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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의 위기; 포퓰리즘의 대가인가?

베네수엘라 정이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2016/07/08

현재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경제 침체와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빈곤과 인플레이션 문제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범죄가 난무한 상황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의 약 70%가 빈곤에 처해있으며, 이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퇴임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위와 관련하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정이나 HK연구교수에게 베네수엘라의 위기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은 어떠한가?


▲ 최근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주요 관심은 무엇보다 반(反)신자유주의 성향의 이른바 ‘좌파’ 정권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위기와 이후 가속화되는 정치 지형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좌파정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에서부터 얼마 전 브라질 룰라에 이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 소추에 이르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정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덧붙여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업인 출신의 마크리 체제가 들어서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우경화’를 조심스럽게 진단하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좌파정권의 위기는 경제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같이 국가의 수입이 원자재 수출에 의존도가 높은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경제위기는 일반적으로 이 지역의 특징이라 일컫는 ‘고질적’인 정치적 부패와 취약한 제도, 비효율적 경제 정책 등과 맞물리며 위기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분위기이다.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Q2. 라틴아메리카 중 특히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현황은 어떠한가?


▲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정치적 위기상황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현재 베네수엘라일 것이다. 연일 위기 상황의 ‘정점’을 찍고 있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외신과 뉴스가 국내에 소개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말이다. 적어도 차베스 집권 이후 천명한 “21세기 사회주의”의 노선을 결코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었던 해외 주요 외신들은 마치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고, 외신을 비롯한 국내의 기사들(외신에 기대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보도하는)은 짐짓 센세이션 그 자체이다. 이를 바탕으로 베네수엘라 위기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을 (그들의 언어를 통해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Q3. 베네수엘라가 현재 처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어느 사회의 위기가 그러하듯 위기의 원인은 현상이 아닌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20세기 여느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또한 절대적 빈곤층과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를 단순히 베네수엘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저개발의 원인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회의 이 같은 모순적인 사회구조는 지난 80여 년간 축적된 사회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이 같은 구조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석유가 발견되는 1920년대부터 베네수엘라 사회는 이를 독점한 이른바 소수과두엘리트 계급이 지배하는 계급사회였다. 석유수입을 독점한 이 계급은 베네수엘라 인구 85% 이상을 극빈층으로 내몰고 나서야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 변화의 계기를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삶이 더욱 피폐해진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1989년 카라카소를 겪으면서 약 10년 후 완벽한 계급역관계를 형성한 결과였다. 지난 80여 년간 석유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계급의 카르텔은 다수 국민의 삶을 최하 빈곤층으로 몰아넣었으며, 이에 대한 결과가 1999년 차베스 집권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상식적으로도 80여 년간 향유한 기득권을 빼앗긴 과거 베네수엘라 사회 지배계급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국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상태에 있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내적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되찾으려는 과거 지배계급들의 공세로 인한 결과이다. 베네수엘라 사회에 대한 경제적 사보타지나 국제 미디어들의 반응만을 살펴보더라도 이 같은 현상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현재 베네수엘라 위기의 본질은 전형적인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차베스 집권 후 베네수엘라 정부가 지난 16여 년간 끊임없이 시도한 사회개혁은 정작 실패할 수밖에 없는 ‘포퓰리즘’이었던 것일까?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위기 상황을 단순히 국민의 환심을 사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선심성 복지 정책의 무분별한 확대, 그리고 흥청망청 무계획적으로 탕진한 국가재정이 바닥이 드러나자 발생한 (이미 예견된) 위기로 치부해버려도 되는 것일까? 전형적인 현상중심의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다. 한 매체는 얼마 전 치른 총선에서 현재 여당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선에 대한 결과는 그동안 포퓰리즘 일색으로 정책을 일관해 온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민심의 보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차베스 집권 이후 항상 다수를 차지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난해 치러진 총선의 결과(여소야대의 형성)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집중시킬 만했다. 이 같은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더욱 단순 명료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수치로 사용되었다. 즉,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의 대가”를 베네수엘라는 선거에서도 치른 것이다.


Q4. 그동안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흐름은 어떠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했는가?


▲ 베네수엘라는 1950년대 말부터 지속된 푼토피호 체제를 통해 정치권력을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합법적’인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에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라는 거침없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으나, 반면 이 시기 베네수엘라의 사회는 극심한 빈곤과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국민 대다수의 삶은 피폐해졌다. 지난 40여 년간 풍부한 석유를 독점한 소수의 과두 엘리트 계급은 전체 인구의 85%가 넘는 인구를 빈민층으로 전락시키고 나서야, 그리고 1999년 선거에서 패하고 나서야 물러났다. 그러나 1999년 집권한 차베스 정부는 등장부터가 결코 순탄하지 않더니, 급기야 2002년 두 번의 쿠데타 시도를 포함하여 줄기차게 베네수엘라 사회 내에서도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차베스의 지지자들은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더욱 정치적인 조직으로 성장한 반면, 동시에 이들은 과거 기득권층이었던 소수 엘리트 계급과는 적대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국가권력을 독점한 채 그들이 점유한 국가의 ‘부’를 분배하려는 집단과 그것을 거부하는 집단과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2002년 쿠데타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현실이었다.

 

Q5.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문제 해결과 정치적 포퓰리즘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가?


▲ 차베스 이전 높은 수준의 문맹률과 카라카스 외곽 빈민촌의 수많은 아동이 학교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고 있었다는 엽기적인 사실, 그리고 이 같은 기회의 불평등이 재생산해내는 유일한 것은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회학자라면 이견이 없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 정책은 바로 여기가 시작점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이 1920년대이다. 이후 20세기까지 줄곧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 의존하였고, 이미 뒤틀려버리고 모순이 축적된 사회구조는 정치권력을 독점한 소수의 갑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빈곤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999년 차베스의 등장은 개인 영웅주의의 부활도 아니고 위로부터 영도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파격적인 계급 역관계의 실현을 이루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정치와 경제력을 독점한 소수 과두엘리트 계급과 차베스를 선택한 전체 유권자의 약 60%를 차지했던(2000년 대선 당시) 380만 국민과의 관계가 그것이다. 이에 그동안 소외계층이었던 베네수엘라 빈민가에는 주민 자체조직인 수많은 주민평의회와 꼬무나스가 만들어졌으며, 수천 개의 사회단체와 대중자치조직들이 만들어졌다. 이는 더 이상 즉흥적인 개인이나 소외받던 계층이 그들의 권리를 산발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과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조직했다는 의미이고,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Q6.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어떠한가?


▲ 그렇다면 정녕 베네수엘라의 현재 위기를 이같이 단순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포퓰리즘 정책이 야기한 총체적 위기’로만 환원시켜도 무방한 것일까? 적어도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이른바 ‘포퓰리즘’이라 불리는 복지정책을 확대한 결과라는 단편적인 설명으로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분석이고 이해 방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필자는 그동안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소외당하던 계층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흙탕물이 나오는 상수도 시설을 교체하는가 하면 쓰러져가는 빈민가의 주거시설을 확충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주요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과연 선심성 복지정책이고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분별한 지출이라는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보통 이럴 때는 선 성장 후 분배라는, 즉 낙수효과를 기대해야 한다는 경제전문가의 진단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같은 ‘순진한’ 발상은 현재 선진국의 경제 불황 극복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통화정책이 더 이상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이 아닌 공공투자를 확대하는 국가의 재정지출을 ‘독려’하는 IMF 보고서가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신자유주의 경제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학한’ 포퓰리즘의 대가 정도로 단순히 치부해 버리는 것은 너무 편협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Q7. 베네수엘라 총선 결과에 대해 필자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 민심의 보복이라는 총선 ‘참패’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지난 2010년 총선과 비교해서 여당은 약 20만 표를 잃은 반면, 야당 지지자는 약 200만이 늘었다. 결국 여당을 지지하는 민심의 변화이기보다 야당을 지지하는 민심이 크게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순탄하지 않은 경제 상황이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증폭시켰고, 그에 대한 선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응집력을 갖고 여당을 지지하는 민심, 자신들의 계급적 요구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여당을 선택한 치열하게 정치적인 그들은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이들에겐 그저 정부의 혹세무민하는 퍼주는 정책에 동조하는 ‘어리석은’ 국민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어쩌면 치열한 계급투쟁의 연장선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사회변화의 역동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양쪽 모두에게 공평한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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