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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뇌물의 시장가격을 알려드립니다

인도 고홍근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교수 2012/12/10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11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인도는 10점 만점에서 3.1점으로 조사대상 182개국 중 95위로 2010년도의 3.3, 87위보다 더 하락하였다. 이 지수는 남태평양의 통가(Tonga), 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Swaziland)와 동률을 이루는 것이다. 세계 4-5위의 GDP 생산국으로서 211위와 162위의 국가들과 부패 지수가 동률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패에 있어서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닌 한국은 43위, 5.4점였다. 이 지수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한다면 인도는 한국보다 약 1.7배 더 부패한 나라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인도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 of India)는 10차 경제개발계획 보고서에서 ‘부패는 삶의 실상이고 방식이라고 강조할 수 있을 만큼...(중략)...가장 특징적이고 깊게 뿌리박힌 현상이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1차 경제계획보고서에서도 다양한 부문에서, 특히 대민기초 행정에서 부패에 대한 도전이 없는 한 ‘좋은 통치(Good Governance)’는 불가능하다고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다. 지난 11월 발간된 보고서에서 인도 계획위원회는 부패가 해마다 국민총생산의 1.5%를 잠식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도의 부패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인도 시민들도 동의하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Ipsos가 2012년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도인의 94%가 ‘부패가 전체적인 발전을 손상시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약 60%가 인도의 관료와 공무원이 부패했다고 믿고 있었다. 또 인도의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44%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0년부터 인도의 사회・정치적 최대 현안이 되고 있고 반부패운동의 상징인 록빨 법안(Lokpal Bill)이 발효된다고 할지라도 부패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응답자의 50%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부패의 원인을 윤리의식 부족, 고비용 정치구조, 불합리하거나 미비한 법과 제도, 부패 유발적 사회문화 등의 요인들에서 찾는다. 인도의 부패도 이 요인들 전부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 모든 요인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현학적이 되므로 부패 유발적 사회문화의 예를 간단히 들어 보겠다. 인도와 같이 구조적인 계급사회에서 사람들은 일정한 규칙과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를 강요당한다. 이 규칙과 기준 중 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은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업무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비업무적인 분야에서도 경쟁적으로 존경과 충성을 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업무와는 관계없는 상급자의 생일이나 디왈리(Divali)와 같은 명절 또는 그들의 자식의 결혼과 같은 행사에 동료들보다 더 많고 더 큰 선물을 하여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상급자를 ‘마마(Mama: 아저씨)’ 그리고 그의 부인을 ‘모씨(Mausi: 아주머니)’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만 현재의 지위를 유지함은 물론, 더 나가서는 승진을 기대할 수 있다. 일종의 거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관행은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부패의 고리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 할 수도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인도의 교역량이 연 200억불에 달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인도의 부패가 우리 기업들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을까? 앞에서 인용했던 국제투명성기구는 2011년 세계 주요경제국가 28개국을 대상으로 외국기업이 현지에서 경제활동을 할 때 지불해야 하는 뇌물의 지수를 나타낸 뇌물공여지수(BPI: Bribe Payers Index)를 발표했다. 인도는 이 조사에서 열 번째로 지수가 높은 나라로 평가되었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들이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 11월 인도 월마트(Walmart)가 재정담당 임원과 법률담당 직원 등 모두 5명을 뇌물공여혐의로 정직시키고 전면적인 자체조사를 시작한 것도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부패와 뇌물은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고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인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 중 일부 대기업들을 제외한다면 항상 갑(甲)의 입장에 선다고는 볼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을(乙)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때는 인도의 부패관행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부패행위에 가담한다는 양심의 가책이외에 ‘어느 정도의 뇌물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상, 뇌물이라는 것은 너무 적어도 문제가 되고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국인의 입장에서 현지국가의, 특히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뇌물액수의 적정선까지 파악하고 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난처한 경우에 참고할 수 있는 곳, 즉 ‘I Paid a Bribe(http://ipaidabribe.com/, 이하IPaB)'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밝혀두지만 IPaB는 부패를 장려하거나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웹사이트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부패운동의 성공적인 사례 중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8월 15일 등장한 IPaB는 인도뿐만이 아니라, 아마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시도, 즉 일반시민들이 자신이 경험했던 뇌물의 성격, 횟수, 방식, 유형, 위치, 빈도 그리고 액수를 직접 익명제보하게 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정보의 무한한 확산과 공유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반부패운동에 도입한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익명제보’라는 방법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다. 개인적인 원한, 모함, 날조 등에 의해 원래의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IPaB는 제보자의 익명성 보장과 함께 피제보자의 실명을 밝히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얼핏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생각되는 원칙을 IPaB가 고집하는 이유는 이 웹사이트의 목적이 특정 정부기관이나 관료에 대한 공격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패의 관행을 바꾸는데 있기 때문이다. 부패에 대한 막연한 질타나 무조건적인 처벌 요구보다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더나가서 ’왜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것을 방지할 대책은 무엇인가?‘를 시민과 정부가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 IPaB의 전략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이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8월 이래 이곳에 제보된 뇌물사례는 건수로는 21,900건, 액수로는 8,100만루피를 상회하고 있다. 또 중국을 비롯한 5개 국가에서 IPaB를 모방한 웹사이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IPaB의 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가장 최근에 제보된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2012년 12월 3일 ‘여권 발급을 위한 뇌물(Paid bribe to get passport)’라는 제목으로 뉴델리의 이 제보는 ‘내 여권 발급은 3년 동안 심사 중에 있었다. 매번 신청서류들을 갖추어 제출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처음 신청할 당시 3,000루피를 요구받았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었다. 3년 만에 나는 포기하여 4,500루피를 주었고 즉시 여권을 받았다.’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 여권을 빨리 발급받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요하고 그 시장가격(Market Price)이 우리 돈으로 90,000원 정도라는 사실이다.     

IPaB의 메인 화면 상단에는 ‘뇌물의 시장가격을 폭로한다.(Uncover the market price of bribe)'라는 배너가 있다. 뇌물에 대해 사람들은 그 인식과 현실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거의 모든 사람이 뇌물은 나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뇌물을 건네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해야 되거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경우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생긴다. 대부분의 경우 이 판단은 개인의 도덕적 기준과는 상관없이 현실적 상황에 따라 결론에 다다른다. 앞의 사례에서도 3년 동안 뇌물을 주지 않고 버티던 제보자도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들이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 머물고 친지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이야기의 수준에 불과하다면 인도의 부패가 개선될 전망은 점점 낮아진다. IPaB는 정보와 경험의 무한대적인 공유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사용하여 부패를 더 이상 개인적 경험의 영역 또는 가까운 친지들만이 공유하는 정보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IPaB의 등록된 사례들은 인도의 시민, 관료들뿐만 아니라, 영어의 독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전 세계의 누구라도 인도에서 오고가는 ’뇌물의 시장가격’을 알 수 있도록 하여준다. 이 사례들을 통해 인도인들은 뇌물 요구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식과 방법을 모색할 것이고 부패한 관료들은 자신의 행위에 위협을 느끼게 되며, 관료들의 부패를 감독하고 감시할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과 고급관료들은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부패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인도의 실상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이 적정한 수준의 뇌물 액수를 파악할 수 있는 부작용(副作用)도 이 IPaB는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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