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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야당 의원 Yaw Shin Leong 출당 사건을 통해 본 싱가포르 정치

싱가포르 김지훈 인하대학교사범대학 사회교육과 조교수 2012/05/07

올해 초 싱가포르를 달구었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야당 국회의원 Yaw Shin Leong의 제명 사건일 것이다. Yaw는 2011년 싱가포르 총선에서 Hougang 선거구에서 여당 현역 의원을 30%에 가까운 격차로 누르고 국회의원으로 등원하였으며 제1야당 노동자당(Workers' Party)의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재무위원장(Treasurer)을 맡은 35세의 전도 양망한 젊은 의원이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 2월에 이어진 사생활 관련 루머에 대해 해명 보다는 무대응으로 대응하다가, 재무위원장직을 사임한 후 조용히 잠적해버렸다. 여당과 언론의 공세 속에서, 결국 소속당인 노동자당은 출당조치를 취했다. 싱가포르 법에 따르면 의원이 소속 정당에서 출당을 당하면 자동으로 의원직을 잃는다. Yaw는 이에 따라 국회의원직도 잃게 되었다.

Yaw 사건은 필자가 싱가포르에 현지조사를 하며 체류하던 올 2월 기간 내내 언론을 달구었다. Yaw 의원에 대한 추측 기사와 비판 기사들은 The Strait Times와 여러 TV 채널 등 싱가포르의 언론 매체에서 연일 다뤄졌다. Yaw 사건은 국회의원에 대한 도덕성과 책임성을 엄격히 강조하는 잣대로도 볼 수 있겠지만, 지난 해 총선을 통해 싱가포르 역사상 가장 많은 야당의석을 차지한 야당과 심심치 않은 민심에 대한 정부와 여권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징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야당 의원의 공표나 해명되지 않은 ‘불륜’과 둘러싼 야당 출당과 국회의원직 상실이 왜 정부와 여권이 야권과 민심에 대한 두려움의 징표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경제 성장을 통해 지난 40여 년 동안 일당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온 싱가포르 정치체제와 제1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 시스템을 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쉽다. 지난해의 총선 결과를 통해 그간 여당이 손쉽게 유지할 수 있었던 정치적 제도의 토대가 앞으로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정치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한국, 대만,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 네 마리 용 중 하나이지만, 경제 성장에 버금가는 정치의 민주화, 선진화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훨씬 더 뒤쳐져 있다. 싱가포르는 2011년 1인당 GDP가 49,271 달러로 세계 13위에 올라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 보다 훨씬 상위에 올랐지만, 경쟁국가인 한국, 대만의 경우 경제성장 이후 80년대와 90년대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포함한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룩하였는데, 싱가포르는 이 수준의 민주주의의 구현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2004년 '싱가포르 시민은 민주적으로 정부를 교체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2012년에도 프리덤하우스는 싱가포르를 정치적 권리와 시민권적 자유의 면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partly free)” 국가로 분류하였다. 정치 민주화의 측면에서는 말하자면 중동 산유국 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지 조사 중 싱가포르의 한 대학에 재직하는 유명한 싱가포르인 교수 한 명이 전혀 다른 연구 주제와 관련해서 “한국은 민주 국가이지만, 싱가포르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이 그래서 더욱 귀에 남았다.

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 실마리가 풀린다. 2011년 총선에서 야당의 합계 지지율은 40%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의 지지율을 얻었으나, 87석의 지역구 의석 중 6석만이 야당에 돌아갔다. 의석 비율만 따지자면 40%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7%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야당이나 비판적 학자들이 지적하듯 여당이 여간 해서는 지기 어려운 선거 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10% 이상 더해진다면, 급격한 정치 지형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조바심을 정부 여당이 갖기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은 그간 어떻게 압도적인 의석수를 얻어왔을까? 그 비결은 싱가포르 특유의 선거구 획정 및 의원 선출 방식에 있다. 싱가포르의 선거구 제도는 4-6석의 의석이 할당되는 대선거구 (Group Representative Constituency, GRC)와 1석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가 혼합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의석은 GRC에 할당된다. 대선거구의 경우 해당 대선거구에 출마하는 정당은 최소 1인 이상의 후보가 소수 민족(ethnic minority) 출신을 포함하는 팀을 구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최다 득표를 얻은 정당은 한 대선거구의 의석을 독점한다. GRC 제도가 도입된 이후 GRC 의석은 여당 몫이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통해왔다. 선거구 획정 평가위원회는 선거구 획정 보고서를 내각에 제출하지만, 야당이나 국민들은 선거 얼마 전 발표될 때에야 알 수 있어 원천적으로 선거 준비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야당은 해당 대선거구에 출마할 출마자를 확보할 시간적 여유와 인적 자원의 부족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간 많은 총선에서 야당은 다수의 GRC에 출마자를 등록시키기조차 못해 여당 팀이 무투표로 당선되어 총선이 실제 실시되기도 전에 여당은 상당수의 의석을 미리 확보할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야당이 출마한 지역에서도 그간 단 한 차례도 야당이 GRC 의석을 차지한 적이 없었던 오래된 공식은 2011년 총선에서 노동자당이 깨기 전까지 유지됐다. GRC에서의 여당 불패의 신화는 2011년 총선에서 노동자당 당수인 Low Thia Khiang 이 이끄는 Aljunied GRC에서 5석을 획득하면서야 깨어졌다.

비슷한 경제 수준의 선진 국가에서 갖추고 있는 정치제도와 사회복지제도를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지난 2년간 이룩한 2010년의 14.8%, 2011년의 4.9%의 경제성장률은 세계적으로 놀랄만한 높은 수준이었지만, 민심은 야당을 향했다. 40년간 통해왔던 방식이 요즈음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정부와 여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Yaw 사건은 곤혹스런 여당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Yaw로 인해 공석이 된 의원을 선출하는 보궐선거는 없을 것 같다. 싱가포르 법에 따르면, 의원의 사망, 사퇴, 제명 등의 사유로 보궐선거의 사유가 생기더라도, 수상이 언제 보궐선거를 실시할지 결정한다. 그런데 그 결정 시한은 없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보궐선거 사유는 여러 건 있었더라도 보궐선거는 실제 실시되지 않았다. 앞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싱가포르에 정치체제의 변화가 있을까? 그동안 외부인에게 정치의 면에서는 별 흥미 거리를 주지 못하던 싱가포르에 앞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시할 만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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