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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권 승계: 1964년의 사례 연구

사우디아라비아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최영철 한국중동학회논총 발간일 : 2018-06-30 등록일 : 2018-07-20 원문링크

2017년 6월 21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그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을 왕세자로 책봉했다(New York Times, 21 June 2017; Reuters, 19 July 2017). 이는 1953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자신의 형제가 아닌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한 첫 사례로서 이례적인 결정이다. 1932년 건국 이후 현재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역대 국왕들은 모두 제3차 사우디 왕국1)의 건국자였던 압둘 아지즈와 그 후손으로서, 이들은 알 파이잘 분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력한 분파를 형성하고 있다. 다시 말해, 2-7대 국왕 모두 그의 아들들이다. 압둘아지즈 국왕은 현대 사우디 왕국 창건 이후 1920년대부터 그의 사후 왕권 승계구도를 설계하고, 사우드와 파이잘, 그리고 칼리드 등 통치자의 자질을갖춘 왕자들 중 연장자 순으로 왕권을 승계하려고 준비했다. 이미 1926년 그는사우드와 파이잘을 나즈드와 히자즈 두 지역 주지사에 임명했으며, 사우드를세자로 책봉했다. 특히 그는 1950년대 초 왕권을 사우드와 파이잘 왕자에게 대폭 이양하고 공식적인 업무에서 손을 뗐으며, 1953년 11월 9일 죽기 전 내각 회의를 구성하고 총리 역할을 파이잘에게 맡겼다(Herb 1999, 92). 1953년 압둘아지즈 국왕이 서거하자 장남인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재위 1953~1964년) 왕세자가 국왕에 취임했다. 그러나 사우드 국왕의 취임 이후 차남인 파이잘 빈 압둘 아지즈 왕자와 차기왕권 승계를 두고 극심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부친 압둘아지즈가 설계했던파이잘을 비롯한 형제간 왕권 승계 계획을 무시하고 사우드 국왕이 그의 직계아들에게 왕권을 승계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부터사우드 국왕과 파이잘 왕세제 간 극심한 패권 경쟁을 벌인 끝에 패한 사우드국왕은 1964년 폐위되고 파이잘이 왕권을 승계했으며, 그 이후 파이잘에 의해형제 간 왕권 승계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본 논문은 사우드와 파이잘 간 패권경쟁을 고찰하고, 1964년 사우드의 폐위와 파이잘의 왕권 승계과정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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