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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경제] 절반의 성공,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말레이시아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송민선 LG경제연구원 발간일 : 1999-10-06 등록일 : 2018-10-05 원문링크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은 말레이시아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그러나 외국자본 유입감소라는 자본통제 정책의 후유증이 조만간 치유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말레이시아의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동남아 국가들 중 말레이시아는 IMF식 처방을 거부하고 자본통제라는 독자적인 위기극복 방안을 강구하여 주목을 끌었다. 말레이시아 경제는 98년 3/4분기에 -10.9%, 4/4분기에 -10.3%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었지만 99년 1/4분기에는 -1.3%로 성장감소세가 주춤해지고 2/4분기에는 4.1%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의 99년 2/4분기 성장률은 금융위기를 겪었던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를 경기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자본통제정책 크게 완화

말레이시아가 98년 9월초부터 실시했던 자본통제는 △말레이시아에 투자한 지 1년 미만의 외국자본 유출 금지 △말레이시아 국외에 있는 링깃화 무효화* △달러당 3.8링깃의 고정환율제 실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 단기자본의 극심한 유출입 때문이었다는 인식 아래 취해진 것이었다. 

단기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는 투자된 기간에 따라 투자원금이나 이윤의 10∼30%에 해당하는 자본유출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99년 2월에 형태가 변경되고 9월말에는 자본유출세가 투자기간에 상관없이 투자이윤에 대해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형태로 간소화되면서 그 의미가 크게 축소되었다. 

말레이시아 경제에 대한 자본통제 정책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자본통제 정책이 경기회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보다는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가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되었던 부작용들이 얼마나 현실화되었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려했던 자본유출은 일어나지 않아

말레이시아가 자본통제를 실시할 당시 우려되었던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암시장의 등장과 자본유출이다. 자본통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들은 달러당 3.8링깃의 고정환율보다 높은 환율을 지불해서라도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가려는 자본이 많아 곧 암시장이 형성될 것이며,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본유출을 엄격하게 억제해도 수입금액을 부풀리거나 수출금액을 축소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법 자본유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고정환율제가 실시될 무렵에는 그 이전에 시장에서 거래되던 링깃화의 환율이 달러당 4.2링깃이었기 때문에 링깃화가 고평가된 것으로 잠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환율이 절상되면서 말레이시아 통화는 다른 국가 통화들보다 오히려 저평가된 수준이 되었고 그 결과 고정환율제 하에서도 암시장은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 

국제수지상에서도 자본유출이 일어났다는 특별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자본통제를 실시한 98년 9월에는 이미 동남아의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이 상당히 사라진 상태여서 자본유출에 대한 유인이 크지 않았다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기우

자본통제에 관한 두 번째 우려는 자본통제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가 유동성을 과도하게 확대함으로써 물가상승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자본통제 정책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98년 9월 30일 이후 국외에 있는 링깃화를 무효화하기로 한 조치가 그 때까지 국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200억 링깃(약 52억 달러)의 말레이시아 자본을 국내로 반입시키고 국내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가 통화를 증발하면서 국내 유동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결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통화증가율(M2)은 자본통제 이후 99년초까지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환율 안정과 농산물 생산량의 증가,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감소로 물가상승률은 98년 6월에 6.2%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98년말에 5%대, 99년 중반에 들어서는 2%대로 떨어졌다. 말레이시아의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통화 증발에 신중했고 금융시스템의 부실문제가 통화량 증가에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외로 유출되었던 링깃화의 반입이 유동성 증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국외의 링깃화를 무효화시킨 조치가 추가적인 자본유출을 막는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조치를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외국인투자 감소와 국제 금융조달 비용 상승

세 번째는 말레이시아가 자본통제를 실시함으로써 스스로를 국제 금융시장에서 고립시킬 것이라는 우려였다. 실제로 98년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97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말레이시아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96년과 97년에 각각 576억 달러와 568억 달러를 기록했다가 98년에는 전년도의 1/4이 채 못되는 136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말레이시아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감소세는 98년 4/4분기와 99년 1/4분기에 더욱 심화되어 자본통제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액도 97년 51억 달러에서 98년 36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이는 외국인 직접투자액이 97년 37억 달러에서 98년 70억 달러로 늘어난 태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가 단기자본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레이시아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감소는 의도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통제 대상에서 제외된 외국인 직접투자가 태국이나 필리핀과는 달리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는 것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경제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속적인 직접투자 감소는 장기적인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98년 상반기까지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할 때 말레이시아가 아시아 금융위기 국가들 중 가장 낮은 가산금리를 지불했지만 자본통제 실시 이후에는 태국이나 한국보다 더 높은 가산금리를 지불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본통제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고립된 것은 아니지만 높은 금융비용을 지불하게 됨으로써 국제 자본에 대한 접근이 자본통제 이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금융위기 발생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면서 외국자본의 유입감소를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는 경기회복과 더불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99년 6월 수입증가율이 30%대를 기록하는 등 수입이 더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말에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본통제를 사실상 해제한 것은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유입 감소세가 지속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절반의 성공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은 우려했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부분적으로 현실화되는 데 그쳤고 그것도 경상수지 흑자 등을 통해 상쇄되면서 뚜렷한 후유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자본통제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가 환율인상에 대한 우려없이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었고,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수출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단기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은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이 거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이 위기상황 극복과 경기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말레이시아가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높은 경기회복세를 보이는 데에는 자본통제 정책의 이외의 요인이 상당히 중요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위기 발생 당시 부실채권 규모, 외채규모, 물가상승률, 저축률, 정부재정 등의 경제상황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나은 상태에 있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금융개혁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도 중요하다. 또한 98년말부터 뚜렷해지기 시작한 국제 전자산업의 회복세가 전기·전자부문에 집중된 말레이시아의 수출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통제를 실시하지 않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이자율 인하, 물가 안정, 수출증가 등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은 말레이시아의 경기회복이 반드시 자본통제 정책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한국, 태국, 필리핀 등은 외국자본의 유입감소 없이 경기부양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 정책이 기껏해야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 신뢰회복이 관건

말레이시아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말레이시아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말레이시아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진 99년 2/4분기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말레이시아 경제전망이 밝아지면서 외국자본 유입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유입실적은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할 때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외국자본의 유입을 다시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국제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본통제 정책의 완화와 신속한 금융개혁을 통해 국제 신인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자본통제 정책 때문에 얻게 된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이단자’라는 이미지는 쉽게 지우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말레이시아가 이러한 이미지를 조만간 없애지 못한다면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정책은 장기적인 면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들겠다는 말레이시아의 ‘Vision 2020’의 성공여부도 자본통제 정책에 의한 후유증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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