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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역사] 16-17세기 오스만 황실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공적 역할- 오스만 황태후의 역할을 중심으로

튀르키예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이은정 여성과 역사 발간일 : 2012-06-30 등록일 : 2017-11-24 원문링크

본고는 엄격한 성별 역할과 남녀 격리 제도가 강제되었던 가부장적인 이슬람사회 구조 속에서도 오스만 황실 여성들이 수행했던 공적 역할과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오스만 황실하렘은 그간많은 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주목받아 왔지만 놀랍게도 그들에 대한 진지한연구 성과물들은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오해와 왜곡으로점철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오스만 황실여성들에 관한 역사적인 평가이다. 남성 중심적인 역사 해석에 사로잡힌 많은 오스만사학자들은 철저한 격리 제도로 인해 황실 여성들은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없었으며 혹여나 그러한 활약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모두 불법적인 일탈 행위였고 심지어 정도에 벗어난 황실 여성들의 공적 활동은 제국 쇠퇴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서열이 존재하는 여성들의 공동체이자의전 원칙에 따라 모든 행동양식이 결정되는 국가 조직의 일부였던 황실하렘에서황실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참여해 왔고 황실 가문의 일원으로서권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황실하렘의 수장이었던 황태후의 역할이 독보적이었다. 황태후는 어머니로서 언제나 술탄의 곁에서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황실의최고 ‘어른’으로서 황실 내의 문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국정에도 관여했다. 또한 오스만제국의 대표로서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막강한 경제력과 권위를 가진 ‘정의의 구현자’로서 민중들을 위한 각종 자선 사업에도 앞장섰다. 자선사업은 이동의 자유와 가시성이 제한된 여성들이 자신의 부와 권위를 표상할 수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이 일에앞장섰다. 그 중에서도 황실의 재력과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건축 사업에 황실 여성들이 후원자로 대거 동참했다. 이 외에도 황실 여성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공공사업의 재원이 될 와크프를 조성하는 등 황실의 위엄과 경건함을 선전하는 사업에적극 참여하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황실 여성들의 영향력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그것도 남성들의 중재를 통해 행사되었고 사회적 이상으로서 무슬림 여성들의 격리는계속 주장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들의 사회적 참여와 공적 역할이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스만 사회는 ‘모권’을 중시하는 이슬람적 전통과 유목민 특유의 남녀 평등적인 개념을 상속한 사회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황실의 ‘어른’인 황태후에게는 세대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술탄의 곁에서 조언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었고 황실의 대표로서 공적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권이 허용되었다. 또한 오스만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종교적 규율과 사회적 강제는 여성의 신분과 연령, 경제적 여건에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오스만 사회는공/사 영역과 남/녀 유별이 명확하며 성별 역할이 고착된 문명이고 오스만 사회특유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오스만 황실 여성은 아무런 역사적 역할도 할 수 없었다는 이분법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역사관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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