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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코로나 19 와 동남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민주주의 위기
동남아시아 일반 유기은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 2021/06/14
동남아시아 신흥국의 팬데믹 현황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발명과 보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만 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최근 인도, 브라질에서의 무서운 확산세와 비교할 때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의 팬데믹 확산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이 국가들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19 사망자는 동남아시아 내 각국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사망자는 2020년 5월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인구 백만 명당 누적 사망자가 200명에 근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21년 1월 28일 하루 동안 476명, 4월 4일에 427명이 사망하였고, 5월 10일까지 누적 사망자가 약 4만 8,000명으로 아시아에서 인도 다음으로 높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필리핀 내 코로나 사망자는 2021년 4월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여 4월 6일 일일 사망자 382명, 4월 9일 일일 사망자 401명을 기록했다. 미얀마의 경우, 작년 10월부터 1월까지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빠르게 사망자가 증가하다가 2월 들어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는 2020년까지는 코로나를 잘 통제해왔으나 2021년 초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반면, 싱가포르, 베트남은 코로나 사망자가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31명 뿐이며, 베트남은 총 35명이 사망했고 2020년 9월 이후로는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태국, 캄보디아는 2021년 4월에 최근까지 사망자 늘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싱가포르, 베트남과 함께 매우 낮은 사망자 수를 보이고 있다.
<그림 1>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코로나 사망자율 (백만명당 누적 사망자수)
* 출처: CSIS Southeast Asia Program1)
<그림 2> 동남아시아 주요국 백신접종 현황(연한색은 1차접종 비율, 진한색은 접종완료 비율을 의미)
* 출처: Our World in Data2)
백신 접종과 관련해서는 특히 싱가포르와 캄보디아가 앞서나가고 있다. 싱가포르와 캄보디아는 각각 인구의 23.9%, 10.8%가 1차 접종을 완료해 국제 수준인 8.3%를 웃도는 접종률을 보인다. 싱가포르는 2020년 12월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데 이어 2021년 3월부터는 모더나 백신도 접종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현재 인구의 19.3%가 백신을 맞아 아시아 국가(인구 100만 이상 기준) 접종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3) 캄보디아 또한 정부 차원에서 백신 접종을 강력히 요구하여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가장 빠른 코로나19 사망자 증가율을 보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접종률은 각각 4.9%, 3.4%, 1.8%로 비교적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은 낮은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때문인지 1회 이상 접종한 인구 비율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비상 조치
유럽, 미주,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신흥국 정부들 또한 팬데믹의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 조치들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비상조치의 수준이 코로나 피해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불필요하게 강력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동남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은 팬데믹 초기부터 매우 강력한 락다운 및 봉쇄 정책을 실시하여 팬데믹을 권력 남용의 정당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코로나 독재’를 낳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태국총리는 코로나19 초기인 작년 3월 26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비상 상황에 대한 왕실 칙령에 따라 코로나19 대책을 실행하기 위한 전권을 총리가 가지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 또한 코로나를 빌미로 언론 검열과 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였다. 2021년 3월부터는 방역수칙 위반 시 5,000달러(한화 약 56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일부러 감염병을 퍼뜨렸다고 정부가 판단할 경우 2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으며 정부가 집회나 시위를 임의로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4) 또한 훈 센 총리는 백신 보급을 가속화하기 위해 2021년 4월 접종을 거부하는 공무원과 군인들을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5) 이런 강제적 성격을 띤 요구 때문에 백신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는 비교적 높은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독 자적인 코로나19 태스크포스를 조직하여 ‘코로나19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언론을 통제하였다.6) 당시 11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언론을 장악해 군부가 주도하는 집권세력에 유리한 선거 판을 짜기 위한 의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집권세력과 군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선거에서 압승하자 군부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을 구금하였다. 군부는 이들을 기소하며 ‘코로나19 방역조치 위반’ 혐의도 추가하였다.
베트남 또한 확진자가 발생한 아파트 동 전체, 마을 전체를 봉쇄하고, 소셜미디어로 코로나 관련 허위, 비방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공격적인 방역 정책을 펼쳤다.7)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0년 3월부터 특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월에는 군경에게 “봉쇄조치를 어기고 법집행을 시민을 사살해도 된다”는 명령을 내린다. 이러한 발표가 있은 지 3일 후 실제로 필리핀 남부 아구산 델 노르테주(州)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한 경찰관이 술에 취한 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이동하던 A씨가 이를 지적한 경찰관에게 낫을 휘두르며 항의하자 즉각 사살하였다.8)
팬데믹과 동남아시아 신흥국의 민주주의의 위기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후퇴는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지난 11월 미국 외교 협쇠(CFR)연구원 조슈아 컬랜칙(Joshua Kurlantzick)은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실은 한 기고문에서 “남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2010년대 초부터 퇴보를 겪어 왔으며 코로나19는 이러한 퇴보를 더 촉진시킬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9) 팬데믹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동남아시아 신흥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첫째, 위의 예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동남아시아의 권위주의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코로나19를 새로운 입법을 제정하고 권한을 확대할 기회로 이용하였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취해진 독재자들의 특별조치들은 대중들의 묵인과 지지 속에서 더욱 쉽게 정당성을 얻었다. 물론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많은 대중들이 팬데믹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강력한 정부 조치들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민주주의 퇴보가 가속화된 면도 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이 비상조치가 효과를 거둔 국가는 물론이고, 강력한 봉쇄정책을 실시하고도 코로나19 피해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필리핀에서조차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10)
반면, 동남아시아 내에서 비교적 민주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은 국민들로부터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여론조사기관인 인도네시아정치지표(Indikator Politik Indonesia)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민주주의에 대한 인도네시아 대중의 지지가 크게 하락하였으며, 이는 선거를 통해 선출한 인도네시아의 지도자들이 코로나19 대응에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11) 이처럼 동남아시아 신흥국에서 (혹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는 독재자들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민주주의 지도자들에게는 심판대가 되고 있다.
둘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빠르게 민주주의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음에도 국제사회가 브레이크 역할을 거의 해주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의 어려움은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예외 없이 겪고 있으며, 각 국은 팬데믹으로 인해 심각해지고 있는 국내 위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국가에 개입, 중재, 경고 등의 조치를 취할 여력이 없다. 실제로 2020년 미얀마 정부와 군부가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락힌 주 등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무력단속을 하기 시작했으나 국제적으로 이슈화 되지 않았다.12) 특히, 기존에 권위주의 국가들의 탄압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던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되었고, 당분간 이들은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국내의 방역, 경제 재건, 여론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팬데믹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인 손실 이외에도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비단 동남아시아 신흥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남미, 동유럽 지역의 권위주의 국가들과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팬데믹으로 인해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의 재건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될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가속화 되고 있는 민주주의 퇴보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시급하다.
* 각주
1) https://www.csis.org/programs/southeast-asia-program/southeast-asia-covid-19-tracker-0
2) “Coronavirus ((COVID-19) Vaccinations,”https://ourworldindata.org/covid-vaccinations?country=KHM
3) “韓 접종률의 10배…‘싱가포르, 올 9월 집단면역 달성 전망’”, 한국일보, 2021. 4. 13일자
4) “Cambodia accused of using Covid to edge towards ‘totalitarian dictatorship’,” The Guardian, Apr. 19. 2021
5) 연합뉴스, “캄보디아 총리, 코로나 급속확산에 ‘백신 안 맞는 공무원 해고’”, 2021. 4. 8일자.
6) Murray Hiebert, “COVID-19 threatens democracy in Southeast Asia,” East Asia Forum, 25 May 2020.
7) “Emerging COVID-19 Success Story: Vietnam’s Commitment to Containment”, Our World in Data, https://ourworldindata.org/covid-exemplar-vietnam-2020
8) Murray Hiebert, 위의 글.
9) Joshua Kurlantzick, “Can COVID-19’s Impact on Democracy in Southeast Asia be Reversed?,” The Diplomat, Nov. 25, 2020.
10)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방역 실패하고도 지지율 91% ‘코로나 독재’ 완성한 막말왕”, 중앙일보, 2020.10.20일자
11) Joshua Kurlantzick, 위의 글.
12) Joshua Kurlantzick, “Covid-19 batters Asia’s already-struggling democracies,” The Japan Times, Jan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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