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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외교]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선 문제 연구

폴란드 국내연구자료 기타 김용덕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동유럽발칸연구소 발간일 : 2010-10-16 등록일 : 2017-05-19 원문링크

1991년 12월 1일부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부터, 우크라이나의 관계 설정은 폴란드 외교 정책에서 최대 현안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폴란드-루스 또는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선 변경사는 몇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0, 11세기로 이 시기는 두 가지 현상으로 특징된다. 첫째, 비스와 강과 드네프르 강 하류 사이에 위치한, 슬라브의 요람지로 인정되던 지역이 폴란드와 키예프 루스로 양분됐다. 둘째, 10세기에 들어와 폴란드는 로마로부터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서유럽 라틴 문명권으로, 키예프 루스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동방정교를 도입하며 동유럽 비잔틴 문명권으로 진입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선 변경사의 두 번째 시기로 봉건제 시대인 11-14세기를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에 폴란드-루스의 민족 지역은 각기 로마가톨릭 지역-동방정교 지역 그리고 서유럽 라틴 문화권-동유럽 비잔틴 문화권과 정확히 일치했다. 세 번째 시기는 1340년에 시작해서 제2차 세계대전 초까지 이르는 6백년간에 이른다. 이 시기의 특징은 폴란드-루스 사이에서 경계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세 번째 시기에 폴란드-우크라이나 민족혼합지역이 갈리시아 지역에 형성됐다. 갈리시아는 다시 동-서갈리시아로 양분되는데, 서갈리시아는 폴란드인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지역인 반면, 동갈리시아는 우크라이나인이 주도적이긴 하나 상당수의 폴란드인이 혼재하며 민족혼합지역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뒤섞여 살던 민족혼합지역이 사라져버리며, 양국 국경선 역사에 새 시대가 도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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