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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인도의 독립과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 종파적 갈등과 간디의 암살을 전후하여

인도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이정호 남아시아연구 발간일 : 2010-10-31 등록일 : 2017-11-24 원문링크

인도와 파키스탄으로의 분리 독립만 이루어지면 모든 종파적 갈등은 해결될 줄로 믿었지만 그것은 더 큰 증오와 복수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간디를 추앙하고 회상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메시지는 진리이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를 풍미했던 비폭력의 대명사인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 광신자인 37세의 힌두 마하사바의 당원인 나투람 고드세에 의해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일생을 독립운동과 하나의 인도를 위해 온 몸을 바쳤지만 노후에는 당대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을 전후하여 힌두와 무슬림 두 집단 간의 폭동과 살인, 방화, 약탈의 폭력이 인도를 휩쓸 때 그가 외치고 실천한 비폭력, 용서, 사랑, 형제애, 희생, 신앙의 정신은 영원히 간디의 사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같은 나무의 잎들’로 비유한 그의 종교관은 종교의 문제로 서로 적대시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되새겨 볼 일이라고 생각된다.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통치자들은 하나같이 간디를 ‘반쯤 벌거벗은 선동적이고 타협이 불가능한 자’로 혹평하였다. 독립을 전후한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후계자 네루를 포함한 당시의 정치적 지도자들이 그의 언행을 ‘노망 들린 자’, ‘늙은 바보의 망발’, ‘황야에서 부르짖는 소리’라고 여겼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인도인들이 국부로 부르는 간디를 독립된 인도의 국가원수로서 생을 마감하게 해주고 싶었던 마운트배튼과 그것을 극구 반대한 네루의 정치행위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20세기 인도는 분명히 ‘마하트마 간디끼 자이’(마하트마 간디의 승리)였고, 그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 아마르 호 가이’(마하트마 간디는 죽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구호처럼 영원히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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