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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의 소수종족

베트남 최호림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 2012/07/26

베트남은 다종족, 다문화 국가이다. 9천만 인구는 86%의 비엣(혹은 낀)족과 53개 소수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 10만여 명의 베트남 이주민이 살고 있고, 한국인 50만 명이 매년 베트남을 방문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다종족-다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1997년에 하노이에 개관한 베트남민족학박물관이 관광명소가 되었고 최근에는 한국인 패키지 관광의 주요 여정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개는 베트남 전통의 다채로운 전근대성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인식될 뿐이다. 사실 외부인이 베트남 소수종족의 실상을 관찰하는 것은 국가가 허용한 통로 외에는 거의 불가능하며, 이들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베트남 국가의 입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베트남 종족정책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현재의 영토는 주류 종족의 오랜 남진(南進)과 서진(西進)의 결과인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토착종족들이 “비엣인 국가”의 지배에 편입되어 왔다. 봉건 왕조에도 조정의 통치권이 산지 종족들에게 미치도록 하는 노력이 지속되었고, 특히 식민 시대부터 소수종족은 통치의 핵심 대상이 되어 왔다. 식민지배는 분리통치를, 국민국가는 통합정책을 지향하였다. 소수종족은 중앙권력의 필요에 따라 무장하여 전쟁에 동원되었고, 신경제구역이나 전략 촌으로 강제 이주하였으며 이주민을 받아들여 섞여 살아야 했다.

 

국가와 정치엘리트가 소수종족을 통치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종족분류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종족을 범주화하는 시도는 식민시대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1919년에 33개 종족분류체계가 처음 발표되었다. 독립 후 새로운 국가정체성 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모든 종족을 공통의 기준으로 국민국가에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1955년 북부 고산지역 소수종족 마을에서 종족 간의 편견 일소와 형제애에 기반을 둔 종족연대의 증진을 역설하며 새로운 종족분류를 위한 연구를 지시하였다. 1959년에는 64개 종족명이 발표되었고, 1974년에는 59개로 수정된 종족리스트가 발표되었다. 이후 베트남 민족학자들의 재조사를 통해 마침내 1979년 3월 2일 “베트남 종족집단의 명명법에 관한 121호 결정”이 공포되었다. 이후 54개 종족분류체계가 현재까지 모든 인구조사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959년의 목록에서 10개의 구별되는 종족집단이 사라지고 다른 집단으로 병합된 것은 국가가 점차적으로 종족 통합을 강조해온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분류와 다른 종족 성을 주장하는 종족이 40여 개에 이른다는 입장도 있으며, 실제 산지의 소규모 소수종족 중에는 공식 분류체계에 들어있지 않은 토착 종족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종족분류체계가 종족 자의식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한다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통치의 목적에 따라 구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종족문제에 기인한 심각한 갈등이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사실 식민시대 이후 베트남의 소수종족은 식민과 탈 식민 사이 또는 분단 체제 사이에서 정치적 동원 혹은 억압 하에서도 크고 작은 저항을 지속해왔다. 2001년 초에는 중부고원지대의 소수종족 수천 명이 장기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외국 언론에 베트남 통일 이후 가장 심각한 소요사태라고 보도되었을 정도였다. 이 사태의 후유증도 상당하였다. 같은 해 공산당 총서기 레 카 피에우(Le Kha Phieu)가 퇴진하고 따이(Tay)족 출신 농 득 마인(Nong Duc Manh)이 총서기가 된 것은 이 사태의 결과였다. 이후에도 소수종족이 다수 거주하는 산지나 고원지대에는 저지대 이주민들과 토지를 둘러싼 분쟁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하나의 국가로서 성공한 것은 오랜 역사 동안 다양한 종족이 서로 단결한 덕이라는 주장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어디에서나 소수종족의 전통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이 이 나라의 자랑거리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소수종족의 문화는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축제, 기념행사와 여러 관광지에서 재현되며, 베트남을 다종족-다문화 사회로 규정하는 국가 프로젝트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한 종족문화는 민속 화 되거나 심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어, 베트남 국민국가를 “다채로운 색채의 화원” 또는 “종족문화의 모자이크”로 묘사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소수종족이 낙후된 생활양식으로 인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또한 소수종족은 종족민족주의 운동이나, 개종, 정치 시위 등을 통해 국가와 다수 종족에 불만을 표출하는 존재로 비춰진다. 국가권력에 대한 소수종족의 종속성이 점차적으로 강화되어 왔고 다수종족의 가부장적 지배가 지속되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지구화와 함께 전통적 생활양식에 대한 변화의 압력이 지속되면서, 실제 많은 소수종족이 세계종교로 개종하거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초국가적인 영향과 연계는 심각한 위기의 징후, 혹은 “국가와 민족의 통합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같이 베트남에서 소수종족의 모습이 재현되는 방식에는 서로 모순적인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왔다. 소수종족의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게 재현되고 있는 동시에 이들이 국가발전의 장애 혹은 안보의 위협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소수종족의 생활세계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소수종족의 사회적 공간 및 일상 활동과 목소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수종족 집단은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지닌 고립된 자족적 사회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소수종족의 문화적 특성은 다수종족뿐만 아니라 지구적 환경과도 연결되어 왔다. 특히 전쟁, 현대화, 자원 개발, 이주의 유입 등으로 인해 분리와 고립은 거의 불가능하였으며 소수종족만의 고유한 전통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소수종족은 삶의 주체로서 국가 혹은 외부세력이 주도하는 변화에 저항하거나 그들의 독특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기도 하지만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베트남문화의 다양성에 관한 논의는 풍성하지만, 인구의 14%를 점하고 이 나라의 주권을 공유하고 있는 소수종족의 관점과 경험에 주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소수종족의 삶은 스스로의 잣대나 목소리가 아니라 국가의 종족분류체계나 통계 및 외부의 전형 화된 시각에 의해 평가되어 왔다. 세계적 발전 담론에서 소수종족은 항상 지방의 규범에 매여 있는 열등한 존재이고, 빈곤하고 낙후되고 결핍된 것으로 묘사된다. 소수종족의 문화는 대개 무대화된 연행에만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국가, 주류 종족 또는 외부 관광객의 스테레오타입을 만족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소수종족도 영토 내에서 명칭과 공간 및 서열이 할당되어 있는 국민이므로 소수종족 문제는 불가피하게 국가 내에 제한된 이슈라는 팽배한 인식을 반영한다. 과거의 ‘산지인’, ‘미개인’, ‘야만인’ 혹은 ‘검둥이’와 같은 폄하의 표현들이 단순한 민족을 의미하는 ‘전 똑’이나 동포를 의미하는 ‘동 바오’로 대체되었으나, 구별과 차별의 정치는 여전하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동남아 소수종족은 인구센서스나 민족지적 연구와 같은 후기 식민주의의 장치를 통해 창조된 것이며, 지배 권력의 권위를 반영하는 가치들 내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보았다. 식민시대 부족정체성이 식민권력의 요구에 봉사하기 위해 무정형의 집단들이 영토화 되고 종족 화 되었던 것처럼, 국민국가의 소수종족 또한 상상된 경계가 주어진 통치대상으로서 통합된 것이다. 국민국가는 결국 소수종족 존재의 조건 자체로서 종족정체성을 상상할 수 있는 언어와 맥락을 제공한다.

 

국민국가의 입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식은 소수종족을 안보의 잠재적 위협이자 발전의 장애이면서 동시에 발전에서 불이익을 받는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소수종족은 전통과 빈곤을 모두 지니고 있는 불균형적 존재이다. 소수종족은 문자를 모르고 문화적 수준이 매우 낮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다고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발전이란 완전히 산업화 혹은 환금 화되고 저지대에 살며 베트남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라는 지배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베트남에서 저지대 다수종족이 발전의 기준이며 문화적인 표준이자 모든 종족집단의 모델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수종족은 문화적 주류에 통합되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받으며, 통합되지 못하면 주변화 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근대적 묘사방식은 문화적인 타자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으로 묘사했던 봉건왕조의 견해와 일치한다. 빈곤은 새로운 야만이고, 문맹은 새로운 미개이며, 오지의 삶은 새로운 야생이다. 베트남 국가뿐만 아니라 UN이나 국제적 개발원조기관들이 사용하는 ‘발전’이라는 담론도 국수주의적 가부장적 레토릭과 일맥상통한다. 소수종족은 세계종교에 의해 구원되거나 국가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거나 국경을 넘는 것 외에는 통합 혹은 주변화를 피할 방법이 없다. 소수종족은 전통과 문화적 자율성을 희생하여 낙후성으로부터 해방되거나, 보다 넓은 외부 구조들로의 병합에 대해 저항할 때만이 비로소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강력한 사회적 힘이 역사적으로 소수종족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재구성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종족의 능동적인 역할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최근 국가의 종족정책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시장경제의 영향이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소수종족의 전통적 관습이 지속되거나 재생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수종족은 풍부한 생계전략, 호혜적 유대, 외부세계의 압력에 대처하거나 변화를 수용하는 실제의 문화적 수준과 능력 등 생존의 열쇠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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