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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마긴다오 학살, 1000일 지나도 서지 못한 ‘정의’

필리핀 정법모 국립필리핀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 2012/10/09

지난 9월 27일, 필리핀 남부 마긴다오 지방에서 벌어졌던 학살 사건이 있은 지 1000일도 훌쩍 넘은 시점에, 58번째 시신의 신원이 최종 확인되었다. 이로써 언론인 32명을 포함한 민간인 58명의 희생자가 공식 확인되었지만, 이 선거관련 최악의 학살 사건에 대한 법적 처벌 절차는 더디기만 하다. 현재까지 용의자 197중 97명만 구속 수감되어 있으며, 78명만 심문 과정을 마친 상태이다. 핵심 용의자 중 암타푸안 가문 유력 정치인들은 조사과정에 비협조하거나 현재까지도 출석을 미루고 있다. 단일 규모로는 선거관련한 필리핀 사상 최대 유혈 사태이며, 국제 언론단체들은 금세기 최악의 언론인 살해사건으로 규정한 이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으며 왜 사법절차가 더딜 수밖에 없는가?

지난 2009년 11월 23일, 마긴다오의 주지사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서 에스마엘 망우다다투 후보측 일행 58명은 6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주도인 샤리프 아루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스마엘 자신은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과 두 명의 누이들이 이 일행에 속해 있었고, 32명의 언론인, 변호사,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그는 선거에 나서지 말라는 협박을 상대 후보로부터 받았으나, “무슬림 전통상 여성은 존중되어야 하며 무고한 노인과 어린이처럼 여성은 헤치지 않을 것이다”고 사건 발생 몇 시간 전에 예상 했었다. 하지만 이 호송 차량들은 목적지를 10킬로미터 정도를 앞둔 산길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100여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마살라이 지역 야산으로 끌려간 뒤 무참한 총격을 받기 시작했다. 희생자 중 대부분은 근거리에서 얼굴 쪽에 총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24명의 여성 중 대부분은 음부에 총격을 당하거나 참수되기도 했다. 사체들은 현장에 버려지기도 했지만 일부는 미리 준비된 구덩이에 차량과 함께 매장되기도 했다.
 
에스마엘의 부인은 희생 전 남편에게 차량을 저지했던 무리 중 안달 암파투안 2세가 있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이미 보냈다. 또한 여러 정황상 암파투안 가문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 뚜렷해 보였다. 희생자들과 차량을 암매장했던 구덩이는 이미 이틀 전부터 준비 중이었으며, 땅을 파기 위해 사용된 굴착기에는 마긴다오 주정부 마크가 붙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로요 대통령은 암파투안을 출당하게 했으며 해당 지역에 계엄령을 내려 암파투안 집을 수색하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군경의 협조나 사법 과정은 여러 모로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필리핀의 사법절차에 대한 답답함이 먼저 들지만, 왜 이런 참혹한 학살이 가능하고 그들의 사법처리는 더딘지를 보기 위해선 필리핀의 가문 정치나 이들 토호 세력과 중앙 정부사이의 관계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긴다오는 필리핀 남부의 민나나오섬 중에 있는 하나의 주이다. 전통적으로 무슬림의 비중이 높았던 지역이었으며, 필리핀의 자치구역 중 하나인 민다나오무슬림자치구역의 주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긴다오에서 암파투안 가문은 1990년대 이후 강력한 실세로 부각하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마긴다오주 18개의 군수를 이 가문에서 차지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1986년 민중혁명이후 집권한 코라손 아키노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이유로 지자체의 선출 관료들을 임명자들로 교체했으나, 마가노이(현 샤리프 아루악)에서는 부지사였던 안달 암파투안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마가노이에서 10년 군수를 역임했던 그는 1998년 주지자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 살디 암파투안은 민다나오 무슬림 자치구역(ARMM)의 주지사가 되었다.
  
2001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안달 암파투안 및 살디 암파투안을 집권당의 마긴다오 지역대표가 되었다. 안달은 세 번 연속 주지사가 되었고, 암파투안 가무에서는 18개 군수 자리를 차지했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로요는 마긴다오에서는 69퍼센트의 높은 득표를 했다. 2007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친집권당 계열의 12명의 상원의원 후보 모두 이 지역에서는 다득표를 했다. 아울러 미국과의 협조 아래 민다나오 내 무장 세력과 전투를 벌이게 되면서 이 암파투안 가문은 중앙정부로부터 중화기나 사병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몇 십 년 동안 이 씨족이 일방적으로 집권하던 것에 도전한 한 가문이 바로 망우다다투 가문이었다. 이 씨족도 예전에는 오랫동안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었으나 암파투안 가문에 눌려 세력이 줄어든 상태였다. 안달 암파투안 1세가 3번 연속으로 주지사를 역임하면서 필리핀 법 규정상 더 이상 출마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을 기회로 에스마엘 망우다다투가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이다. 사실 망우다다투 가문도 집권당 소속이었으므로 이들이 출마한다고 해도 정책 대결보다는 세력 교체의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세력 지형에 변화가 올 법한 이 수간에, 충격적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대부분 사람들은 암파투안 가문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권하고 있는 아로요 대통령이 이 가문에 커다란 ‘마음의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2004년 대통령 선거 시 발생한 부정의혹을 아로요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 받고 있으며, 이때 아로요가 의문의 몰표를 획득한 곳이 이 곳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나, 안달 암파투안 1세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18개월이 지난 2011년 6월에나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법정은 살디 암파투안 및 안달의 손자에 대해서 그들의 알리바이를 인정하여 혐의를 풀어 주었다. 더욱이 이 사건을 증언할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협박이나 압력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 살해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결정적 증언을 했던 증인 세 명이 살해 되었으며, 증언을 예정한 사람들의 친척들이 살해되는 경우도 세 건 있었다. 금년 3월, 핵심 증언자 중 한 명인 에녹은 행방 불명 된 지 몇 개월 만에 토막 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그가 사라진 지 몇 개월 동안 증인을 보호할 당국은 그 사실도 모르고 있어 증인들에 대한 신변 보호가 취약함을 드러냈다.

작년 7월 에녹은 본인 자신들이 무장한 암파투안의 사병들 36명을 직접 태워 운전한 바 있다고 법정에서 진술,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었다. 용의자들에 대한 사법 절차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앙정부의 비호를 아래 정치력과 군사력을 장악하여 이른바 ‘암파투안 왕국’으로 성장한 그들이 쉽게 물러나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무슬림 세력이 강한 마긴다오에서, 분리운동을 표방하는 다른 세력들과 달리, 이들은 중앙정부와의 연계를 통해 절대 권력으로 성장했다. 2009년 일어난 대학살은 경찰과 군인의 협조 내지는 묵인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방 정치의 변화를 이루기 암단한 필리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문제이다.  

필리핀은 현재까지 선거 관련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지방에서는 언론인들의 활동이 쉽지 않은 곳이다. 국제 언론인 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언론인 활동을 하기에 위험한 나라로, 필리핀을 이라크 다음으로 손꼽았을 정도이다. 엘리트 레벨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하고 도시 지역에서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가능하더라도, 지방에서는 전혀 다른 전근대적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필리핀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 필리핀 지방 선거에서 뿌리 깊게 자리한 정치인과 투표자들의 후원-수혜관계, 특별한 정책 대결 없이 중앙권력과의 선대기를 통해서 권력을 확보하려는 정치 풍토 등이 맞물려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방정치 현실을 변혁할 의지 없이, 중앙 정치세력들이 이 시스템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이러한 참혹한 사태가 앞으로도 재발될 수 있을 것이다. 

마긴다오는 무슬림 전통을 따르지만, 민다나오 지역은 그 나름대로의 씨족사회 문화적 관습도 공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가족이나 친족이 물리적 경제적인 위협을 당하거나 신체적 상해를 입혔을 때, 그를 되갚는 씨족분쟁, 리도(rido)’라는 것이다. 머지않아, 마긴다오 주지사 선거가 예정되었으며, 금주 목요일부터는 후보 등록일이 된다. 다행히 에스마엘 망우다다투 현지사의 경쟁 후보는 암파투안 씨족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문화나 지형이 마긴다오 지역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선거 관련 유혈 상태가 쉽게 중단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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