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네시아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 도입의 주요 쟁점
인도네시아 이지혁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2023/04/11
서론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가 많은 수도 자카르타는 해수면 상승에서 기인한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021년 7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제출하면서 탄소중립을 기존의 목표였던 2070년보다 10년 앞당긴 2060년 또는 그보다 더 이른 시점에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G20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11월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인도네시아의 탈석탄 지원 계획을 담은 ‘공정에너지 전환 파트너십1) (JETP, 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에 서명하면서 JETP의 지원을 받는 두 번째 국가가 되었는데, 동 회담에서 2050년까지 발전 분야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10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존의 목표치를 업데이트한 NDC를 UNFCCC에 제출했는데, 수정된 NDC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Business as usual)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자력(무조건) 32%(기존 29%), 국제 지원을 활용할 경우 43%(기존 41%)까지 감축하겠다고 명시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 중 하나로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를 도입하고 이를 정교화하는 과정에 있다. 탄소가격제는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지,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핵심적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남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제조업 발달이 늦은 아세안 국가들은 선진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많지 않은 편이나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규모, 넓은 영토, 그리고 산업화·도시화로 인한 전력수요 급증으로 아세안 국가의 탄소 배출량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2위의 열대우림 및 세계 4위의 이탄지(泥炭地)를 보유한 국가로 ‘토지 이용, 토지 이용 변화 및 임업(LULUCF, land use-land use change and forest)’2) 에 따라 해마다 큰 폭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변동이 있으나, 절대적인 배출량은 1990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세계 5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보면 인도네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 7~10위를 차지했다(LULUCF 제외). 인도네시아의 석탄화력발전은 2010년 총 발전설비용량의 38%를 차지했으나 2020년에는 52.3%까지 증가했다. 이는 상당수의 석탄화력발전소가 10년 미만의 신규 시설로, 노후화로 인한 폐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2년 JETP에 서명하면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지만, 이미 건설 중이거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발전소의 추가 유입으로 절대적인 석탄화력발전의 설비용량은 2030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이브리드 제도: cap-tax-and-trade system
인도네시아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탄소가격제는 탄소세(carbon tax)와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ystem)를 혼합한 방식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소가격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탄소가격제는 오염자부담 원칙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에 가격을 부여하여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 수단으로, 이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이다. 탄소세는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 같은 화석연료에 포함된 탄소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물론 탄소세에서 탄소는 탄소에 국한하지 않고 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탄소세는 오염자로 하여금 그들의 한계저감비용(marginal abatement cost)3)이 탄소세율과 같아지는 수준까지 배출량을 감소시키도록 하므로, 결과적으로 개별 오염자의 감축비용 및 감축수단에 의해 배출량이 결정된다. 한편 총량 제한 배출권거래(cap-and-trade)제도는 정부가 기업이나 온실가스 배출자에게 배출권을 할당하고 이를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즉, 국가의 감축 목표에 따라 각 기업이 배출량을 할당받고 이 한도에 따라 잉여 배출량을 판매하고 초과 배출량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배출권이 거래된다.
각각 제도의 장단점을 간략하게 언급하면, 전자(탄소세)의 경우 매우 포괄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주체에 공평하게 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소규모 배출자에게도 탄소세를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까지 그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아울러 탄소세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할 수 있으므로 제도 설계가 간편하고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적정 세율 설정이 어렵고 조세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탄발전소의 경우 탄소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다른 화석연료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후자(배출권거래제)의 경우 배출량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야에 대해서 배출목표량을 설정하기 때문에 배출 총량을 관리할 수 있고, 시장기능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 아울러 세율이 고정적인 탄소세와 달리 배출권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고, 초과 배출의 경우 거래시장을 통해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 방법 설계, 거래시장 설치, 배출량 모니터링 및 감독 등 거래비용과 절차상의 복잡성이 수반된다. 또한, 시장 참여자가 충분치 않을 경우 가격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각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제도(cap-tax-and-trade system)’를 추진하고 있다.
탄소가격제 도입
인도네시아는 수년 전부터 탄소가격제 도입을 준비해 왔는데, 2017년 ‘환경 경제 수단에 관한 정부령 No.46/2017’이 통과되면서 핵심적인 진전이 있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수 있는 첫 번째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규정으로, 2024년까지 배출권거래제 및 폐기물 허가 거래 시스템이 실행되도록 의무화했다. 이후 2021년 탄소가격제와 관련된 대통령령과 국회 법안이 제정되면서 제도적으로 더욱 큰 진전이 있었다. 2021년 10월 인도네시아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가 있기 직전에 탄소의 경제적 가치를 구현하고 NDC를 달성하기 위한 관리 지침으로 「국가기여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의 경제적 가치 이행 및 국가개발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 통제에 관한 대통령령 2021년 제98호」(Perpres 98/2021)를 제정했다. Perpres 98/2021은 탄소가격제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 NDC 목표,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는데, 탄소 가격제와 관련된 주요 사항은 탄소세 도입, 배출권거래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 성과기반 지급(성과보수)을 포함한다.
<표1> 아세안 플러스 3 탄소가격제 현황
*주) 초록: 완전한 이행, 파란색: 진행 중, 노란색: 검토 중
자료: Andriansyah and Hong 2022
아울러 같은 날에 인도네시아 국회는 조세 개혁과 국가 예산 수입 최적화를 목적으로 「조세규정 통일에 관한 법률 2021년 제7호」(UU 7/2021)4)를 통과시켰다. 동 법률에는 개별 세법(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부가세법, 소비세법) 일괄 개정, 조세 사면, 그리고 탄소세가 포함되어 있다. UU 7/2021에 따르면 탄소세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탄소 배출에 부과되며, 그 대상은 탄소를 함유한 상품을 구매하거나 정해진 기간 내에 일정 수준의 탄소 배출을 초래하는 활동을 수행한 개인 또는 회사이다. 탄소세율은 최소한 국내 탄소 시장의 이산화탄소 등가물 1kg당 가격보다 높아야 하며, 인도네시아는 이를 30루피아(한화 약 2.56원)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가격은 인도네시아가 2021년 3월부터 8월까지 32개 석탄화력발전소가 참여한 가운데 실시한 자발적 ETS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도출한 결과에 근거한다. 탄소세는 준비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2025년까지 완전한 시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선, 석탄화력발전소부터 시범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2022년에 예정되었던 탄소세 도입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에 이어 동남아에서 두 번째로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2022년 4월 1일부터 석탄화력발전소에 시범적으로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두 차례 연기하면서 아직 탄소세 도입에 대한 명확한 날짜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2022년 G20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개도국을 대표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기술 및 자금 원조가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탄소세 도입으로, 인도네시아는 11월에 예정된 G20 정상회담 이전에 탄소세 도입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국내외의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으로 도입을 주저했다.
한편, 탄소세와는 달리 2023년 2월 22일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MEMR, Minister of Energy and Mineral Resources)는 전력발전 부문에 대한 ETS 도입을 발표했다. 새로운 시스템은 당분간 100MW 이상의 발전설비를 갖춘 시설에만 적용될 예정으로, 99개의 석탄화력발전소(33.6 GW)가 해당된다. ETS는 세 단계로 실시될 예정인데, 1단계(2023~2024년)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만 대상에 포함되고, 2단계(2025~2027년)와 3단계(2028~2030년)에서는 ETS 적용 범위가 석유·가스화력발전소와 국가망에 연결되지 않은 석탄화력발전소까지로 확대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3년 발전소에 할당된 총배출량이 2,0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등가물(CO2eq)에 달하여, 한 해 동안 약 50만 톤(CO2eq)이 초과 배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광물자원부는 ETS 도입 첫해에 50만 톤(CO2eq)이 거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 ETS는 소규모 석탄 및 다른 화석연료 발전소로 확대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각각의 발전소의 전력발전량(MWH)에 따라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는 ‘집약도 목표(intensity target)’를 제시했다. 이는 절대적인 총량을 제한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자체적으로 설정한 기준(ex. 전력발전량)으로 나눠 산출한 값으로, 원단위5) 배출량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온실가스 원단위 방식은 배출 한도가 사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이행 기간 중 경제 상황의 변화 혹은 발전량에 따라 사후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가 도입하는 ETS는 결국 탄소세와 함께 하이브리드 형태의 ‘cap-tax-and-trade’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된다. 정부가 하이브리드 형태의 탄소 가격제를 도입함에 따라 사업장은 정부가 할당한 허용량을 초과하는 배출분에 대해 더 많은 옵션을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 초과 배출량에 대한 허가(permit)권을 구매하거나 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크레딧을 획득할 수 있다. 아울러 의무감축량을 할당받은 사업장(할당대상업체)이 해당 영역 외에서 감축 활동을 수행하고 인증받은 배출권을 해당 사업장의 감축량으로 인정받는 상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할 수 있다. 한편 제도상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시설에 탄소세가 부과되는데, 이 세율은 국내 탄소시장 가격과 연동된다. ‘cap-tax-and-trade’ 시스템 하에서 탄소세는 허가와 크레딧의 상한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결국 페널티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림2> 인도네시아 탄소 가격제도: cap-trade-and-tax system
자료: Indonesian Ministry of Finance 2021
정교화 과정 필요
2022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오랜 시간 도입을 준비했던 탄소세 시행을 연기했지만, 2023년 2월 석탄화력발전소에 우선하여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탄소 가격제의 완전한 정착까지 정교화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의 복잡성이 해결되어야 하고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명확성이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구체적인 세부 계획과 제도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매우 많다. 탄소가격제 도입은 이미 다른 국가에서 경험한 것처럼 긴 시행착오의 과정이 필요하다. 적절한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일정 수준의 전력공급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금 지급으로 국가 예산에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다.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이 단계적으로 폐지되거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탄소세는 온실가스 감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표한 탄소세율이 배출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기에는 너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투자하기보다는 탄소세를 내는 것을 선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향후 세율이 어떻게 증가할 것인지에 대해서 어떠한 지침도 제시되지 않았다. 에너지 발전 분야에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향후 세율이 어떻게 변동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 각주
1) JETP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탈석탄 및 에너지 전환을 재정적·기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결성한 네트워크로,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2) 국토를 토지이용 목적과 형태에 따라 산림, 농지, 초지, 습지, 주거지, 그 밖의 범주로 구분하여 각 토지이용 범주별 인위적인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흡수량ㆍ배출량과 토지이용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흡수량ㆍ배출량을 산출하기 위하여 규정한 정의ㆍ방식ㆍ규칙을 의미한다.
3) 온실가스 감축을 목적으로 시스템에 기술적 변화를 주거나 연료를 변경할 경우 온실가스 1톤을 감축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4) 이 법률은 조세와 관련된 여러 법률을 조화롭게, 일괄적으로 제·개정한다는 취지에서 ‘조세조화법(Harmonisasi Peraturan Perpajakan)’이라고 불린다.
5) 제품 1단위를 생산·가공하는데 필요로 하는 표준 원재료, 노동량, 전력, 가스 등의 재화 또는 용역의 물량적인 소비량-t·kg·인(人)·일(日)·시간·KWH·㎥ 등의 단위로 측정하는 양-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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