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라오스 국경을 넘으며 두 나라의 현재를 보다

라오스 / 베트남 이한우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 2012/10/16

출발

 

2012년 8월 초, 미리 비자를 받기도 번거로워 비자 없이 하노이(Hanoi)에 있다가 체재기한이 다 되어 라오스로 나갔다 왔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한국인들에게 무비자 입국 15일 체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수도 비엥짠(Vientiane)으로 들어가, 남부 빡세(Pakse; Pakxe), 중남부 사완나켓(Savannakhet)을 거쳐 베트남 중부지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모두 육로로 다니고 싶었으나, 시간 제약으로 라오스 내 구간만 현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사완나켓에서 타기로 하였다. 사완나켓 도착 후 베트남행 버스편을 알아보니, 매일 아침 9시 VIP버스, 밤 10시 일반버스가 있었다. 그래, 다음날 아침 VIP 버스표를 사려 했지만, “버스가 망가져 내일 아침 버스는 없다”고 한다. 당일 밤 일반버스로 베트남행을 감행해보기로 했다. 표 파는 아가씨는 밤 10시 출발인데 한, 두 시간 전에는 터미널로 오라고 한다. “비행기 타러 공항 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일찍 오라고 하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9시쯤 가면 되겠지 하고 터미널을 떠났다. 사완나켓은 메콩강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라오스 제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몇 군데 프랑스풍 건물이 남아 있고, 거리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저녁 때 강 건너 태국 묵다한(Mukdahan)의 불빛을 바라보며 노천 까페에 앉았다. 맛있는 비어 라오(Beer Lao)를 마실까 하다가 사완나켓 특산 비어 사완(Beer Savan)을 마셨다. 한국 배우 한혜진을 빼닮은 라오 처녀가 권했기 때문이다. 맛이 괜찮았다.

 

9시쯤 사완나켓 버스터미널에 도착해보니 2층짜리 멋진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저 버스면 좋을 텐데 생각하며 물으니, 묵다한 가는 버스란다. 멋진 버스는 떠나고 나는 나무의자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10시가 가까워오자 황톳물을 뒤집어쓴 버스가 출발장으로 들어선다. 제대로 움직일까 할 정도로 낡아 도무지 타고 싶지 않다. 대안이 없으니 탈 수 밖에. 나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람들과 다투며 버스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등이 없어 온통 시커먼 분위기다. 버스 천정은 새로 철판을 댔는지,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다. 의자 밑은 짐들로 가득 차 다리를 뻗을 수 없다. 타고 보니 버스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대부분 베트남인들이고 라오인들이 몇 명 껴 있는 듯하다. 이들 외에 외국인은 나 혼자인 듯하다. 밤 10시 출발 예정이던 버스는 그 보다 5분 일찍 출발하였다. 출발시각도 지키네 제법이네 하며 가벼운 기대 속에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차는 큰 잡음을 내며 오르막길을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시속 60킬로미터를 넘은 것 같다. 잘 닦인 포장도로를 지나자, 곳곳에 팬 도로를 달리느라 차가 뒤뚱거리며 심하게 흔들린다. 좁은 차 안에서 짐들로 인해 다리도 뻗지 못하고 무릎을 접고 있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 불편해 이리 저리 틀어 보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다.


 

라오스 국경 넘기

 

사완나켓 터미널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새벽 4시쯤 댄사완(Daen Savan) 국경 앞에 도착하였다. 일부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고, 일부는 가게에서 야식을 먹으며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야식을 파는 가게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그들 사이로 일수가방 같은 걸 멘 환전상 아줌마가 돌아다닌다. 아줌마 가방 속에는 베트남 동(dong), 라오 낍(kip), 태국 바트(baht)화가 가득하다. 나도 1만2천낍을 3만동으로 바꿨다. 책자나 인터넷을 보면 라오스 국경을 넘을 때 2달러를 요구하는 불법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하여 내심 이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상황에 닥쳐 해결하기로 작정하였다.

 

여섯시가 넘자 기다리기 지루한 사람들은 걸어서 500미터쯤 떨어진 라오스 국경 출입국관리소로 앞 다투어 간다. 버스를 타고 늦게 관리소에 도착해보니 여권에 스탬프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창구 앞이 북적인다. 줄도 없다. 사람들은 여권에 2만낍을 끼워 넣어 창구로 들이밀고,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재빨리 여권에서 돈을 빼내고 스탬프를 찍기에 분주하다. 내가 새치기를 해야 하나 어쩌나 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베트남어를 하는 남자가 나에게 2만낍($2.5)을 내고 여권을 달라고 한다. 낍이 없어 베트남 돈 2만동($1)을 줬더니, 그가 제 여권과 함께 내 여권을 창구로 들이민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이게 누구 것이냐며 내 여권을 들어 보이는데 여권에 돈이 들어 있지 않다. 어쩐지 그 자가 내 2만동을 순식간에 제 주머니로 넣는 것 같았다. 나에게 돈을 받은 자에게 돈을 직원에게 주라고 하니 그가 겸연쩍어 하면서 2만동을 직원에게 건네자, 직원은 돈과 여권을 나에게 도로 주며 파란 티켓을 사오라고 한다. 티켓 창구에 갔더니 오버타임 차지로 2만낍을 내라고 한다. 그날이 일요일이었으니 따지기에는 명분이 약해 돈을 내기로 하였다. 낍이 없어 2만동을 내니 만동을 더 내란다. 그렇게 하여 파란 티켓을 받았는데 보니 오버타임 차지 1달러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은 오버타임 차지 티켓과 2만낍을 함께 여권에 끼워 넣는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끼우지 않고 여권과 티켓만을 출입국 직원에게 내밀자 그는 내 여권을 옆으로 밀어 놓으며 기다리란다. 모른 척 하고 이유를 물으니, 7시가 근무시작시간이기 때문이란다. 보니 6시 45분. 15분 기다리면 되니 그러겠다고 하며 버텼더니, 그 전까지 여권에 스탬프를 열심히 찍어대던 출입국 직원들이 일시에 모두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그 바람에 여권에 스탬프를 빨리 받으려던 베트남인들이 멍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15분 기다려 여권을 받았으니 어찌 됐든 “부패의 돈”을 내지 않는 데 성공한 셈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7,8분쯤 걸어 베트남 국경으로 들어선다.


 

베트남 국경 넘기

 

2달러 요구는 베트남 라오바오(Lao Bao) 국경에서도 늘 있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어, 일이 어찌 진행되나 궁금했다. 베트남 측 출입국관리소 건물은 라오스에 비해 훨씬 컸다. 출입국관리소로 가는 길목에 베트남인에게만 적용되는 몇 가지 항목의 수수료 가격이 벽에 적혀 있었는데, 얼핏 보니 몇 천동씩이었다. 그걸 다 합해도 2만동 정도였던 것 같았다. 입국창구에 가보니 줄이 길다. 눈치껏 짧은 줄로 옮겨가 기다리며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 5만동씩 끼워 넣어 여권을 내민다. 2만동이라고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들리는 걸 보면 경우에 따라 다른지도 모르겠다. 출입국 직원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지폐를 서랍 안으로 쓸어 넣고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다. 2만동을 끼워 넣은 어떤 사람은 직원이 제 여권을 옆으로 밀어제치며 한 소리하는 통에 당황해 얼른 5만동을 내민다. 이제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니 옆 창구로 가란다. 아니 이제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옆 창구로 가라니 화가 벌컥 났으나 참고 옆 창구에 서니, 창구 직원이 뒤로 가서 줄을 서서 다시 오라며 손을 젓는다. 화가 나 바로 옆에 있었다고 따지자,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가서 서라고 손을 휘젓는다. 이 자가 ‘군기’를 잡겠다는 건가? 어찌 할 방도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뒤로 가서 설 수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만 내밀자 군소리 없이 스탬프를 찍는다. 내 여권에 찍힌 무수한 베트남 출입국 스탬프를 보고 베테랑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 인상을 보고 아예 돈을 낼 작자가 아닌가보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던 베트남 입국절차는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위세부리는 관리들 앞에서 공손한 자세로 큰 소리도 내지 못하는 베트남 ‘인민’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두 나라 관계

 

사완나켓에서 탔던 버스를 다시 타고, 라오바오로부터 베트남전쟁 격전지였던 케산(Khe Sanh, 표준발음으로는 캐사인)을 지나고 동하(Dong Ha)를 지나 후에(Hue)로 나오며 두 나라 관계를 생각해본다.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에서 보니 두 나라 사람들은 쉽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자기 나라 어느 지방쯤 가듯이 국경을 넘는다. 라오스에서 출발할 때 버스에서 어떤 사람이 여권을 걷는데 여러 명이 냈고 그가 국경에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걸 보면,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베트남인 보따리 장사들인 것 같았다. 전체 인구로도 베트남이 라오스를 압도하니, 보따리 장사도 베트남인들이 절대 다수인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다량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트럭은 간간히 보이는데 베트남으로부터 라오스로 들어가는 편이 많은 듯하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사회주의 형제나라이다. 베트남이 형, 라오스가 동생뻘쯤 된다. 아직은 베트남의 입김이 라오스 전역에 미치고 있지만, 한편으로 베트남은 중국의 세력 확대에 촉각을 세우고 라오스를 계속 제 편에 두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두 나라는 2012년을 “베트남-라오스 우의 단결의 해”로 정하고 여러 행사를 벌이고 있다. 두 나라 관계가 우호적인 건 좋은 일이다. 겸하여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도 조금은 견제할 수 있으니. 하지만 우호를 표방하며 우월한 지위를 지속시켜 보려는 내심이 비쳐 그대로 베트남이 미덥지는 않다. 출입국관리소 관리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위로 인해 두 나라에 대한 인상이 손상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