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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라오스 커피 맛에 어리는 베트남

라오스 / 베트남 최병욱 인하대학교 사학과 부교수 2012/05/07

지난해 말부터 올 초 사이에 나는 메콩 강 주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델타 하부가 펼쳐 놓은 베트남 남부에서 새해를 맞았고, 거기서 거슬러 올라가 메콩의 한 수원 (水源)이 되는 캄보디아의 톤레삽 (Tonle Sap) 호수의 바람 냄새 가운데 장엄한 역사와 어우러지는 며칠의 여정이 흥겨웠으며, 메콩의 본줄기로 연결되는 라오스의 남부 참파삭 (Champasak) 주의 주도 (州都) 팍세 (Pakse)에서도 문화재 복구 사업 조사단과 더불어 메콩을 만끽했다.

메콩의 물 빛깔은 전반적으로 누렇지만 이곳 팍세를 휘감고 흐르는 물은 옥색에 가깝다. 라오스 중부의 비엔티엔이나 북부 루앙프라방에서 보았던 물빛에 비해 훨씬 맑아서 그런지 도시 자체나 주변 경관도 무척 깨끗해 보인다.

팍세 공항으로 우리 일행을 마중을 나온 충남 서산 출신 J 사장이란 분은 1995년부터 라오스로 들어와 결혼도 이곳 여성분과 하고 자식 셋을 낳고 기르며 커피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마이크를 잡고는 내뱉은 첫 일성이 “여기는 라오스 나라 참파삭 주 팍세 시가 아니유. 참파삭 주 팍세 시 베트남 나라라구 불러야 맞아유~”였다. 도대체 왜 저게 하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첫 이야기일까 싶어서 귀를 기울였더니 이곳 상권은 베트남인이 다 장악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베트남 (인)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고.....하는 등등의 여러 가지 현상 뒤에 베트남인 외모니 눈빛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그의 베트남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적대적이다. 메콩 강변에 자리한 호텔에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Dao 커피숍이란 라오스의 유명 커피회사 (Dao Heuang) 직영점을 가리키면서는 “저게유, 라오스에 사는 베트남 여자가 하는건데유 아마 라오스에서 젤로 돈많은 여자일꺼유” 한다.

팍세에서 이틀을 지내고 떠나는 날 아침 나는 혼자 시간을 내어 그 커피숍으로 들어가 보았다. 커피향이 가득한 매장 안팎엔 고객이 제법 많았고 내부의 장식이나 디자인은 고급스러워 보여 메콩변의 아침을 더욱 운치 있게 하고 있었다.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 구경을 하는데 커피점 안의 중심 쪽 테이블에 둥그렇게 앉은 댓 명의 중년 여성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 둘은 꽤 뛰어난 미모였고 차림새 또한 모두들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을 구경하면서 대화가 들릴 만 한 곳으로 슬금슬금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이니 그들이 쓰는 말이 베트남어이지 않은가? 아는 척을 하면서 베트남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데 한두 명 여성의 영어는 매우 유창해서 내가 못 따라갈 정도였다.

이들은 사이공에서 올라온 여성 사업가들로서 커피 수입을 위해 다오 커피 여주인과 상담 중이라는 거였다. 함께 앉은 여성들 중 좀 나이가 있어 보이고 베트남 말도 어눌한 여성이 바로 그 사장님이었다. 올해 64살이라지만 오십대 중반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녀들이 곧 일어나는 바람에 대화는 길게 나누지 못했지만 라오스 제일가는 부자라는 베트남계 여성과 베트남에서 가장 경제적인 후각이 발전했다는 사이공 여성 간의 사업 현장을 목격한 건 나로서는 큰 재미였다. 사이공으로부터 수천 킬로 떨어진 팍세에까지 와서 상담을 하는 그녀들이나 라오스에서 거부가 된 여성이나 모두 대단한 베트남 여성들이다.

팍세에는 역시 베트남인이 많았다. 내가 베트남 말을 하기 시작하니 아까부터 커피숍에서 라오스 사람인양 일하고 있던 여종업원들이 모두 베트남어를 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들도 하나같이 베트남인들이었던 것이다! 마치 앞만 응시하던 백화점 안의 마네킹들이 갑자기 말을 해대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이로움으로 나는 몸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팍세에, 아니 라오스에 베트남인이 많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프랑스 식민지배가 시작되면서 베트남인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부터 베트남에 진입하기 시작한 프랑스는 약 20여년에 걸쳐 베트남 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고 그 과정에서 캄보디아도 보호국화 하였다. 그리고는 19세기 내내 베트남과 태국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던 루앙프라방 왕국이 프랑스의 보호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여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합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탄생하였다. 나라간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베트남인이 대거 라오스로 몰려들었다. 베트남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이주’기질 때문이기도 했지만 라오스의 개발을 위해 인구를 늘이고 노동력이 필요했던 프랑스 당국이 베트남인의 라오스 이주를 적극 권장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의 극성스러운 이주는 라오스 내 인구 구성을 뒤집어 놓을 정도였다. 라오스 연구로 유명한 스투아트 폭스 (Mrtin Stuart-Fox)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1940년대 초반 루앙프라방만 제외하고 라오스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베트남인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비엔티엔 (Vientiane)인구 중 53%, 타캑 (Thakhaek)은 85%, 그리고 팍세는 62%가 베트남인이었단다.  

이들 베트남인은 라오스에서 군인으로, 정부 관료로 활동하며 프랑스의 라오스 지배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따라온 베트남 농민 및 상인들은 라오스 경제 분야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아울러 이런 영향력은 정치 분야로도 파급되어 베트민 및 베트남 공산당 세력과 연합하는 친베트남 세력이 현 라오스에서 집권하게 된 것이니 베트남-라오스의 관계는 혈맹을 넘어서 한 집안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인 셈이다. 베트남-캄보디아 사이의 정치적 제휴도 베트남-라오스 관계와 유사해 보이기는 하지만 전자에 비해서 후자의 관계가 훨씬 밀접해 보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구 비율인 것이다. 거류자도 많을뿐더러 라오스와 교류하는 이들의 숫자도 많다. 팍세에 도착한 저녁 나절 메콩변의 호텔 카페에 앉아서 한가로이 맥주 한잔을 즐기고 있을 때 도처에서 들려오는 베트남어 소리에 난 가끔 내가 라오스가 아니라 어디 베트남의 한 식당에 와 있는 것 같아 어리둥절해 질 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1910년대 쯤 베트남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라오스 커피는 주종이 로부스타 (robusta)라고 한다. 참파삭에 위치한 볼라벤 (Bolaven) 고원지대는 해발 약 300-1300m의 화산재 토양으로서 커피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라오스에서는 커피를 짙게 볶는다. 나는 커피를 마실 대 필터에 거르지 않고 원두 커피를 직접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방법을 쓴다. 섞어 놓고 수저로 좀 휘저은 후 가만히 놔두면 커피가루는 아래로 가라앉고 나는 그 위의 커피물만 즐긴다. 위로 뜨는 커피 조각은 수저로 걷어내든가 입으로 들어오는 놈은 퉤퉤 뱉어내가며 다소 무식하게 마시는 편인데 내 깜냥으로는 커피를 가장 맛있고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마시는 방법이다. 커피를 아주 곱게 갈아 쓰면 위로 뜨는 커피가루가 전혀 없다. 이런 나에게 라오스 커피는 아주 맘에 든다. 커피 맛이 깊어서 가루를 많이 넣을 필요가 없고, 물 위로 떠오르는 찌꺼기가 없어서 비교적 품위를 지켜가며 마실 수가 있으니 말이다.

현재 참파삭의 고원지대에서는 라오스인뿐만 아니라 국적을 달리하는 여러 업자들이 이곳에서 커피 대농장 (plantation)을 경영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인들만이 하던 사업을 이제는 라오스인은 물론이고, 베트남, 일본, 한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J 사장의 말이다. 농장의 규모가 커서 서로 사는 곳이 먼 관계로 각 플랜테이션 사장들이 멏 달에 한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하지만 어쨌든 현재 참파삭의 볼라벤 고원은 지구적이다. 라오스와 베트남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산 산맥 너머의 베트남 서부 고원지대에서도 커피가 많이 생산되지만 주로 베트남인에 의한 경영이지 외국인 자본은 별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에 비해 라오스 커피 산업은 꽤 국제적이다.

국제화의 진전에 따라 베트남인도 더 많아질 것이다. 이주민도 그렇고 다오 카페에서 만난 여성 비즈니스맨들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베트남인은 장산산맥 곳곳에 나 있는 산악로를 따라서도 들어오고 메콩을 따라서도 올라올 것이다. 북베트남 디엔비엔푸 언저리 지역을 거친 유입도 만만치 않다. 육로로 하늘로 베트남인은 그렇게 자꾸 자꾸 라오스로 들어올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오스인에게 베트남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J 사장의 “여기는 팍세시 베트남 나라유 베트남 나라 ~!”라는 푸념은 곧 그에게 투영된 라오스인들의 우려이기도 한 것이다.

라오스 커피 맛에는 이렇듯 인도차이나 근현대 정치와 역사가 함께 섞여 있다. 그래서 더 맛이 깊은 걸까, 이 커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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