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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사회] 다문화 도시적 관점에서 본 지중해 이슬람 도시 -모로코 페스의 사례연구-

아프리카ㆍ 중동 기타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송도영 지중해지역연구 발간일 : 2008-12-31 등록일 : 2018-01-19 원문링크

1912년 페스에서 모로코를 통치하던 물라이 하피드(Moulai Hafid)와 프랑스 대표 사이에 모로코에 대한 보호령 조약이 체결되고 모로코는 프랑스의 사실상 보호령(protectorate) 통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비록 별도의 국가 체제가 유지되는 보호령이었지만 사실상의 식민지 통치를 겪으면서 페스는 다시 한 번 신도시 발생을 목격하게 된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형성된 기존 도시공간과 그 안에 자리 잡은 페스의 시민세력을 온전히 지배하는 것이 어려움을 발견한 프랑스 보호령 정부는 기존 페스의 쌍둥이 도시 외곽 서남부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운 도시계획에 의한 근대식 도시를 건설한다(Calderat 1982:83). 그리고 육로 중심의 국가 공간체제를 바꾸어 해상로 중심으로 재편성하는 방안으로 대서양 연안에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라바트(Rabat)라는 대규모 근대도시를 건설하여 식민통치에 용이한 경제 및 정치 중심지로 성장시킨다. 페스의 기존 상인들과 귀족들은 이런 상황에 한편으로는 반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빨리 적응한다. 즉 유럽인들을 위한 페스 인근 계획 신도시로 가장 먼저 이주하는 것도 소위 ‘(토착)페스인들’이라 불리던 귀족과 대상인들 그리고 정부 관료들이었다. 보호령 아래서 급성장하는 새 도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로 가장 먼저 이동하여 기회를 획득한 것도 정치경제적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이 뛰어나며 국제무역에 일찍부터 노출되어 있던 페스의 대 상인과 수공업자들이었다(Benhaddou 1997:77-78). 한편 이들 못지않게 보호령 정부 아래서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간 무슬림 상인들 아래서 제한되었던 자신들의 상업 활동과 거주공간의 제약, 토지와 가옥 구매 권리의 제한을 벗어나 신도시로 이주하였고, 보호령 정부가 새로 제공하는 기회를 누리며 그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무슬림들 아래서 눌려 지내던 자신들의 지위와는 다른 새로운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반면 모로코와 알제리의 각 지역에서 페스로 이주해 왔거나 농촌지역의 근거지를 유지한 채 페스에서 계절적인 이주노동자 집단을 형성해왔던 베르베르 부족민들 다수는 신도시의 발달과 페스의 경제적 지위 하락, 그리고 정치경제적 변화 전반의 환경 속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Berque 1972:91). 이들은 근대화와 계획 신도시의 등장에 따른 전통도시의 쇄락과 함께 전통 페스 내에서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던 기능의 비중이 감소하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1940년대가 되면 이전까지 페스를 중심점으로 모여들었던 모로코 전역의 계절적 이주민들과 다양한 부족집단들이 목적지를 바꾸어 카사블랑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페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르베르 부족민들의 일부도 먼저 떠난 페스의 토착상인그룹을 뒤쫓아 라바트와 카사블랑카로 향하기 시작한다. 보호령 정권의 후기에 페스는 카사블랑카와 함께 모로코 독립운동의 중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점점 심해지는 식민통치의 폐해에 반발하는 독립운동 집단들이 일부는 페스출신의 지식인들과 또 다른 일부는 페스를 거쳐 카사블랑카로 진출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페스와 라바트, 카사블랑카에서 조직화되며 저항운동을 발전시켰다(Liauzu 1985:31). 이때 유럽인들에 대한 테러공격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발전하며, 보호령 정부에 협력하던 ‘배신자들’의 대표집단으로 유대인들을 지목하여 그들에 대한 테러 또한 발전한다(Lewis 1986:135). 페스출신의 상인과 지식인 중 보호령에 적극 협조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들은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과 출신에 의해 ‘자기 집단’의 일부로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나의 ‘공격대상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고 ‘개인들’로 인식된다. 하지만 유럽인과 유대인들은 그들의 외관과 종교적 정체성의 차별로 인해, 특히 유대인들의 경우 오랫동안 페스 사람이었으면서도 노골적인 ‘외부자’로 인식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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