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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슬라브민족회의의 개최필요성제기와 그 준비과정

중동부유럽 기타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김장수 국제지역연구 발간일 : 2010-07-31 등록일 : 2017-12-01 원문링크

3월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 내 슬라브 정치가들은 헝가리 지방을 제외한 제국의 적지 않은 지역, 즉 독일연방에 포함된 지역들이 통합 독일로 편입되는 것과 그것에 따라 야기될 오스트리아 제국의 붕괴를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통합 독일에서 그들 민족의 법적․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지 않고 오히려 격하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제국의 존속을 그들의 최우선 정책 내지는 과제로 설정했는데 그러한 것은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실제적으로 5월 18일부터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Frankfurter Nationalversammlung)는 대독일주의 원칙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를 ‘신독일’에 편입시키는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제국 내 슬라브 정치가들은 그것에 대한 대비책마련에 나서게 되었고 프란티셰크 팔라츠키(František .Palacký)와 이반 쿠쿨레비치-사크신스키(Ivan Kukuljevič-Sakcinski)를 비롯한 일련의 슬라브 인사들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후 슬라브 정치가들은 슬라브 민족회의의 개최필요성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슬라브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민족만을 우선시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그러한 태도는 이들 간의 의견적 대립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와 오스트리아 제국 내 독일인들의 반발 역시 민족회의 개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슬라브 정치가들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관점, 즉 연방체제의 도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슬라브 인들의 단결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최초의 민족회의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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