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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우랄지역 원로 고려인들의 생애사 연구

러시아ㆍ유라시아 일반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고가영 역사문화연구 발간일 : 2008-06-30 등록일 : 2018-06-22 원문링크

본 논문은 소비에트 체제의 변화과정에서 원로 고려인들이 겪은 삶과 의식의 변화, 즉 생애사를 연구한 것이다. 연구 대상은 70세 전후의 성공한 원로 고려인으로서 고려인 사회의 사표((role-model)가 된 이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연구 방법은 구술사 연구 방법론을 사용했다. 연구 대상 지역은 우랄지역의 대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 시와 첼랴빈스크 시, 페름 시이다. 140여 년 전 러시아의 극동 지역으로 이주해 갔던 고려인들은 1937년에 스탈린의 폭정으로 ‘일본의 스파이’로 취급되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구술자인 원로고려인들의 어린 시절은 강제이주로 인해 심한 고초를 겪었고 이때의 외상(트라우마)은 향후 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서,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순응하면서 성공에 대한 열망을 키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주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이들은 부모 세대가 건설한 집단농장에서 엄청난 노동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이후 찾아온 해빙의 물결은 고려인들의 삶의 조건도 변화시켰다. 1950년대 중반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정책의 일환으로 고려인들의 거주제한이 철폐되자 이들은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러시아 전역의 대도시로 진학함으로서 고려인 사회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2차 대전 이후 우랄지역은 대규모 공업지역으로서 대표적인 군수도시였다. 이같은 공업도시로 진학한 고려인들은 대학졸업 이후 전문직업인으로 종사하면서 러시아의 주류사회로 진입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공은 이룰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일본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강제 이주된 민족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인해 잘못이 있는 민족에서 부당하게 박해받은 민족으로 공식적으로 재평가됨으로서 사회적 위상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는 소연방 와해 이후 1990년대 초반에 제정된 일련의 복권법으로 인해 법적 지위 또한 완전하게 획득할 수 있게 되어 전국적인 규모의 고려인 단체들을 결성할 수 있는 권한도 획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와 아울러 한국과의 관계를 통해 한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더욱 고취될 수 있었다. 올림픽을 통해 알려진 한국의 발전상은 고려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고, 한인으로서 자긍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고려인 단체들을 결성하는 동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와해에 대해서는 친인척들이 거주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와의 왕래가 불편해졌기 때문에 한결같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한편 1950년대 이 지역으로 이주해 간 올드타이머들과 소연방 와해 이후 중앙아시아 당국들의 민족주의 정책의 폐해를 피해 중앙아시아에서 재이주 하고 있는 새로운 이주자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 내 고려인들의 단합이 어렵고 이것이 고려인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몹시 아쉬웠다. 고려인들은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역경 속에서 자신들을 러시아 내 여러 소수민족들 중 하나인 한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이들을 우리의 필요와 잣대로서 재단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 속에서 살아온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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