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한-베 수교 20주년에 즈음하여: 회고와 전망

베트남 윤대영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 2012/12/28

  지난 2012년 12월 22일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1992년 12월 22일에 공식적으로 형성된 대사급 외교관계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왔던 것일까?
 남베트남이 ‘해방된’ 1975년 이후부터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관계는 단절된 상태였지만, 1980년 초반부터 일부 한국의 기업들이 베트남과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교역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또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정부도 그동안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익 우위의 대외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들에게 관계정상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이나 정부 모두 미국의 대베트남 경제재제 조치에 눈치를 보면서 베트남과의 관계를 서서히 진전시키고 있는 실정은 마찬가지였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을 계기로 양국 간의 접촉이 시작되었고, 그 후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전환되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제3국을 통해 1990년 4월부터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서, 한-베트남 외교관계가 단절된 후 15년 만에 한국 외교관 2명이 베트남에 공식 입국하여, 호 찌 민시에서 베트남의 주관으로 열린 임시 메콩위원회 제31차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1975년 4월 29일 주월 한국대사관이 철수한 이후 실로 14년 11개월 만에 베트남 정부 인사들과 자리를 같이 했던 것이다.

 이어서 1991년 10월에는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한국 각료로서는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의 응우옌 카인 부수상을 만나 양국 간의 현안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게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992년 4월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것을 합의하고, 한국은 10월 3일에, 베트남 측은 11월 24일에 각각 연락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이렇게 1980년 초반부터 재개된 양국의 비공식적인 혹은 공식적인 접촉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수교에 합의한 후 양국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활발한 접촉을 계속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응우옌 마이 껌 베트남 외무장관은 1993년 2월 1일에 한국을 방문했고, 껌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했으며, 한국이 베트남에 대외경제협력기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한-베트남 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3년 5월에는 보 반 끼엣 총리, 1995년 4월에는 도 므어이 당서기장, 2001년 8월에는 쩐 득 르엉 국가주석 등 베트남 측 인사들의 방한이 이어졌다. 또한 한국 측에서도 1996년 11월 김영삼 대통령,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2004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등 양국 주요 인사들의 상호 방문을 통해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거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왔다. 

 양국 간의 정치적-경제적 발전 이외에도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 수교 초기에 관심을 받았던 ‘라이따이한’ 문제, ‘한국군 포로’ 생존 문제, 베트남 현지의 노사분규 문제 등이 이슈로 등장했다가, 현재에는 양국 간의 활발한 인적 교류를 반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유학생, 다문화가정 등과 같은 현안이 한국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울러 1975년 이후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베트남 관련 연구들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현실적인 반독재투쟁과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과거에 읽히기 시작했던 소위 ‘운동권’의 베트남 관련 서적들이 수교 직후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다시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양국 간의 관계사 연구 이외에도 베트남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도 점차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학계의 관심은 보다 광범위한 한국 대중들의 베트남 ‘경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베트남 관광’과 베트남 음식 체험은 어느 정도 생활의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베트남의 방송을 통해 조금씩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의 드라마는 상당히 널리 보급되어 있는 실정이며, 이와 함께 태권도, 한국어 교육, 김치, 인삼, 대중가요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 문화도 베트남인들에게 꽤나 친숙해졌다.

 필자가 베트남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996년 당시에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양국 지도급 인사들의 상대국 방문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며, ‘월류’와 ‘한류’의 동시 다발적 확산은 각종 전파를 타고 친숙해지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양국 국민들의 사회적 교류는 향후 다문화가정을 중심으로 보다 분명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음 5년을 책임지게 될 새로운 정부와 이 정부를 이끌어 나갈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이러한 취지에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의 정책공약을 근거로, ‘외교’와 ‘다문화가족’ 부분에 대해 보완되었으면 하는 전망을 제시하여 한-베 수교 2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기존의 대통령들이 그러했듯이, 사실 동남아 지역은 임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교적 주목을 받곤 했다.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과의 전통적인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지역적 선후와 차별적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 자체에 대해 이전 정권에서 유지해 오던 정책 기조와 속도를 지나치게 완화시키거나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 대해 다소 편향적으로 치우쳐 있는 (통합민주당을 포함한) 새누리당의 지역적 인식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정책공약의 외교 분야는 ‘동아시아’, ‘아시아’, ‘동북아’, ‘남방 경제권’ 등과 같은 지정학적 용어를 명확한 근거나 기준 없이 서술하여 한국 사회와 현실적으로, 감성적으로 상당히 밀접해진 ‘동남아시아’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동남아’ 지역에 대한 실질적이고 전략적인 인식이 차기 정부의 외교 플랜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인으로 확정된 이후, 베트남 언론의 논평을 살펴 본 적이 있다. 양국 간의 불행했던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측의 기사들은 상당히 중립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의 개인 이력과 당선 과정을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지난 15년간 ‘대한민국’의 지도급 정치인 치고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와의 인연이 비교적 박(薄)했던 당선인이 보다 ‘통 크고 폭 넓게’ 소통하는 노력을 베트남에 기울인다면, 향후의 한-베 관계와 이 땅의 한-베 가정도 한층 진일보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