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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 총선: 세속주의의 부활인가, 힌두국가의 장악인가?

인도 이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2019/05/07

543명의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인도 총선이 지난 4월 11일에 시작되었다. 9억 명에 달하는 유권자가 참여하여 100만 개 이상의 투표소에서 실시되는 대규모 선거인 탓에 5월 19일까지 1달 이상의 기간 동안 진행된다. 인도에는 지역정당과 군소 정당이 많지만 이번 선거는 힌두원리주의 정당으로 알려진 여당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 이하 BJP)과 세속주의 (Secularism)를 표방하는 야당 인도국민회의(이하 INC)가 제1당의 지위를 놓고 격돌하게 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이번 총선은 야당인 INC의 승리가 점쳐졌다. 지난해 12월에 5개 주(州)에서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인도국민회의가 압승을 거두었던 사실은 BJP의 5년 집권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전반적인 실망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중 라자스탄, 마디야 쁘라데시, 차띠스가르의 3개 주는 전통적으로 BJP의 지지세가 두터운 북인도 ‘힌디벨트’ 지역이었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견인한 INC의 젊은 총수 라훌 간디(Rahul Gandhi, 48세)는 지금까지의 유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현 총리의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모디 총리의 이름을 딴 ‘모디노믹스’의 실패가 집권 여당 BJP에 대한 민심의 이반으로 귀결되었다고 진단한다. 현 집권 여당은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조업 육성에 매진하였으나, 인도로 유입되는 해외 자본은 고용효과가 높은 제조업보다는 IT나 서비스산업에 보다 집중되었다. 인도는 지난해까지 7%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간접세율을 전국적으로 통일하고, 고액권 화폐의 교체로 지하경제를 무력화시킴으로써 경제 개혁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실업률(2017년 7월∼2018년 6월 기준)이 45년 만에 최고치인 6.1%를 기록하는 등 실업률의 벽에 부딪침으로써 경제 실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제조업 육성의 실패에 기인하는 일자리 창출 부진은 국민들에게 체감되는 경제 발전 효과도 반감시켰다.


12월 지방선거에서 충격적 패배를 맛본 BJP는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이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를 두었다. 하나는 이웃 나라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안보 이슈를 부각시키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힌두 원리주의적 정책을 보다 과감하게 펴서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힌두들의 표를 결집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정책은 힌두와 무슬림 간의 해묵은 구원(舊怨)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BJP가 과거부터 이용해 온 선거의 필승 전략이다.


파키스탄과의 분쟁은 지난 2월 14일 분쟁지역인 인도령 카슈미르(잠무·카슈미르주) 지역에서 자살 폭탄 공격으로 인도 경찰관 4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잠무·카슈미르는 무슬림이 다수이며 파키스탄과 인접한 주(州)로, 인도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세력들이 이슬람 테러단체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역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은 긴장이 감돌았다. 모디 총리는 파키스탄을 이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총력외교를 펼쳐 12일 동안 110개국으로부터 파키스탄을 비난하는 국제 여론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12일이 지난 2월 26일 12대의 전투기를 출동시켜 파키스탄 내 테러 조직의 캠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며 전례 없는 보복에 나섰다. 지금까지 인도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테러 공격에도 무력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인도의 전략에 큰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다음 날 양국은 각각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중전을 벌이며 전면전 위기까지 치달았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보유한 F16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발표했으나, 오히려 인도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하여 조종사가 억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하여 파키스탄은 F-16 전투기가 격추된 바가 없다고 부인했으며, F-16을 판매한 미국이 이를 확인했다. 양국 관계의 위기는 파키스탄에 억류되었던 인도 조종사 바르따만(Bartaman) 중령이 3일 후 석방되면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선거가 임박하면서 인도-파키스탄의 실질적 국경인 LoC(Line of Control)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어 총격전이 재개되고 인도 측 주민 2명을 비롯하여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온다.


파키스탄과의 충돌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안보 이슈가 선거 이슈를 모두 집어삼켰다. 바르타만 중령은 파키스탄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인도로 돌아온 후 영웅 대접을 받으며 애국심 마케팅의 주인공이 되었다. ‘위험한 이웃’ 파키스탄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고 총리에게 싸울 수 있는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모디 총리는 48년 만에 파키스탄 공습을 단행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주목받았고, 주춤했던 지지율도 치솟았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식민지 시대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으나, 힌두와 무슬림 간의 극심한 종교 분쟁 끝에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파키스탄과 힌두 다수의 인도, 두 개의 나라로 분리독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웃이면서도 서로 적대감과 경쟁심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고, 독립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전면전과 수많은 국지전을 겪었다. 또한 인도 측에서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이슬람 세력들에 의한 테러의 배후를 파키스탄이라 지목하며 국제무대에서 파키스탄을 테러 지원국으로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아직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이웃나라끼리의 묘한 경쟁심과 종교적 적대감이 복합되어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파키스탄과의 충돌을 촉발시키는 것은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애국심을 자극하여 표를 모으는 손쉬운 방법이다.


모디 총리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사용하는 두 번째 전략은 국내에서 힌두교도를 대상으로 하는 선동과 정체성의 강화이다. 현 정부가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힌두교에 편향된 정책들을 내놓은 것은 집권했던 지난 5년간, 그리고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왔으므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총선 시즌을 맞이하여 극우 힌두민족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구의 거의 80%가 힌두교를 신봉하는데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힌두와 무슬림 간의 갈등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정체성의 정치’를 하는 것이 표몰이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현재 인도의 제1당인 BJP는 1951년 BJS(Bharatiya Jan Sangh)라는 이름의 정치 조직으로 창당한 이래 1980년대까지 선거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80년대 중반 힌두교 성지인 아요디야에 람(또는 라마, Rama) 신의 사원을 재건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결과 1989년 총선에서 89석을 얻으며 놀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직전 선거인 1984년 총선에서 BJP의 의석수는 고작 2석에 불과했다. 당시 BJP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여타 정당들과 연립 내각을 만들어 짧게나마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BJP는 120석 이상을 꾸준히 얻으며 그 자신이 주축이 된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집권했고, 야당으로 물러섰던 2004년과 2009년에도 각각 138석과 116석을 얻으며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했다. BJP의 정치적 성공의 근저에는 힌두 민족주의적 캠페인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핵심이 바로 람 사원 재건운동이다.


힌두들의 믿음에 의하면 람 사원 재건운동의 중심지가 된 아요디야는 인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신인 람이 태어난 곳이다. 그가 태어난 자리에 람을 기리는 사원이 있었는데, 16세기 초 이슬람이 이 지역을 침략하여 정복한 후 힌두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이슬람 황제 바부르의 이름을 딴 ‘바부르의 이슬람 사원(Babri Masjid)’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수백 년이 지난 20세기에 BJP는 아요디야에 원래 람 사원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바부르의 사원을 없애고 람 사원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몇 년에 걸친 캠페인은 효과적으로 힌두를 결집시켰고, 그들의 표도 BJP로 몰아주는 역할을 했다. 급기야 1992년에는 BJP의 지도자들과 수만의 과격 힌두 교도들이 아요디야로 몰려들어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고야 말았다.


그 후 이 지역은 ‘분쟁지역’으로 선포되어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으나,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다시 호출되어 힌두의 표를 몰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아요디야에서 힌두 원리주의 단체가 사원 건설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한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왔고, 람 사원을 건설하라는 종교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주장도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BJP의 정치인들은 아예 아요디아의 과거 이슬람 사원 자리에 람을 기리는 사원을 짓겠다는 공약까지 발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 중에는 ‘암소 자경단’의 활동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암소 자경단’이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단들은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또는 힌두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BJP의 자매단체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이들은 소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죽은 소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체를 처리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흰 암소는 ‘어머니’이며 여신의 상징으로 독실한 힌두들에게는 경애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다. 더 나아가 성별과 색깔을 막론하고 모든 소를 보호하자는 운동은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늙어서 버려진 소들에게 먹이와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소 보호소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소 보호 운동은 힌두들이 경애하는 소를 잡아서 그 고기를 먹는 영국인들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고, 역시 소를 도살하고 섭취하는 무슬림들에 대한 반감과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미 인도에서는 BJP 정권의 힌두 원리주의 정책으로 소의 도살이 전국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암소 자경단은 죽은 소의 가죽 등을 이용하려 하거나 소를 운반하는 이들까지도 공격하며 비(非) 힌두 집단들을 위협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올 4월 들어서도 죽은 소의 가죽을 벗기던 이들이 힌두 교도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끝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소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만 44명이나 된다. 물론 폭력을 저지르는 일은 엄연한 범죄 행위이지만, 힌두 우선의 정책과 사회적인 분위기 탓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일도 있다.


이와 같은 힌두 중심주의 정책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인도 사회 내에서 소수 종교 집단을 소외시키고 불안하게 한다. 아요디야의 람 사원 재건 운동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있던 자신들의 성전을 잃어버린 무슬림들의 상처를 계속 건드리고 있다. 소 보호를 이유로 폭행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는 이들은 모두 암소의 신성성을 믿지 않는 무슬림, 기독교도, 불교도 등의 소수 종교 집단과 전통적으로 소고기를 섭취하는 부족민과 하층 카스트 등이다. 올 4월에 폭행당한 사람들도 기독교도들 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람 사원 재건운동이 활발해진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종교 폭동으로 무슬림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부 통계로 1,044명이 숨지고 2,500명 이상이 부상당한 2002년의 구자라뜨 폭동이다. 시민단체들은 2,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추산하기도 한다. 이 중 절대다수는 무슬림이다.


소수집단에 대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무슬림 테러단체의 활동은 ‘힌두 공포정치’에 대항하여 한층 강화되고 있다. 올 2월의 자살 폭탄 테러 이후에도 최근 인도령 잠무·카슈미르주에서는 힌두 우익단체인 RSS(민족봉사단, BJP의 자매단체)의 지도자와 경호원이 무장 괴한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오주의(Maoist) 반군 등 반정부 세력이 힌두 원리주의적 정책과 소수집단에 대한 소외와 압박에 대항하여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 유세를 위해 이동하던 의원 일행의 차량을 겨냥한 테러 공격으로 사제 폭발물이 폭발하여 주 의원 등 7명이 사망하였다.


인도는 우리의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가 아니다. 모든 신앙을 존중하고 정치가 종교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하는 세속주의를 국시(國是)로 세워진 나라이다. 힌두 원리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인도 국가가 세속주의라는 원칙에 의해 존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식인들과 힌두 원리주의 치하에서 억압받는 이슬람, 기독교 등 소수집단과 하층 카스트, 부족민들이 그러하다. 세속주의라는 원칙에 비교적 충실한 정당이라 여겨지는 INC가 이런 소수집단 사이에서 보다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INC는 세속주의에 대한 소수집단의 열망을 의식해서인지 자신들의 집권보다는 모디 총리의 재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며 반(反) 모디 세력을 결집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는 파키스탄과의 안보 이슈와 힌두민족주의라는 필살기를 시현 중인 BJP가 더 많은 인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된다. 모디 총리는 올해 초만 해도 지지율이 40% 안팎에 머무르며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지만 최근에는 60% 대로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떠나간 농민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매년 모든 농민들에게 우리 돈 10만 원에 상당하는 기본 소득을 제공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인프라 분야에 100조 루피(약 1,640조 원)를 투입하겠다는 공약도 했다.


현재 인도의 상황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대외정책이나 특히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인도의 대(對) 파키스탄, 대 이슬람권 정책이 어떤 기조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외교적 관심이 인도와 동남아 여러 나라를 타깃으로 하는 남방정책에 쏠리고 있긴 하지만, 국익과 직결되는 지역은 인도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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