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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지정학과 연결성을 통해 본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 관계 고찰

파키스탄 Usman Khalid University of Nottingham Malaysia Associate Professor 2019/05/07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배경


남아시아에 위치한 파키스탄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중국,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의 중요성은 과소평가되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8년에 발표한 편람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경제는 2019년~2023년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세계 25위, 명목 GDP 기준으로 세계 43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파키스탄은 2억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세계 6위의 인구 대국이며, 면적이 88만 1,913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33번째로 넓은 국가다. 게다가 2019년 기준 세계 군사력 평가에서 국방력 17위를 차지한 핵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은 정치, 경제,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예전부터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초강대국들이 파키스탄을 두고 각축전을 벌여왔다.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는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냉전 시기과 미국의 아프간 대테러 전쟁 기간에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하였다. 다시 말해, 파키스탄의 도움이 없으면, 카슈미르(Kashmir) 분쟁을 해결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도 파키스탄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지정학과 연결성이라는 주제가 파키스탄 외교 정책을 지배하는 담론이 되어왔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부진한 경제성장과 국가 안보 위협 때문에, 외교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써 자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연결성이 퇴색되고 있다. 일례로, 경제와 정부 재정 상황이 악화된 탓에 파키스탄 정부는 해외로부터의 원조와 융자 지원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파키스탄은 현금과 무기의 확보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의 일원으로 가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파키스탄 국내에 자금이 고갈되면서 경제 부양을 위해 외화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파키스탄은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중국을 비롯하여 전통적 우방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로부터 융자를 구하고 나선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협정에 서명하고 중국이 주도한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것도 열악한 자금 사정을 해소하기 위함인데, 문제는 CPEC 사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파키스탄에 이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만 국가들과 오랫동안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파키스탄은 재정 지원과 군사 안보상의 이유로 걸프만 국가들과 손을 잡고 있는데, 이로 인해 파키스탄과 이란과의 관계는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의 바스토스(Bastos) 교수는 “역내 정치가 남아시아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각국이 역내 경제 정치 통합을 이루는 데에 의미 있는 진전을 거두지 못하면 발전을 이뤄내기 어렵다. 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문화 및 언어적 유대 관계가 존재하지만,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분쟁으로 인해 이것이 지역 통합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여러 이웃 국가들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파키스탄이 지정학의 ‘희생자’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이다,”(2019)라고 설명한다.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그래도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와 연결성은 파키스탄이 외교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파키스탄이 지정학적 연결고리 속에서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지역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가능하다. 이와 함께 파키스탄이 중앙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역사적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차례의 중대한 지정학적인 좌절이 파키스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첫째, 1971년 파키스탄이 동남아시아와의 지정학적 연결 고리의 종말을 알리는 동부 지역(동파키스탄, 현 방글라데시) 분리된 사건이다(바스토스, 2019).


둘째, 소련의 붕괴로 파키스탄이 지닌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에 의문이 제기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동남아시아의 접근이 차단되면서 파키스탄이 중앙아시아 역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기고, 역내 문제에 집중해 의미 있는 외교 정책을 고안할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파키스탄의 인접지역과 관련된 주요 쟁점과 기회를 논하고,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고자 한다. 바스토스 웨스트민터대학 교수는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구소련 붕괴 이후 파키스탄은 지정학과 경제적 관점을 포함한 다른 관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올바르게 간파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중앙아시아 정책은 여전히 미온적이다,”라고 적고 있다.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의 관계는 여러 요소로 인해 크게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장기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의 내전과 테러단체들의 활동이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의 교류에 가장 큰 방해인 듯하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EU 전체와 같은 길이인) 2,670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맞닿아있는데, (식민지배 당시 영국이 국경을 정하며 민족 구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경선의 일부는 인구 밀집 지역을 관통하기도 하고, 일부는 험준한 산악 지형이어서 외부 침입자가 국경을 무단으로 넘나들기가 용이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만성적인 안보 불안을 피해 수많은 난민이 파키스탄으로 밀려들고 있고, 파키스탄은 이를 막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파키스탄의 외교 정책이 국내에서 전개되는 종교적 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다 보니, 대개 세속주의 성향이 짙은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와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2010년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폭넓은 교류를 꾀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지역경제협력(CAREC) 기구에 가입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웹사이트에 따르면, CAREC는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중국,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11개국이 참여한 지역 협력기구다. CAREC는 6개의 다자간 기구의 활동을 통해 지역의 경제 성장과 빈곤 격퇴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CAREC의 장기적인 비전은 ‘좋은 이웃’, ‘좋은 동반자’, ‘밝은 미래’이다. CAREC는 역내 무역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진하고,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CAREC는 역내 국가들이 교통, 무역 절차 간소화, 에너지, 무역 정책이라는 네 분야의 우선 영역에서 협력을 통해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원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파키스탄은 앞서 1985년에 지역 기구인 경제협력기구(ECO)에 가입했다. 그런데 최근 파키스탄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과 같은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 개발 사업인 일대일로(BRI) 사업의 일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투자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파키스탄 남부의 카라치(Karachi) 근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CAREC의 교통 회랑 계획을 통한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연결성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스토스 교수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CPEC와 CAREC는 파키스탄이 외교 정책을 유라시아 쪽으로 선회할 수 있도록 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CPEC를 포함해 중앙아시아 국가와 유라시아 간의 연결성이 역내 정책과 관련하여 파키스탄이 가진 몇 안 되는 선택사항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제도적 절차의 가속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파키스탄이 CAREC와 CPEC를 효과적인 외교 정책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CAREC 측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항만을 보유한 파키스탄을 경제 활동의 허브로 높이 평가하고 있어, 파키스탄과 CAREC 간의 지정학적 연결 고리가 지닌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란 남동부의 차바하르(Chabahar)와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 항 역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인도양으로 나가는 출구를 제공할 수 있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연결성은 쉽게 도전받을 수 있다. 게다가 국제북남교통회랑(INSTC)은 인도를 이란과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을 거쳐 발트해(Baltic Sea) 지역과 연결하고 있어, 파키스탄의 이웃 국가에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연결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INSTC를 지정학적 위협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연결성을 증진해 줄 새로운 잠재력을 지닌 자산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편, 파키스탄은 인도와 카슈미르(Kashmir) 분쟁이 재점화되며 남아시아 지역에서 외교 정책상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이란과의 관계도 껄끄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조속히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거시적인 외교 정책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은 외교 정책상의 운신 폭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천연가스와 석유 자원에도 접근하는 길을 확보할 수 있다.


비록 현재 임란 칸(Imran Khan) 정부가 UAE,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등 몇몇 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고 중국과의 CPEC 사업을 통해 파키스탄에 연결성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추진할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였지만, 이러한 성과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독자적이고 헌신적인 외교정책을 대체할 수도 대체해서도 안 된다. 파키스탄 현 정부는 여러 곳에 걸쳐 분산된 외교정책을 한 데로 뭉쳐 독자적인 대 중앙아시아 정책을 전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더불어 파키스탄 정부는 지정학적 연결성을 확대해, 외교 정책상 운신 폭을 넓힐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다른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다. 일례로 파키스탄 정부가 INSTC에 가입해 서부 러시아와 북유럽 지역과의 연결망을 확보하면 파키스탄의 수출 상품 시장이 핵심 시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열리게 되므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의 관계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파키스탄이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CPEC에 참여하고 있으며, 독자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대(對) 중앙아시아 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있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파키스탄의 외교 정책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파키스탄은  CPEC, CAREC, 그리고 INSTC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 통합하기 위한 외교정책 개혁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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