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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사회] 태국내 화교의 정착 양상에 대한 고찰: 태국 소설 '태국에서 온 편지'를 중심으로

태국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최난옥 유라시아연구 발간일 : 2015-09-30 등록일 : 2018-05-04 원문링크

본고는 100통의 편지로 구성된 보딴의 장편 소설 『태국에서 온 편지』를 통해 1945년부터 1967년까지 시대적 배경하의 태국내 화교의 정착 양상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태국내 화교의 유입 배경을 보면 일차적으로 중국인이 태국 등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이유는 과밀한 인구와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이다. 이차적 이유는 중국인이라는 혈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중국인의 우수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발전된 중화사상이다. 주인공 딴쑤엉우는 남의 나라에 의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고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려서 전파시키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중국인의 생존 기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그는 태국 현지의 문화와 현지인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태국 문화나 태국인의 기질이 환경의 산물인 점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다. 태국에서 화교는 친척친구 외에도 같은 성씨끼리 도움을 주고받고 결속력을 다짐으로써 중국 전통 문화를 수호한다. 태국내 화교의 정착 과정을 보면 화교 1세대와 화교 2세대는 서로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고집하는데 따른 대립 양상을 보인다. 화교 1세인 딴쑤엉우는 중화사상이 강한 인물로서 중국 전통 문화를 고수하고 이를 그의 자녀들에게 전수시키고자 한다. 그는 자녀들에게 중국인 혈통의 의무를 강요하는데, 딸보다는 아들에게 더 기대감을 갖고 가업을 잇도록 과도한 의무감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탈선하게 만든다. 화교 2세인 딴쑤엉우의 자녀들은 태국에서 태어나서 태국인 국적을 보유했으며 자신들이 태어난 태국에서 살고자 한다. 태국내 화교의 정착 양상을 보면 시대적으로 화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정체가 바뀌고 태국과 중국의 국교단절이 지속되면서 중국으로 왕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화교는 상업에 소질이 없는 태국인의 기질을 호기로 삼아 상업에 종사하여 성공하지만, 태국 문화에 대한 이해보다는 재물 축적에만 힘쓰는 부유한 화교에 대한 태국인의 저항이 발생한다. 화교 고용주와 태국인 고용인이라는 신분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생활의 기반이 태국이며 정제의 변화로 인해 중국으로의 왕래가 어려워진 화교와 태국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는 태국인 간의 충돌로 이어진다. 태국인 국적을 보유한 화교 2세대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 문화를 고집하는 화교 1세대조차도 태국에 정착하는 데에는 속지주의 국가인 태국에 걸맞게 태국인의 민족동화의 역량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결혼상대자 선택은 화교 1세와 2세 모두다 상업에 종사하거나 성실한 성격의 인물이라면 중국인이건 태국인이건 가리지 않고 배우자로 받아들인 점을 보면 우수한 인물에 대해서는 탈민족주의적인 보편적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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