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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싱가포르의 비판적 영화감독 탄핀핀(Tan Pin Pin)

싱가포르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부교수 2012/10/04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해외 여행지 싱가포르. 그곳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 혹은 단어들이 떠오를까? 깨끗한 거리, 맛있는 음식, 부패하지 않은 공무원, 높은 국가경쟁력 순위, 리콴유 전 총리와 그 아들 리셴룽 현 총리, 엄격한 공권력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다소 파편적인 이러한 이미지와 단어들을 결합한다면 아마 “효율적인 정부가 성공적인 경제성장과 관광산업 발전을 이루었다”라는 식의 담론을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광객으로서 며칠간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싱가포르는 트로피컬한 이국적 분위기와 글로벌 도시의 편리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해주는 드문 장소일 것이다. 싱가포르강 주변에 즐비한 다채로운 외관의 레스토랑과 카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들 것이다. 게다가 영어 상용국인데다가 치안도 안전하다고 하니, 자식교육을 위해 이곳에 장기체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곳에 사는 싱가포르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그저 정부에 대해 불만없이 순종적이기만 할까? 사실, 인민행동당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공스토리 담론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그런 질문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그저 며칠간 휴식을 취하는 관광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무려 오십여 년을 집권한 여당이 지난해 실시되었던 총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유례없이 고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부를 일구어낸 싱가포르인들이 왜 이제야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게 되었을까? 아니, 그동안은 불평불만이 없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그동안 정부시책에 만족하던 시민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는 효과적으로 언론을 통제해 왔다.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은 국영 언론사 미디어코프(MediaCorp)의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발전은 정부의 언론통제가 과거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로가 보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공장(public sphere)이 만개함에 따라, 여당과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종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싱가포르 정부의 입장에서 조금 더 “공정”하게 말하자면, 정부여당은 좁은 국토, 부족한 부존자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1965년 독립과 함께 생존을 지상목표로 삼은 정부는 언론에 대한 탄압과 문화 및 여가활동에 대한 절제 혹은 억제를 당연시했다. 외화벌이를 위한 관광산업은 있어도 삶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의미를 반추할 문화적 공간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싱가포르 영화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단언컨대 이 칼럼을 읽는 독자 중 싱가포르 영화를 감상해본 경험이 있는 분은 손에 꼽히리라. 그만큼 싱가포르에서 문화예술은 억압되어져 왔다. 그렇다면 오늘은 한번 이 지면을 통해 싱가포르 영화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싱가포르가 1950년대만 해도 동남아 영화의 중심지였다는 점이다. 아직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싱가포르는 말레이어 영화 제작의 본산이었으며, 싱가포르에서 제작된 영화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지역의 거대시장인 인도네시아의 극장가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곤 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싱가포르 영화의 전성기는 종언을 고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대결 국면에 따라 싱가포르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 상영 금지조치를 받게 되었고,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탈퇴함에 따라 수많은 말레이계 영화인들이 쿠알라룸푸르로 이주하였으며, 대중오락의 총아로서 텔레비전이 부상함에 따라 영화산업 전체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산업화를 추진하던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영화는 잉여적인 존재로 격하되었으며, 정권의 검열은 영화 발전에 족쇄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싱가포르 영화의 양대 산맥으로서 위용을 과시하던 케세이-크리스 (Cathay-Keris) 영화사와 말레이영화 프로덕션 (Malay Film Production)은 1970년과 1967년에 각각 문을 닫게 된다. 결국, 1970-80년대에 싱가포르 영화는 길고긴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정부는 영화의 새로운 효용을 발견했다. 즉,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진흥은 글로벌 도시로 약진하던 싱가포르의 매력을 높여 궁극적으로 해외 투자자본의 유입과 인재영입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정부는 영화인력 양성과 영화관객 확보를 위해 1987년부터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Singapore International Film Festival)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는 국내 영화인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유인책으로 이 국제영화제의 단편영화 경쟁부문 수상작에 대해 상금과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싱가포르 영화인들의 출품작 숫자가 매해 30편 이상으로 급증했으며, 젊은 작가들은 이를 통해 장편 극영화를 제작할 심리적 동력과 물적 후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싱가포르 영화계는 인력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결국, 장편 극영화 3편이 발표된 2010년은 1970년대 이래 싱가포르 영화의 최다 제작연도로 기록된다. 하지만, 3편이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싱가포르 영화 환경은 여전히 척박하다. 게다가, 수행평가 방식의 영화제작 보조금 지급 관행에서 볼 수 있듯 실용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정부의 영화정책은 자유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적 발전에 오히려 저해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싱가포르 여성 영화감독 탄핀핀(Tan Pin Pin)의 영화제작 방식과 영화세계는 주목할 만하다.  탄핀핀은 정부의 간섭과 잠재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예술적,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가급적 덜 받고, 대신 비정치적인 다양한 소스로부터 영화제작비를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총 15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발표한 이 작가는 주로 근대화의 공식적, 지배적 담론에 가려지고 묻혀버린 싱가포르 민중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발굴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의 영화적 기법의 특징은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이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에 보다 쉽게 공감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고 짓밟힌 약자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관객에게는 싱가포르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을 권유하고, 결국 미묘한 방식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영화 Moving House (2001)에서 감독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정부가 추진한 도시재개발 사업에 따라 싱가포르 전역에 산재하던 묘지가 파헤쳐지는 과정을 드러낸다. 시신은 다시 화장되어 납골당에 모셔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친척들이 산소에 모여 제사지내고 정을 나누던 오랜 전통은 사라지게 된다. 영화 속 고인의 아들은 말한다. “... 맞아요. 우리나라는 작아요. 하지만 저기 수많은 골프장들은 뭔가요? 우린 이제 산소에 갈수도 없게 되었어요...” 싱가포르 정부는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해온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전통가치를 파괴한 것은 정부인 것이다. 이러한 모순의 노정을 통해 탄핀핀은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무분별하게 시행되어왔는지를 폭로한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Invisible City (2007)는 센토사 섬의 유물발굴 탐사단 이야기이다. 카지노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곧 들어설 예정인 이곳에서 살았던 중년의 싱가포르인들은 발굴된 장난감을 통해 유년시절로의 추억여행을 떠난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관광객 유치라는 상업적 목적에 따라 과거를 손쉽게 파괴하고, 셀프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을 통해 조잡한 키치 문화만을 양산하는 정부의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서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역사가 (싱가포르가 독립한) 1965년을 기점으로 해서 시작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곳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탄핀핀 영화 속 수많은 화자들은 잊힌 과거를 회상하고,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공식적 역사가 의도적으로 감추고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때로 안타까워한다.


최근 싱가포르는 BBC, MTV, 디즈니 등 여러 글로벌 미디어기업의 아시아 본부를 유치함으로써, 아시아의 미디어 허브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권위주의, 개발에 따른 전통의 파괴,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적 목소리를 전달할 언론과 미디어의 자리는 미미하기만 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탄핀핀의 영화 작업은 더욱 가치를 발하고 있다. 국가주의적 거대담론이 갖고 있는 오류와 공백에 주목한 그는 소외된 목소리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그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비판적 시각이 범죄시되거나 혹은 조롱받는 싱가포르의 정치사회적 지형에서 탄핀핀의 영화는 - 비록 예술적 표현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 중요한 대안적 목소리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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