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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역사] 1차 세계대전의 원인 - 피셔 논쟁을 중심으로

세르비아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정상수 독일연구 - 역사·사회·문화 발간일 : 2015-06-30 등록일 : 2018-02-14 원문링크

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책임이 전적으로 독일에게 있다는 피셔의 주장을 비판하는 연구이다. 피셔 주장의 근거는 1912년 12월 8일 회의와 1914년 7월 5일 회의 내용이다. 피셔는 12월 8일 회의 이후 독일이 전쟁을 준비해왔고 구실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지원 요청에 의해서 소집된 7월 5일 회의는 이른바 ‘백지수표’를 발행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다는 것이 피셔의 주장이다. 그러나 12월 8일 회의는 1912년 발칸 위기에 대한 영국의 반응에 실망한 빌헬름 2세가 즉흥적으로 소집한 회의에 불과하다. 이 시기부터 독일이 영국에 대한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은 피셔의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7월 5일 회의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은 동맹 조약에 의거한 것이고 국제법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지원을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피셔의 주장에 따르면 독일은 1911/12년 이후부터 삼국협상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계획적으로 준비했다는 것인데 1914년 6월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독일 정책결정자들은 상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사라예보의 총성은 독일 정책결정자들에게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페르디난트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하고 베를린을 아주 멀리 떠나는 북유럽을 여행했고 제국 수상 베트만-홀벡은 역시 수도를 떠나 개인 농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프로이센 육군 참모총장 소(小)몰트케도 온천에서 휴가 중이었다. 중요한 독일 정책결정자와 군부인사는 모두 베를린을 떠났다. 이것이 사라예보의 총성을 이용해서 전쟁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사람들이 선택할 행동인지 의심스럽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한 것보다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한 것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지원한 것이 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국제법적 동맹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한 것은 당시 러시아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던 범슬라브주의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 푸앵카레의 지원을 약속받은 러시아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 7월 28일부터 독일을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총동원령을 준비했다. 1차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원인은 독일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7월 5일 회의가 아니라 7월 31일 발령된 러시아의 총동원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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