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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사회] 베트남 근대화에 미친 불교의 영향 —베트남 전쟁과 불교도 항쟁을 중심으로—

베트남 국내연구자료 기타 박금표 禪學(선학) 발간일 : 2010-08-31 등록일 : 2017-07-27 원문링크

본 논문에서는 3개의 장에 걸쳐 지엠 정부의 성격, 불교 탄압 사건, 틱 꽝 득 스님의 분신의 의미, 불교도 항쟁을 냉전의 이데올로기로 평가하는 문제 등을 검토했다. 지엠 정부의 성격과 불교탄압을 검토하는 2장에서는 제네바 협정 이후 하노이 정부와 사이공 정부의 기본적 성격을 검토해 보았다. 하노이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호 찌 민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서구 열강에 대한 동양의 승리를 상징하는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승리로 프랑스를 축출함으로써 민족주의자라는 정통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이공 정부의 지엠은 호 찌 민의 민족주의에 대응하여 반봉건과 반 식민주의를 기치로 삼았으나 반 식민 청산도 미흡했다. 또한 미국이 베트남 내전에 개입하게 하여 반외세의 기치가 희석됨으로써, 반공만을 주요 기치로 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북에서 가톨릭교도를 대거 남하시켜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종교 편향이 발생할 터전을 만들었다. 지엠의 친 가톨릭 성향이 다방면에서 표면화됨으로써 불교도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항쟁이 확대되었으며, 1963년 1년 동안 3차례에 걸친 대규모의 불교도 탄압 사건이 발생했다. 3차례에 걸친 불교도들의 탄압에서 드러난 그의 지나친 종교 편향 정책은 결국 쿠데타로 이어져 정권을 붕괴시켰으며 지엠 정권의 종말을 가져 왔다. 3장에서는 1963년 6월 11일 발생한 틱 꽝 득 스님의 분신을 자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소신공양으로 볼 것인가를 검토했다. 서구의 시각으로는 몸을 불태워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을 자살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이 더 이상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분신은 단순한 자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틱 꽝 득 스님을 정치 승려로 보아 정치적 욕망이 표출된 자살로 규정하는 것은 불교의 자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시각이다. 4장에서는 일부 불교도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거나, 공산주의자들 일부가 불교도 항쟁에 가담했다고 하여 불교도 항쟁을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반정부 투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또한 불교도 항쟁을 이끌었던 틱 트리 꽝이 NLF와 타협점을 찾고,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중립주의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그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았다. 불교도 항쟁을 공산주의와 연계시키고, 틱 트리 꽝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냉전논리에 치우친 해석에 불과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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