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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동남아시아의 인식

동남아시아 일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03/03

인도태평양의 지리적 중심으로서 동남아시아
2010년대 이후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 사이에는 세계 20대 경제대국 중 9개-미국(1위), 중국 (2위), 일본(3위), 인도(5위), 캐나다(10위), 한국(12위), 호주(14위), 멕시코(15위), 인도네시아(16위)-, 세계 10대 군사대국 중 5개-미국(1위), 중국(2위), 인도(5위), 일본(8위), 한국 (10위)-가 모여 있다. 또한 세계 10대 항만의 9개가 이 지역에 걸쳐 있는데, 전 세계 해양무역의 약 60%가 아시아, 전 세계 해운의 약 1/3이 남중국해를 거쳐 가고 있다.

 

인도태평양이 부상하면서, 그 지리적 중심인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동남아시아가 상대편의 세력권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전략에서 동남아시아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을 격상시키고 있다. 2013년 10월 시진핑 주석은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일대일로 구상의 일환인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구상(21世纪海上丝绸之路的构想)을 발표한 후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증대시켜 왔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표하였다.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자국을 지지하라는 압박이 거세지만, 동남아시아의 입장에서는 양국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는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일대일로는 양날의 칼로 인식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부족하고 미흡한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을 지원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중국 다국적 기업들이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가치사슬(또는 생산네트워크)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원재료와 비숙련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탈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로 인한 위협이 동남아시아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중국의 해군력 증대와 공세적 외교를 우려하고 있다.

 

중국 위협론이 고조되고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는 역외 균형자로서 미국의 개입을 조심스럽게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동남아시아 국가가 미국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캄보디아’나 로힝야족 난민 사태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미얀마’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2019년 6월 발표한 ASEAN 인도태평양 전망(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추구하는 원칙-모든 국가의 주권과 독립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개방적 투자, 투명한 합의 및 연계성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 항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 규범과 규칙의 고수-이 거의 다 반영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동남아시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견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동남아시아 지원
인도태평양 전략이 공표된 이후 미국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및 군사적 지원을 점차 증대시켜 왔다. 2018년 6월 미국 국방부는 1947년 창설된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변경하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 상공회의소가 7월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인도태평양 비지니스 포럼(Indo-Pacific Business Forum)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민간투자 확대, 디지털 연결성 및 사이버보안 개선, 지속가능한 인프라 개발 촉진 및 에너지 안보와 접근성 강화를 위해 즉시 가용한 신규 기금 1억 1,350만 달러를 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1월 제6차 ASEAN-미국 정상회담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역내 26개 도시의 스마트화를 목표로 출범한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에 우선적으로 1,00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미국의 지원은 경제분야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2018년 12월 미국 의회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장기 전략, 정책 마련 및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 국가와 안보 및 경제협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아시아 안심 이니셔티브 법’(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은 남중국해 등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작전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에게 향후 5년간 15억 달러 규모의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할 것이다.


2019년 11월 방콕에서 열린 제2차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미국 해외민간투자공사 (OPIC)와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 호주 외교통상부(DFAT)가 함께 추진하는 ‘푸른 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를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투명하고, 지속가능하며, 사회적 및 환경적으로 책임지는 인프라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이 계획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파푸아 뉴기니에 10억 달러 규모의 LNG 시설로 결정되었다. 

 

2019년 12월에는 2018년 10월 의회에서 통과된 ‘개발 촉진을 위한 투자활용 향상법’(Better Utilization of Investment Leading to Development: BUILD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OPIC과 USAID의 DCA를 통합하여 600억 달러 규모의 DFC를 출범시켰다. 재정비하는 것은 물론 재정 규모를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원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미국과 경제적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2018년 3월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트럼프 정부는 자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중국에 있는 생산시설을 동남아시아로 이전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보복관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을 증가시키면서, 2019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무역흑자가 증가하였다.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 미국 기업들의 탈중국은 더욱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평가
미국의 지원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동남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구상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보다 더 중시되고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ISEAS-유소프 이삭연구소의 2019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국가/지역이 동남아시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중국(73.3%)은 ASEAN(10.7%), 미국(7.9%), 일본(6.2%)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우위를 유지해온 정치적 및 전략적 문제에 대한 영향력에서도 중국(42%)이 미국(30.5%)을 앞섰다는 것이다.

 

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동남아시아에서 이렇게 저조한 평가를 받고 있을까? 우선 인도태평양 전략이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전략에 대한 저작권은 미국이 아니라 호주, 인도 및 일본에 있다. 호주와 인도는 아시아태평양과 구분되는 새로운 지역 개념으로서 인도태평양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일본은 이 지역 개념을 전략 구상으로 발전시켜 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이 세 국가와 4자 협의체(Quadrilateral Consultations)를 구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동남아시아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에서 열린 중요한 정상회담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로스 상무장관을 대신 보냈다는 것이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2019년 4월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에 참석한 ASEAN의 9개국 정상을 직접 환대하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정한 의도가 동남아시아의 발전보다는 중국의 견제에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전략 구상에서 동남아시아의 위상은 아직도 높지 않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반영된 2019년 6월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port) 및 11월 국무부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A Free and Open Indo-Pacific)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동남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ASEAN보다는 군사동맹국인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태국과 동반자 관계인 싱가포르, 대만, 뉴질랜드 및 몽고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양자적 차원에서 국무부는 일본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 인도의 동방 정책(Act East Policy), 호주의 인도태평양 개념, 한국의 신남방정책 및 대만의 신남향 정책(New Southbound Policy)과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다자 협상의 우선 순위에서도 국무부가 주도하는 4자 협의체(인도, 호주 및 일본)와 국방부가 담당하는 3자 협의체(한국 및 일본)가 ASEAN보다 더  상위를 차지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는 2019년 각료급으로 격상된 4자 협의체(Quadrilateral Consultations)이다. 그 다음이 한미일 3자 협의체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동남아시아를 지리적 중심 이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지원의 규모는 물론 범위에서 양국의 격차는 상당히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 35개 국가들에 45억 달러 원조를 했지만, 미국의 동남아시아 지원은 중국과 비교해 보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또한 미국은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보다는 민간투자 유치에 도움을 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대일로 구상보다 그 규모는 물론 투자 범위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또한 무역전쟁 이후 미국이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난 국가들에 대한 보복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기업이 보복관세를 줄이기 위한 우회로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고 베트남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신남방정책에 주는 교훈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같은 저조한 평가를 피하기 위해서 신남방정책은 네 가지 점에 주의를 해야 한다. 첫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동남아시아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제어하기 위한 역균형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비판에 유념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남방정책을   수출 다변화-특히 대중 의존도 축소-를 위한 위험분산(hedge) 전략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를 중시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신남방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동남아시아와 협력 강화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남방정책의 과제를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경험 공유와 지원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신남방정책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어느 한 쪽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ASEAN 중심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ASEAN은 일대일로 구상과인도태평양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척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어느 한 국가를 선택하는 경우, 동남아시아에서는 신남방정책을 미국 또는 중국 대전략의 하위 전략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교류보다는 미국 또는 중국을 통한 간접적 교류를 더 중시할 것이다.

 

셋째, 신남방정책은 일대일로 구상이나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보다 동남아시아에 더 많은 경제적 및 군사적 지원을 하는 것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신남방정책의 지경학적 차원에서만 접근할 경우, 우리나라가 중국, 미국, 일본보다 더 좋은 평가를 당장은 받을 수 없다. 강대국의 대전략과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신남방정책이 한류와 같은 사회문화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남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새 정부가 등장하면 기존 정권에서 추진하던 정책을 폐기하거나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오바마행정부의 재균형/아시와 회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인도태평양 전략이 계승되기 보다는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확보한 정책의 성과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ASEAN과 협력은 국내정치적 갈등과 연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서도 신남방정책이 초당적 지지를 받기를 고대한다.

 

 

※ <전문가 오피니언>은 PDF 다운이 가능합니다 (본문 하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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