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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지역]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Yugoslavia's Nonalignment Policy

중동부유럽 기타 국내연구자료 기타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동유럽발칸연구소 발간일 : 2014-12-15 등록일 : 2017-06-29 원문링크

본 논문은 냉전(Cold War) 동안, 유고슬라비아의 주요 외교정책인 ‘비동맹 외교정책’ 형성의 역사적 배경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선 그 역사적 형성 배경들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는 1948년 코민포름(Cominform) 분쟁에서 유고슬라비아가 겪었던 역사적 경험과 소련 블록으로부터의 이탈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요인으로는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경험과 이 당시 UN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서의 유고슬라비아 경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한 동안 티토는 소련과의 적극적 동맹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연방 수립 이후, 유고슬라비아 국내 정치에 대한 소련의 간섭이 증대되고, 발칸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둘러싼 티토와 스탈린간의 이견 차가 확대되자, 양국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48년 유고슬라비아는 소련 영향 하에 주도되던 코민포름 전당 대회에서 사회주의의 적으로 몰리며 축출되어야만 했다. 동시에, 유고슬라비아는 소련 블록으로부터 정치, 경제, 외교적 고립과 함께, 군사적 위협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미국과 서구를 향해 지원을 요청하였고, 여러 논란 속에 미국은 마침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물론, 1950년 1월 유고슬라비아를 UN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추천하는 등 외교적 지원을 본격화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사회주의 블록을 이탈하려는 국가들을 향해, 그 모델 국가로써 유고슬라비아를 선택하였으며, 유고슬라비아로서도 미국과 서구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던 상황에서 양 측간의 이해가 일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의 경험은 유고슬라비아가 처한 지전략적 위치 상 자국이 어느 블록 하로 들어갈 경우, 상대 블록으로부터의 공세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 전쟁과 관련한 UN 안보리에서의 표결 성향을 통해 자국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는 인도와 이집트 등 여러 국가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이들 국가들과 훗날 비동맹외교노선을 수립하는 기본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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