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체코의 에너지 전략과 한국의 참여
체코 Daneš BRZICA IER SAS -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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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원자력은 체코의 에너지 믹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체코는 현재 테멜린(Temelín)과 두코바니(Dukovany) 원전을 가동 중이며, 이 중 테멜린 원전에는 각 1,000 메가와트(MW) 용량의 원자로 2기, 두코바니 원전에는 각 510MW 용량의 원자로 4기가 설치되어 있다. 체코 정부는 미래 전력 소비량 증가에 대비해 발전량을 늘리기 위한 두코바니 원전 확장사업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고 있고, 2024년 7월에는 두코바니 원전에 2개 원자로를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업은 체코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의 산업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두코바니 원전 확장사업 시행사 입찰에는 한국, 미국, 프랑스 기업이 참여했는데, 이 중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는 사업안이 일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체코 정부의 발표 이후 입찰을 포기했다. 그 결과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최종 단계에서 경쟁하였고, 체코 정부는 장고 끝에 한국수력원자력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체코 전력공사(CEZ)는 한국측과 계약 내용에 관한 협상에 들어가 2025년 3월까지 합의안을 도출할 예정이며, 기술적 세부사항을 확정하고 법적 절차를 완료하고 나면 건설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본 사업에 따라 건설되는 두코바니 원전의 신규 원자로 1호기는 2036년 완공된다.
원자력 발전량을 늘리고자 하는 체코의 노력은 앞으로 석탄을 단계적으로 퇴출하면서 천연가스를 전환기의 대체 에너지원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미래 에너지 전략을 배경으로 한다. 이 전략은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가 국가 핵심 전력원으로 자리잡도록 지원하고, 에너지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50년까지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체코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전략
체코가 앞으로 추진하게 될 대대적 에너지 분야 개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주요 문서로는 2030년까지의 계획을 제시한 국가에너지정책(SEP: State Energy Policy)과 에너지∙기후계획(ECP: Energy and Climate Plan)을 들 수 있다. 이들 문건은 앞으로 석탄 소비량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이를 대체하는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원의 활용도를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신규 원자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중 에너지 분야에서 체코의 미래 목표와 중점과제를 설정하는 전략문서인 SEP는 국가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구속력을 지니며, 에너지 분야에 대한 체코 정부의 비전을 시장과 공유하는 역할도 한다. SEP 최신판에 따르면 체코는 2022년 84테라와트시(TWh) 수준이던 발전량을 2050년까지 95TWh로 늘리고, 에너지 최종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도 현재의 18%에서 2030년에는 30%로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체코가 2023년에 제출한 계획안을 평가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치 목표를 30%가 아닌 33%로 상향함으로써 EU 공동목표에 대한 체코의 기여분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표 1> 체코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에 관한 각종 목표치
자료: 체코 산업통상부, EU 집행위원회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수립된 체코의 에너지 전략이 신규 원자로 증설을 최적의 대안으로 결정한 배경에는 △ 에너지 소비 패턴의 변화 및 전력 소비량 증대 전망 △ 기존 원전 수명 만료 임박 △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석탄 화력발전 의존도 축소 필요성 등이 있다. 현재 최대 4개의 원자로 증설을 계획 중인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원전 원자로 증설 이외에도 소형모듈원자로(SMR) 신규 도입을 함께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계획에 따른 첫 번째 SMR은 테멜린 원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그림 1> 2023년 체코 에너지 믹스 구성
자료: oEnergetice.cz
2023년 기준 체코의 에너지 믹스는 상당 부분이 원자력과 석탄화력(갈탄)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1>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 체코는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전략을 추진 중인데, 여기에 따르면 체코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62% 수준으로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예정이다.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풍력, 태양광, 바이오가스 등 잠재력이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널리 활용하는 방향으로의 에너지 구조 개혁이 필수적이고, 퇴출대상인 석탄화력을 대체하는 원자력 에너지의 공급도 늘려야 한다. 한편 천연가스는 석탄 사용량 감소에 따른 발전량 부족분을 채워 넣는 단기적 보조 에너지원으로서 활용되며, 장기적으로는 바이오메탄이나 수소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체할 예정이다. 또한 체코는 2024년 7월에 새로 개정한 국가 수소전략을 바탕으로 수소 에너지를 에너지 정책의 핵심요소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정책이 기대한 성과를 거둔다면 체코는 2040년까지 대부분의 발전소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해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표 2> 참조). 물론 외부적 요인의 영향이나 EU 규제의 변화가 현재 전망과는 다른 결과를 빚어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의 흐름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표 2> 체코의 2040년도 발전용 에너지원 비중 전망
자료: 체코 국가에너지정책(SEP)
한국수력원자력 두코바니 원전 사업 수주의 기대 효과
체코는 프랑스 전력공사와의 입찰경쟁에서 승리한 한국수력원자력에 두코바니 원전 2개 원자로 증설사업을 맡기고, 앞으로 테멜린 원전에 2개 원자로를 추가로 증설하는 사업에 관한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경쟁사들 중에서 첫 번째로 입찰안을 제시한 한국수력원자력은 유럽 시장을 염두에 두고 유럽의 기준에 맞추어 설계된 APR1000 원자로를 제안했고, 한국 및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기존에 진행했던 사업에서 양질의 제품을 적시∙정가에 성공적으로 납품한 이력을 강점으로 지닌다. 이번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업을 수주하면서 체코와 한국 양국은 다음과 같은 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자로 증설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다수의 체코 현지 기업과 협력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체코 관련 업계가 활기를 띄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수력원자력은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현지 파트너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고, 이미 50개 이상의 협력각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정부는 또한 이번 수주를 계기로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강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부문 투자 유치와 방산 부문 협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이번 사업 수주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유럽 시장에서 평판을 다지고 양국 전문가들의 지식을 교환할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호재이다. 본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향후 두코바니 원전 추가 증설 사업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입찰 경쟁사의 이의 제기
다만 2025년 3월에 예정된 정식 계약 체결일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두코바니 원전 증설 사업 입찰의 경쟁사였던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전력공사는 2024년 8월 체코 경쟁당국(OPC: Office for the Protection of Competition)에 낙찰사 선정 절차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OPC는 이에 따라 2개의 이의 신청 건에 대한 통상적 검토작업에 착수했으며, 공식 검토 결과는 1차 결과 발표일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전력공사가 이번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조달법(PPA)에 규정된 절차를 우회할 수 있도록 허가한 안보상 면제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OPC는 국가의 기초적 안보상 이익에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에 관한 면제조항이 원자로 증설사업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사업 초기부터 계약 내용에 포함되었으며, 따라서 입찰 참여사가 이 점을 문제삼아 낙찰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프랑스 전력공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입찰조건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체코 계약 당국의 입찰 평가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이다.
결론
체코는 △ 에너지 소비 패턴의 변화 및 전력 소비량 증대 전망 △ 기존 원전 수명 만료 임박 △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석탄 화력발전 의존도 축소 필요성과 같은 다양한 이유에 따라 발전용 원자로 증설을 결정했다. 석탄 소비량을 점차 줄여 나가면서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확대하고자 하는 체코 정부의 에너지 전략에 따르면 2040년에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발전량의 대부분을 담당할 전망이며, 2050년에는 발전량이 95TWh로 확대되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어들어 기후중립을 달성하게 된다.
이러한 에너지 분야 개혁 과정에서 전력 부족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자로 증설이 필수적이고, 체코는 이를 위해 일반형 원자로 및 SMR을 추가로 도입하고자 한다. 이 중 두코바니 원전에 2개 원자로를 신설하는 사업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이 사업은 체코 내 유관 산업을 활성화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유럽 시장에서의 평판을 다지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체코와 한국 모두에 이익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체코 야당측은 자국 에너지 시장의 상황과 정부측의 정책에 비판적 의견을 내고 있다. 이들은 특히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늘린다는 SEP의 내용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고, 별다른 대체재 없이 석탄 사용량을 무작정 줄일 경우 전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려를 인지한 체코 정부는 관련 업계와의 대화를 통해 발전 용도로의 석탄 퇴출을 즉각적이 아닌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전력 부족사태를 예방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다.
체코가 현재 증설사업이 진행 중인 2기 이외에도 원자로를 추가로 더 건설할지, 그리고 이 경우 어떤 방식으로 후속사업을 추진할지를 비롯한 원자력 에너지 정책의 미래 방향성은 아직 확단할 수 없으며, 유관 사안에 대한 구체적 결정은 체코 정부의 판단에 달려있다. 이 결정에 영향을 주게 될 주요 요소로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두코바니 원전 원자로 증설사업의 추진 경과, 그리고 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 등 체코 내부의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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