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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꽁의 죽음과 태국의 형법 112조

태국 박은홍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12/10/29

 얼마 전 타이 수도 방콕 외곡지역의 한 사원에서는 형법 112조를 위반죄로 수감 중이던 61세 시민인 암폰씨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이 이틀간 진행되었다. 나는  왕립 쭐라롱껀대 정치경제센터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방콕에 체류하고 있을 때 이 장례식을 참관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란 의미의 ‘아꽁’으로 더 알려지게 된 중국계 암폰씨는 2010년 5월에 있었던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 일명 ‘레드셔츠’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있었을 때 당시 아피싯 수상의 비서에게 국왕을 모독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작년 8월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문자발신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심지어 그는 문자발신 방법조차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20년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꽁이 수감 중에 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가족과 변호인 측은 법원에 그를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기각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아꽁은 수감 중에 병사하였다.

  아꽁의 죽음으로 다시 부각된 것은 형법112조로, 이른바 국왕모독죄. 이 법 조문에 따르면 “국왕,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3년에서 최고 15년까지 형이 선고될 수 있다.”

  이른바 ‘아꽁 사건’에 대해 레드셔츠에 우호적인 인권단체는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 번째로, 법집행 과정의 문제이다. 아꽁의 병세가 악화됨에 따라 병원 이송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이것이 거절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재판 결과에 관한 문제로, 법원이 뚜렷한 증거 없이 아꽁에게 국왕모독죄와 컴퓨터 범죄법을 모두 적용 20년이라는 중형을 내렸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형법 112조 존재 자체의 문제로, 이 형법이 타이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 112조 범법사례는 2006년 탁신 전 수상을 추방한 군부 쿠데타 이후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1990년부터 2005년까지는 연 4-5회에 불과했는데 군주제 사수라는 명분을 내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2006년부터 2010년 5월까지는 400건에 이르는 국왕모독죄 해당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006년 쿠데타를 승인한 국왕에 대한 실망과 연관이 있다. 물론 쿠데타를 승인한 국왕의 역할에 대해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시각도 있다. 1991년에 민간정부를 전복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국왕이 이를 승인을 했지만 1992년 5월 민주항쟁 때 국왕은 군부와 반 군부 민주화세력 측을 중재해내는 역할도 해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판적 지식인과 인권단체들은 국왕모독죄 형법 112조로 인해 명망 있는 지식인, 활동가, 일반 시민들이 구속되거나 망명 상태에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국왕모독죄로 수감 중인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동운동가 솜욧을 들 수 있다. 그는 형법 112조 철폐를 요구하는 1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한 지 5일 만에 체포되었다. 공식적인 범법사항은 그가 편집 책임을 지고 있던 잡지에 국왕모독죄에 해당하는 기고문이 게재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고자는 탁신의 측근으로 현재 캄보디아에 망명해 있는 짜크라폽으로 알려져 있다.

   솜욧 이외에도 현재 국왕모독죄로 수감되어 있는 사람은 총 7명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다루니- 언론인으로 15년형을 받고 4년째 복역 중. 수라팍 - 컴퓨터 프로그래머. 추가로 컴퓨터범죄법 위반. 수라차이- 댕쌰암(붉은싸얌) 지도자. 건강악화로 죄를 인정하고 국왕의 특별사면을 기다리고 있음. 탄타웃 - 레드셔츠의 웹 마스터. 완차이 - 평범한 시민으로 수년전 유인물 배포혐의로 구속됨. 사티엔 - 2010년 5월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 CD 판매혐의로 구속됨. 유타폰 - 최근 구속됨. 

   이외에도 한 저명한 역사학 교수가 형법 112조 위반 혐의로 경찰에 출두하면서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립 탐마쌋 대학 법과대 교수들 일부가 <민중법학회>를 만들어 국왕모독죄의 형량을 대폭 줄이고 악용 방지를 위한 형법 112조 개정운동을 시작하였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왕모독죄 형량을 대폭 줄일 경우 범법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태국 헌법재판소는 국왕모독죄 형법 112조가 국민의 자유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냐는 국왕모독죄로 수감 중인 솜욧 변호인단의 헌법소원에 대해 형법 112조는 국왕의 안위를 규정한 헌법 8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조항으로 태국 국민은 이 헌법 조항이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참고로 헌법 제8조는 “국왕은 존경받는 신성한 지위에 있으며, 누구도 이것을 침범할 수 없다”이다.   

  아꽁의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한 인사들은 하나같이 아꽁이 레드셔츠도 아닌 극히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강조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제2, 제3의 아꽁이 나올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형법 112조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음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법 112조 개정운동과 이 법으로 인해 수감 중인 정치범 석방운동이 법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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