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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파푸아의 반복되는 갈등, 그 해결책은?

인도네시아 김성민 Satya Wacana 대학 종교사회학과 박사과정) 2012/09/12

최근 파푸아 상황이 불안하다. 지난 수개월에 걸쳐 의혹의 총격살인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에만 민간인 포함 17명이 사망하고 6월에는 8건 이상의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등 지난 1월 이후 현재까지 최소 26건 이상의 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대상도 다양해서 마을 지도자, 오토바이 택시 운전수, 경비원, 학생 등 평범한 시민 뿐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 경찰, 군인들도 총격의 대상이 되었다. 살인사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에 주목해야 할 것은 독립을 위한 파푸아 인들의 무장단체인 자유파푸아조직(OPM: Organisasi Papua Merdeka 또는 Free Papua Organization)과 인도네시아 정부군 및 경찰 간의 반복되는 대결과 복수의 양상이다. 군인이나 경찰이 사망할 때마다 당국은 이를 OPM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범인 검거작전을 수행하여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사살했다. 그러면 그 이후에 또 군인이나 경찰을 겨냥한 습격사건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다. 경찰은 2011년 12월 OPM을 검거하기 위해 에두다 지역에 기동타격대를 보내어 검거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4명을 사살했고 그 이후 의혹의 총격살인사건이 급증했다. 지난 6월에는 경찰이 서 파푸아 민족위원회의 부위원장인 마코 타부니(Mako Tabuni)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사살했는데 경찰의 발표로는 그가 저항하며 경찰의 무기를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살했다고 했으나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집에서 나올 때 주위에 경찰로 추정되는 사복차림의 사람들에 의해서 저격당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가 최근 연달아 발생한 총기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보고 연행하여 수사하려던 중이었다고 한다. 8월 21일에는 빠니아이의 공항에 있던 경찰이 해안 쪽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접근하여 온 사람들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는데 OPM은 이를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지난 9월 11일 오전에는 자야뿌라에서 도로건설현장을 감독하던 한 경찰관이 5명의 무장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파푸아에서의 이와 같은 사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이와 같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이러한 대결의 양상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다.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파푸아의 갈등은 단순히 소수의 OPM의 무장 게릴라 활동과 이를 진압하려는 인도네시아 정부군 및 경찰 간의 대립구도로 볼 것이 아니라 독립, 복지 및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파푸아 인들의 의지와 파푸아에 지속적으로 주권을 행사하고 경제적 이해를 추구하려는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간의 갈등의 표상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파푸아는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다가 1963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간의 뉴욕협정의 결과로 유엔 임시집행 국으로부터 서 파푸아 지역의 지배권이 인도네시아로 양도되었으며 1969년에 자유선택행동(Act of Free Choice)이라는 주민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 주민투표는 자유로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군사력의 위협 속에서 중앙정부가 선발한 대표에 의해 행해진 투표로 대다수의 파푸아 지식인들은 이 투표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파푸아는 인종적으로도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인에 속해 대부분이 말레이 계열의 오스트로네시아 인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 상이하고 문화적으로도 이질성이 크며 비록 인도네시아와 동일하게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았지만 독립을 위해 함께 연대한 적이 거의 없어 인도네시아로 통합될 명분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편입이후 자카르타 정부는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환경을 파괴하여 파푸아 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자원개발로 얻은 부는 외국계 회사와 중앙정부에 귀속됨으로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인구 분산과 노동력 공급을 위한 대량 이주정책은 자바인들이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경제적 주도권을 잡으면서 파푸아 원주민과 이주민간 갈등을 야기 시켰으며, 가장 심각한 것은 군과 경찰이 치안을 이유로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 등을 자행하는데도 처벌받지 않는 관행이 반복됨으로 인해 파푸아 인들로 하여금 자카르타 정부를 불신하고 인도네시아 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게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파푸아 인들로 하여금 오히려 파푸아 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도록 만들었다.


OPM의 존재 및 지속적 활동은 바로 이 파푸아 인들이 중앙정부의 차별 및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OPM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1964년 결성하였고 그 이후 산발적이지만 꾸준히 독립운동을 지속해 왔다. 그들의 활동은 정부군과 경찰에 무력적으로 대항할 뿐 아니라 파푸아 인들의 민족의식 고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 즉 반인도네시아 전단 살포, 정치적 회합 주도, 서 파푸아 국기인 빈땅 끄조라(Bintang Kejora 또는 Morning Star)를 게양하는 등의 활동을 포함한다. 비록 OPM의 수가 인도네시아군의 화력과 숫자에 비해 훨씬 열악하여 그들이 바라는 바처럼 독립을 쟁취할 정도의 세력은 되지 않지만 결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대인도네시아 투쟁활동을 끊임없이 벌여왔으며 대외적으로는 망명한 파푸아 지도자들이 국제사회에 파푸아의 현실을 알리고자 노력해 왔고 또한 파푸아 주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OPM이 정부군과 정면 대치하여 상황을 전복시킬만한 세력은 아니지만 이들은 비대칭적 전술을 사용하여 군 초소를 급습하여 무기를 탈취하거나 길에 매복하여 공격하고 달아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정부군에 타격을 입혔다. 주목할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몇 개월 사이에 군 또는 경찰을 목표로 한 무장공격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사건발생이 전통적으로 OPM의 활동무대였던 뿐짝자야(Puncakjaya)와 같은 고산지대뿐 아니라 자야뿌라(Jayapura)와 같은 도시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보부장인 마르시아노 노르만(Marciano Norman)은 최근의 파푸아 폭력사태와 관련하여 OPM이 해외 조직 및 지역주민과 연계하여 저지른 소행으로 주장한다. 예전에는 OPM이 도시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최근에는 대담하게 활동지역을 도시 주변까지 확대하고 있으며 과감한 무장테러를 한다고 한다. 그들은 파푸아의 분리를 원하는 지역의 정치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또 해외 단체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한편 지속적으로 OPM의 새로운 전략을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OPM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정치적인 면에, 다른 하나는 무장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며 이들을 최근에 서로 접촉하며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도시에서 테러활동을 벌임으로써 국제사회에 파푸아가 분쟁지역임을 계속 알리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OPM은 과거보다 더 조직적으로 탄탄해지고 보다 더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의 강력한 군사력과 경찰력의 동원으로도 이 조직을 소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세력이 더 조직화 되었다는 사실은 곧 자카르타 정부가 현재까지 유지해 온 물리력을 동원한 강압적 형태의 치안유지가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수하르또 통치하에서 국가통합을 위한 안정이 우선시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고 체제안정에 도전하는 세력은 동료 인도네시아 인이 아닌 ‘적’ 또는 굴복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파푸아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군과 경찰은 OPM의 공격에 대해 과잉되고 잔인한 물리적 방법으로 대응했다. 범인 색출작전을 명목으로, 의심되는 마을을 전체적으로 습격하여 가혹한 집단처벌을 한다. 용의자를 다수 검거해 고문하고 집들을 방화하는 등의 작전으로 인해 특히 중앙 고산지대의 많은 주민들이 생활터전을 잃고 숲속에 임시 거처하는 난민이 되어 영양실조와 부적절한 주거환경,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수하르또 시절 군부와 경찰의 폭력으로 수천 명의 파푸아 인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파푸아 인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수하르또 퇴진 이후 개혁시대(reformasi)에 들어서면서 OPM의 산발적인 독립운동은 대중시위의 형태로 변화하여 파푸아의 각 지역뿐 아니라 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1999년 2월 하비비 대통령은 100명의 파푸아 대표단과 만나 대화를 시도했으며 2000년 새해 첫날에 자야뿌라를 방문한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은 파푸아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 빈땅 끄조라 게양을 허용하고 이리안 자야에서 파푸아로 명칭을 회복시켜 주면서 이들을 인도네시아의 일부로 포용하려 했으나 국민협의회(MPR)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빈땅 끄조라의 게양이 다시 금지되었고 정부군은 병력을 증파하여 파푸아 주요 도시 곳곳에 마치 점령군처럼 주둔함으로써 이들의 독립의지를 강제로 와해시키고자 하였다. 그 이후로도 수하르또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계속적으로 군부와 경찰에 의한 폭력사태가 보고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처벌은 독립운동을 한 파푸아 인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에 비해 너무 미비하여 법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지난 2011년 두 명의 OPM 단원을 세 명의 정부군 군인들이 잔인하고 수치스럽게 고문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으나 올해 초 이들은 각각 8개월에서 10개월의 가벼운 징역형에 그쳤다. 작년 10월 자야뿌라에서 열렸던 제 3차 파푸아 인민대회를 무력으로 해산하는 과정에서 군경의 발포에 의해 6명이 사망했지만 이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반면, 빈땅 끄조라를 게양했다는 이유로 내란죄가 적용되어 15년 징역형을 살고 있는 파푸아 인이 있다.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나름대로 파푸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과 대화를 시도해 왔으나 파푸아 인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실패했다. 2001년에는 파푸아를 위한 특별 자치 법을 제정했으나 법의 실질적인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다. 2003년 메가와띠 정부는 파푸아를 세 개의 지역으로 분리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는 파푸아 인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분할통치하려는 중앙정부의 전략이라고 의심되었다. 2011년 9월에는 파푸아와 서 파푸아 발전촉진을 위한 기구(UP4B: Unit Percepatan Pembangunan Provinsi Papua dan Papua Barat 또는 Unit for Acceleration of Development in Papua and West Papua)가 퇴역장군 밤방 다르모노를 대표로 발족되어 그동안 지체되어 왔던 특별자치 패키지에 따른 발전프로그램을 신속히 수행하며 자카르타 정부와 파푸아 인들과의 ‘건설적인 의사소통’을 약속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영역에 한정되어 진행되고 있다. 예전과 비교해 현 정부의 파푸아에 대한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혹의 총격살인사건이 계속 발생할 때에도 유도요노 대통령은 지난 5월 각료회의에서 이는 ‘소규모’이며 아랍 국가들의 대규모 소요사태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해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5월 23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UNHRC: the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의 Universal Periodic Review (UPR)에서 인도네시아 외무부 장관 마르티 나탈레가와(Marty Natalegawa)는 파푸아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파푸아는 안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정부는 아직도 지난 역사에서의 교훈을 잘 배우지 못한 것 같다. 25년 동안 무력으로 동티모르를 점령했다가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분리했던 경험이나 30여 년간 아체의 분리주의자들과 싸운 경험을 파푸아에서도 동일하게 답습하고 있다. 유도요노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시도하고 발전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수하르또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다 더 강경한 무력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의혹의 총격살인사건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현재의 파푸아 정책이 비효과적임을 보여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갈등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또한 현재의 긴장상태는 국내외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호주의 외무장관 봅 카아(Bob Carr)는 마코 타부니가 우발적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대테러진압 특공대원(Densus 88)의 작전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파푸아에서의 폭력사태와 빈땅 끄조라를 게양했다는 이유로 구금된 정치범 필렙 카르마(Filep Karma)를 석방할 용의가 없는지 외무 장관에게 질문했다. 인도네시아 역사학자 아스비 와르만(Asvi Warman)은 최근 파푸아에서 일어난 모든 살인사건은 과거 군부작전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파푸아인 납치, 고문, 살인사건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솔직히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인권 특별법원 및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는 한 파푸아에서의 폭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와르만의 발언이다. 최근의 사태와 관련하여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여 파푸아 인들과 대화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하지만 이에 대하여 파푸아 인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아직 뿌리가 깊다. 파푸아인 소크라테스 목사는 이러한 방문은 정부의 적극적인 갈등해결 의지가 없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고 비판하며 중립적인 중재자를 통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푸아 문제의 핵심은 정책보다는 자카르타 정부의 정치인들의 태도에 더 달려있다. 지금까지 파푸아는 이들에게 항상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의 고려대상이지 파푸아 인들의 복지와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다. 희생자가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폭력사태가 반복되는지에 대한 심각한 인식과 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대화와 진실규명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군과 경찰에 대한 재교육 및 인권유린 행위 시 엄정한 법적용이 필요하다. 파푸아를 한낱 경제적 이윤산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실현가능한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 경제적 번영 및 복지를 파푸아 인들은 오랫동안 상실했다. 자카르타 정부의 그러한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파푸아는 언젠가 제 2의 동티모르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 진상조사를 담당했던 국회 제 1위원회의 위원장 마흐푸즈 시딕(Mahfudz Siddiq)의 말처럼 이 문제를 내버려둔다면 파푸아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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