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와 인도네시아 정치
인도네시아 김형준 강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화인류학과 교수 2012/08/20
지난 7월 11일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가 치러졌다. 2014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사 중의 하나이고 주요 정당 모두가 후보를 공천했다는 이유로 인해 이 번 선거는 정치적 변화의 흐름을 엿볼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몇몇 특징은 이번 선거가 과거와의 정치적 연속성 및 변화의 가능성 모두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2년여 남은 대선과 총선의 전개 양상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09년 대선과 총선, 그 이후의 지방 선거와 같이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수많은 ‘소규모’ 문제가 보고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커다란 잡음 없이 선거가 진행되었다. 다른 선거처럼 이번 선거에서도 선관위의 선거인 명부 작성은 부정확해서, 선거 자 이름 중복, 오류 혹은 미 등제, 사망자 포함과 같은 문제점이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이처럼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할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선거에서와 같이 선관위는 이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한 채 명부 수정 없이 선거를 강행했다.
금권 선거는 더 이상 부정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로서 이번 선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금권 선거 방식은 투표 직전 유권자에게 돈 봉투를 돌리는 방식으로부터 선거 유세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추세에 놓여 있는데, 금품 수수가 정상적인 행동으로 이해될 정도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 민주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론되어왔다. 이번 선거 역시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함으로써 ‘돈=선거’라는 공식을 강화시켰다.
선거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만, 동시에 기성 정당이 큰 위협 없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던 기제이기도 하다. 이 번 선거에서도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기성 정당을 중심으로 합종연회의 과정을 거쳐 후보가 공천되었지만, 새로운 변화의 흐름 역시 강력하게 나타났다. 제1야당인 인도네시아투쟁민주당(PDI-P)이 조꼬위(Jokowi)라는 애칭을 가진 죠꼬 위도도(Joko Widodo)를 주지사후보로, ‘아혹(Ahok)’이라는 애칭의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Basuki Tjahaja Purnama)를 부지사 후보로 선택한 후 그린드라(Gerindra)당과 함께 공천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몇 가지 면을 찾아볼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자카르타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신진 정치인으로서, 이는 PDI-P의 공천 과정에 과거와는 다른 동학이 개입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즉, 대규모 정치헌금을 기탁할 수 있는 후보가 아닌 참신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젊은 후보를 선택하였다는 사실은 PDI-P가 개혁적인 신인 정치인의 승리 가능성을 후보 선택에 있어 주요 요소로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조꼬위는 자바 중부 솔로(Solo)의 시장으로서, 2005년 시장에 당선된 후 참신하고 개혁적인 행보로 인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다. 東벌리뚱(belitung Timur)의 도지사를 역임했고 이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아혹’역시 도지사 시절 개혁적이고 청렴한 행보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로서 조꼬위와 흡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젊은 세대의 개혁적 인물이 공천되었다는 사실은 기존의 금권정치와는 상이한 패러다임을 PDI-P가 수용하려 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변화의 흐름은 부지사 선정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아혹’은 골까르(Golkar)당의 국회의원인데, PDI-P와 그린드라당이 그를 부지사 후보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참신한 후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일정정도나마 이들 정당에 의해 수용되었음을, 또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당의 공천을 수용했다는 사실은 기존 정당정치의 틀을 뛰어넘어 정책에 기반을 둔 정치적 행보를 선택할 환경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PDI-P의 공천 과정에서는 구태의연한 정치적 행보 역시 찾을 수 있었다. PDI-P는 단독 공천 대신 그린드라당과의 연합 공천을 선택했으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후보에 대한 최종 제가를 그린드라당의 당수인 쁘라보워 수비안또(Prabowo Subianto)가 행했다. 이는 막강한 금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수비안또의 도움을 얻고자 PDI-P가 노력했음을 의미한다. 수하르또 정권하 PDI-P와 수비안또의 대립적 관계를 고려해보면, 이러한 행보는 PDI-P가 정치적 정체성이나 정책보다는 현실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도네시아 정치의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개혁적이고 실험적인 모습과 금권 중심적 모습 모두를 PDI-P와 그린드라가 연출했다면 집권 야당인 민주당(PD)과 다른 야당은 구태의연한 정치적 행보를 그대로 이어나갔다. 현직 자카르타 주지사인 PD의 파우지 보워(Fauzi Bowo)는 승리를 자신한 듯, 군부 출신의 나크로위 람리(Nachrowi Ramli)를 러닝 메이트로 선정한 후, 타정당의 연합 공천을 받고 이슬람 단체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골까르와 정의복지당(PKS)이 독자 후보를 제시하고, 두 명의 무소속 후보가 출마함으로써 최종 선거는 6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전체 유권자 중 63%가 선거에 참여한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선거는 조꼬위와 아혹의 승리였다. 현직 지사, 집권 여당 및 주요 야당의 지지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파우지-나크로위가 승리하지 못했음은 조꼬위-아혹 후보가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메시지에 자카르타 주민이 화답했음을 보여준다. 즉,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에서 벗어난 참신하고 개혁적이며, 구체적인 변화를 약속한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들이 기존의 정치적 지형을 변동시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꼬위와 아혹이 서민 밀착형 정책을 제시했으며, 서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의 캠페인을 벌렸고, 무엇보다도 이들이 시장과 도지사로서 변혁의 가능성을 입증하였다는 사실이 유권자에게 어필하였다는 점은 금권과 인간관계에 기반한 기존 정치판에 일정한 변화의 흐름이 유입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도록 한다.
조꼬위와 아혹 후보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과 파우지-나크로위 팀과의 결선 투표가 9월에 행해질 예정이다. 이 투표 결과는 2014년의 대선과 총선의 향방을 가늠해볼 중요한 지시계로서 작용할 것이며, 수도 자까르따라는 지역적 상징성으로 인해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가져오리라 예상된다. 수하르또 퇴진 이후 민주화 과정이 상당기간 지속되었지만 절차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재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9월 선거는 인도네시아 대중의 변화 욕구, 나아가 기성 정치인 주도의 금권적 정치 행태의 변화 가능성을 점쳐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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