가들의 시민들은 그동안 참았던 한(恨)을 쏟아내듯 거리로 뛰쳐나왔다. 중동에서는 친미주의 국가로 잘 알려진 이집트로 번진 불꽃은 삽시간에 카이로를 메웠고 시위 18일만인 2월 11일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중동 분석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짧은 시간에 진행된 그야말로 혁명(revolution)이었다.“재스민혁명”으로 불려진 튀니지의 혁명에 빗대어 이집트혁명을“코샤리혁명”이라 부르며, 이 함성은 이제 북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의 끝자락인 이란과  이라크까지 확대되고 있다.
“내일의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른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이집트사태는 이제 어느 지역으로 불똥이 튈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튀니지는 벤 알리 대통령 하야를 계기로 과도정부가 7월 중순까지 대선을 실시하기로 하였고, 이집트는 열흘내에 헌법개정안을 마무리하여, 2달내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며, 1981년 시작된 비상계엄령을 해제하고 6개월안에 선거를 치른다는 약속하에 시위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국가의 혁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세계 사람들을 경악시킨 것은 장기집권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점이긴 하지만, 진정 놀란 점은 시위의 속도(speed)에 있다.
장기집권으로 절대로 붕괴될 것 같지 않았던 이집트가 순식간에 무너진 이면에는 새로운 바람이 있었다. 그 것은 시대적 소명(召命)이었고 하나의 조류(潮流)였으며 세계화(globalization)의 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집트 혁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1989년 동유럽혁명이 연상된다. 동유럽혁명은 걸프전 직전인 1985년 미하일고르바초프가 주창한“페레스트로이카”에서 비롯되었다. 그 여파는 베르린 장벽을 허물고 동서냉전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물결은 1990년 5월 예멘통일과 10월 독일통일을 가져오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념대립에서 화해의 시대를 열었다. 결국 사회주의 구(舊) 소련은 붕괴되고 1990년대 중반 새로 창설된 WTO체제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2001년 9/11사태는 신자유주의 발 빠른 행진에 채찍을 더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으로 이어지며 전세계는 알-카에다와 힘겨운“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한다. 그리고 모든 초점은“이란의 핵”문제로 맞춰졌다. 다시 말하면 이란에서 마주친 벽이 미국과 (러시아 대신) 중국이며 오늘날 G2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세계화의 장벽은 이제 이란을 축으로 마주치고 있다. 그렇기에 post-capitalism에 대한 실험무대가 걸프지역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이집트의 혁명은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사태는 분명히“혁명(revolution)'이었다. 일각에서 회자(膾炙)되는 민주화 욕구이며, 일종의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이나 시민혁명으로 부르기에는 아직 그 기반이 취약한 면이 많다. 이집트는 아직 민주주의가 성숙되거나 시민혁명을 가져올 만큼 근대화(modernization)가 성숙되지 못했다. 이집트혁명은 세계화가 가져온 산물이고 그 역할을 IT가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집트혁명은 분명히 컴퓨터가 가져다준 문자 그대로 '인터넷혁명(internet revolution)'이며, 젊은 청소년들에 의한“젊은 반란(young revolt)'이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한다. 이집트 혁명은 21세기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을 수 있다. 전세계의 기성세대들에 의한 구태의연한 삶을 거부하는 단면을 이집트 청년들이 보여준 것이다. 그 젊은 절규(絶叫)가 이제 막 사하라사막에서 불기 시작한 것이며, 서막(序幕)이 열린 것이다. 그 불똥이 어느 곳으로 튈지 정말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경제문제에서 정권퇴진운동으로


재스민혁명이나 코샤리혁명에서 시작은 경제문제로부터 출발했다. 높은 물가고, 실업률, 일자리부족 등이 주 요인이었고, 그 원인이 장기독재에 따른 부패만연에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의 경제문제는 장기집권에서 오는“부의 집중현상”에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대부분 장기독재정권으로 얼룩진 중동전역에 정권퇴진운동이 급물살을 탄 것이다. 이집트혁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 아랍국가로 확대되고 있다. 마그레브의 알제리, 리비아에서 아덴만의 예멘을 거쳐 걸프 산유부국인 바레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란과 이라크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집트 혁명이 단순히 기아나 빈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예를 들면 바레인의 지난해 1인당 GDP는 40,000달러이며, 쿠웨이트는 51,700달러, 사우디아라비아는 24,000달러로 명실공히 산유부국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던 시민들이다. 그들이 이번 물결에 합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혁명의 여파는 단순한 경제문제라기 보다는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이다. 더욱이 이라크 민주화를 위해서 미국은 엄청난 전비와 희생을 치렀다. 10여년의 세월에도 이라크에서 민주화는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이라크 국민들도 이번 기회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게 패쇄적이라던 이란도 함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진행중인 이집트의 혁명은 민주화운동이라기 보다는 분명히 새로운 세계를 향한 새로운 절규이다. 그래서 젊은 반란인 것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매스미디어의 역할이다. 과거 걸프전때에는 CNN이 전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2003년 이라크전쟁시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9/11사태이후에는 카타르의“알-자지라(Al-Jazeera)”가 등장하여 알-카에다와의 전쟁을 독점적으로 중계했다.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트위터나 스마트폰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모바일혁명”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아무튼 매스미디어가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공할만하다. 그 장점은 속도(速度)에 있으며, 여기에 동영상이 함께한다는 점이 큰 파괴력을 갖는다.
이제 젊은이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보다는 가상세계에 관심이 더 많다. 세계의 젊은 세대들의 불평과 불만은 SNS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순식간에 전세계에 파급된다. 21세기의 젊은 세대는 미사일보다 무서운 개인화기인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소셜 네트워크시스템(SNS)을 통해 동맹군을 불러 모은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신무기 앞에는 무기력할 뿐이다. 그래서 전세계 지도자들이 두려워하고 있고, 아랍-중동의 지도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동의 사막에서 불붙은 열기는 중동에서 머물지 않고 그 영역을 초월하여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의 높은 산맥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간다. 다시 말하면 중동의 사막을 넘어 2002년 설정된“악의 축 (Axis of evil)󰡓국가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민주화 열기는 리비아-예멘-시리아-이란-북한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띠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는 글로벌리즘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저항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 문제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까지 연결된다면, 신세계질서는 혼미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도 있다. 그 이면에는 항상 에너지자원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기에 선진강대국들은 파국을 면하려들 것이다. 이 점이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향후 대응방안에 귀 기울여야  하는 대목이다.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TF팀 필요


현 상황에서 볼 때 중동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은 국제유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국제유가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에서 3-4번째로 원유를 많이 수입하는 한국, 특히 중동의존도가 80%를 넘는 상황에서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만일 이란에서 시위가 격화되든지, 불행하게도 이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이어진다면 국제유가는 다시 요동을 칠 것이다.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 애석한 상황이다.


국제유가는 한국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변수이다. 세계 10대 교역국인 한국경제의 엔진은 수출이다. 수출활성화는 바로 국제유가와 직결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집트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1월31일 두바이유는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인 배럴당 94.57달러를 기록했으며 2월1일과 2일에도 각각 95.71달러와 97.11달러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수에즈운하의 불안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전세계 물동량의 약8%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한다. 2009년에는 선박 3만4천척 이상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고 이중 2천700척은 2천900만배럴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원유의 40%이상이 지 지역을 통과한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봉쇄는“제3의 석유위기”를 불러 올 수 도 있기에 우리는 중동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중동지역은 2010년 수주실적 700억달러 누적수주액 2,500억 달러를 기록한 한국의 해외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현재 중동지역에서 공사가 진행중인 현장에서도 조업중단,  파업 및 분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월 17일에는 리비아 동북부에 있는 데르나시(市)에 진출한 모 건설업체의 공사 현장에 현지 주민 200여 명이 몰려와 현장을 점거하여 공사 현장의 자재 창고가 불타는 등의 재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1월 14일에도 현지 주민들의 습격으로 고가의 장비가 약탈되어 약 200억원 재산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 여기에 정권불안정으로 인한 수주계약과 이미 계약한 수주물량에 대한 정상적인 조업도 불안하다. 이 같은 여파는 전반적으로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한국은 중동시장의 수출비중이 약6%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원자재를 중동에서 수입해야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원자재 인상이 예견되고 있고, 특히 지난해 이상기후 현상으로 중동 및 아프리카지역의 커피, 코코아, 설탕 등의 원자재 가격인상은 한국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동지역의 혼란한 틈을 노려 알-카에다의 준동이 심화되고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이 기승을 부린다면, 한국경제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전체 수출입 물동량의 약30% 정도가 홍해의 아덴만지역을 통과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경제에 원가부담요인으로 작용하는 소말리아해적의 선박납치인데, 그 활동영역이 확대된다면 한국경제에는 매우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보며 평화를 기원할 수는 없다. 정부건 기업이건 장단기 시나리오를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기업-민간(현지교민)으로 구성되는 TF팀이 조속히 마련되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능동적 대응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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