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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미·중 무역전쟁 이후 ASEAN의 부상 : 신남방정책을 위한 제언

동남아시아 일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9/12/26

무역전환 효과 수혜를 보는 동남아시아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가장 중요한 명분은 무역적자의 축소이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계속 증가해 온 대중 무역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2018년 3월부터 중국산 상품에 대해 여러 차례 보복관세를 부과해 왔다. 2019년 중반 보복관세를 부과한 효과가 나타나면서, 미국의 대(對) 중국 무역적자는 물론 총 무역적자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무역통계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무역적자 축소가 미국경제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첫 번째 문제는 무역적자 축소가 수출 증가가 아니라 수입 축소에서 기인하였다. 작년 5월 이후 무역적자가 최대로 감소한 지난 10월 미국의 상품 수입은 1.7%, 상품 수출은 0.2% 각각 감소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모든 국가에 대해 무역적자가 줄지 않았다. 즉  중국에 대한 적자는 줄어들었지만 일부 국가들에 대한 적자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에 대한 보복관세가 미국에게 수출을 늘이는 무역창출(trade creation) 효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대체재를 수입하게 만드는 무역전환(trade diversion) 효과도 함께 발생시켰다는 점을 의미한다. 보복관세를 부과한 중국산 상품들 중에서 미국 내에서 당장 생산할 수 없는(바꾸어 말하자면, 수입대체를 할 수 없는) 상품은 중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제조업이 중국산 상품을 다 대체하기 전까지 무역전환 효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UNCTAD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무역전환 효과 약 210억 달러 중에서 대만이 사무기계와 통신장비를 중심으로 42억 달러, 멕시코는 농식품, 운송장비 및 전자기계를 중심으로 35억 달러, 유럽연합(EU)은 기계를 중심으로 27억 달러, 베트남은 통신장비와 가구를 중심으로 26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무역전환 효과는 17억 달러로 우리나라, 캐나다 및 인도의 9∼15억 달러 보다 크다. 그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무역전환 효과의 혜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중 수입 축소로 인한 무역전환 효과의 혜택이 더 커질 가능성이 많은 국가는 베트남이다. 시티뱅크는 2019년 1∼9월까지 중국 내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발표한 109개 회사 중 61개가 베트남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말레이시아 19개, 태국 16개와 비교해 볼 때, 베트남이 탈중국 전략의 최적의 대안으로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다. 베트남의 최대 장점은 중국 내 생산기지와 지리적으로 근접한 것은 물론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및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에도 참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ASEAN이 미국의 대중 보복관세 부과 이후 등장한 무역전환 효과를 얼마나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무역전쟁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보호주의의 여파가 ASEAN에도 미치고 있다. 중국 기업과 가치사슬로 엮여 있는 ASEAN 기업은 무역전환 효과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ASEAN 기업들은 무역전쟁 이후 실적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의 대중 보복관세가 집중된 전기전자와 기계류에서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ASEAN이 탈중국의 대안이 되기 위한 인프라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세계 최대 IT 기업인 애플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쉽게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쇼어링(reshoring) 요구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중국 내 생산라인을 대폭 축소하거나 ASEAN 국가로 이전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급사슬을 이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숙련 노동력과 소재 가공 및 부품 생산 산업은 물론 대규모 인프라까지 확보되어야 한다. ASEAN에서는 이러한 여건이 아직까지 충분히 형성되지 때문에, 현재까지 저렴한 노동력에 기반을 둔 노동집약적 산업만 생산시설만 중국에서 ASEAN 국가들로 이전되고 있는 중이다.


신남방정책에 유리한 환경이 등장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국가들이 무역전환 효과의 주요 수혜국이라는 사실은 우리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최상의 명분이 되고 있다. ASEAN을 미국·중국·일본·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킨 신남방정책을 더욱 더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2019년 11월 25~27일 부산에서 열린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ASEAN과 대화관계 수립 30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30년 미래 협력방향을 제시하였다.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했던 2008년 우리나라는 ASEAN과 FTA를 체결한 후 교역, 투자, 인적 교류 모두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FTA 체결 이후 우리의 대ASEAN 교역은  연평균 9%, 무역수지 흑자는 22% 각각 증가하였다. 그 결과 ASEAN은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제2대 교역시장으로 부상하였다. 우리의 대ASEAN 교역은 2009년부터 연 평균 12%씩 증가해왔는데, 2014년부터 ASEAN은 중국을 제치고 최대 투자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우리나라의 대ASEAN 교역의 약 42.7%(수출 48.6%, 수입 32.9%), 투자액의 약 51.5%를 차지하는 베트남은 특별히 중요하다. 2009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10대 수출국에 진입한 베트남은 2010년 9위, 2011년 8위, 2012년 6위, 일본을 제친 2015년에는 4위, 홍콩을 제친 2017년 이후에는 3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런 성과는 우리 기업이 수출한 부품과 중간재를 베트남 기업이 가공해서 다시 수출하는 가치사슬에 기반해 있다. 그 비중뿐만 아니라 구조에서도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2018년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수출한 품목을 보면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및 센서, 무선통신기기, 기구 부품, 석유제품 등 5대 품목이  55.1%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에 대한 투자도 2018년 누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7,459건 625.7억 달러로 일본(3,996건, 570.2억 달러)에 앞서있다.


베트남이 메콩강 유역을 공유하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동서 경제회랑(East-West Economic Corridor) 프로젝트에도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남중국해의 베트남 다낭에서 인도양의 미얀마 양곤을 연결하는 이 회랑은 그 길이가 1,450여 km에 달한다.  인도-미얀마-태국 삼각 고속도로가 2020년에 완전히 개통되면, 이 회랑은 인도까지 연결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ASEAN이 독자적인 공급사슬과 소비시장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ASEAN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먼저 ASEAN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했던 것과 같이 저임금 노동에 기반을 둔 가치사슬을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재편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부품과 중간재를 수출해 ASEAN에서 조립해 해외에 수출하는 가공무역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력 분야를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또한 체결한 지 10년이 지난 한국-ASEAN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선해야 한다. ASEAN 국가들 중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는 개방 수준이 높은 CPTPP 회원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존 양자 및 다자 FTA를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적개발원조(ODA)의 규모를 증대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196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은 물론 최근에 지원을 급속하게 늘리고 있는 중국과 비교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정학적 경쟁 위험에 대비해야
장기적 차원에서 미국은 공급사슬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도 유념을 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현재 중국 기업이 베트남을 통한 우회 수출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베트남이 중국보다 더 나쁘다고 비난한 바 있다. 2019년 베트남의 대중 수입과 대미 수출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으며 수출이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빨리 늘고 있는 통계를 볼 때, 베트남 기업들이 중국산 부품과 재료를 수입하여 가공한 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베트남이 중국 기업들이 보복관세를 회피하는 통로로 계속 악용될 경우 미국은 보복관세와 같은 수입 제한 조치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공급사슬을 구축할 때 중국 기업들의 참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ASEAN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제어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영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호주 등과 함께 인도태평양 비즈니스포럼을 설립하여 ASEAN의 경제개발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내용을 볼 때 미국의 지원 규모는 중국의 1/10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군사·안보적 영향력이 중국의 부상에 대한 위협 의식이 결합된다면, ASEAN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미·중 경쟁으로 ASEAN을 둘러싼 가치사슬이 붕괴거나 단절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ASEAN에 대해 투자할 때 전략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검토는 필수적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 기업과 경쟁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무역전쟁 발발 이전인 2010년대 중반 이후 인건비 상승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중국 기업들은 ASEAN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해 왔다.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중 하나인 해상 실크로드를 개발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은 이런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은 현지 기업의 인수합병은 물론 물류 및 항만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모든 ASEAN 국가들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상승하였다. 심지어는 역사 및 국경 분쟁 때문에 반중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베트남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ASEAN 수입에서 그 비중이 감소하긴 했지만, 일본기업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와 중국과 달리 FTA에다 서비스, 인적교류, 법률자문 등 거래 원활화, 제도 조화 등을 포함하는 경제협력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브루나이와 이미 체결하였다. 또한 일본은 작년에 발효된 CPTPP와 과 올해 체결된 RCEP의 협상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이 지역의 지도국으로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큰 중국 및 일본과 대응한 수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ASEAN의 부상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남방정책과 같이 ASEAN을 미국·중국·일본·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으로 고려한 것은 신남방정책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특정 정부에서 입안한 대외정책은 정책 집행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사용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정권의 임기가 끝나면  폐기되는 사례가 많았다. 신남방정책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차원의 대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신남방정책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 모두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무역전쟁이 악화되어 패권 경쟁으로 확대될 경우, 어느 쪽으로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과 협력을 논의할 때 군사안보적 차원을 최대한 배제하고 경제·문화 분야에 집중을 해야 한다.

 

ASEAN이 미중 경쟁의 위험에 대해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우리 정부가 이런 계기를 잘 활용한다면, ASEAN을 교역은 물론 안보 차원에서도 4대 강국 이상으로 중요한 동반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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