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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세계체제의 변화와 중남미의 대안적 대응

중남미 일반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2016/12/02

중남미가 세계체제(World-System)에 포함된 이후 중남미는 세계체제와 세계경제(World-Economy)의 한 부분으로 세계적인 변화에 동참해왔다. 특히 세계대전 이후 중남미는 비동맹운동을 주도하면서 세계체제 내에서 패권 국가들과는 다른 정치,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체제의 변화와 중남미의 대안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의 안태환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림입니다.


Q1. 먼저 “세계체제”의 개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세계체제 또는 세계체계의 개념은 하나의 분석 틀이다. 이 개념이 주목되게 된 것은 20세기 말이 지나 21세기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세계적 헤게모니를 가져왔던 미국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세계체제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지목되는 2008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출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분석을 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왔다. 세계체제의 연구는 페르낭 브로델,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이 서구 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세계체제론을 풍부하게 한 인물들은 아니발 끼하노, 월터 미뇰로, 엔리케 두셀 등 라틴아메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미국 학자들이다. 이들에 의해 1990년대 초반 이후 유럽, 미국 학계의 주류와는 다른 주목할 만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단순화시켜보자면 “1492년부터 자본주의, 근대성, 식민성(위계서열적, 차별적 인종주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주류 학자들이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과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Q2. 세계체제론이 만들어지게 된 이론적, 사회적 배경에 대해 알려 달라.
우리는 오늘날 세계의 변화를 G2로 표현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시대로 인식한다. 그러나 국가나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도 현재 세계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세계 헤게모니의 변화 혹은 전환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즈주의의 패러다임은 역사적 소명이 끝났다. 예를 들어, 현재 대부분의 유럽 및 미국 등의 국가가 양적 완화를 통해 경제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의 시대 상황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와 신자유주의에 의한 대중의 차별과 배제 등의 문제는 마르크스도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가장 아래에 있는 하위계급을 배제하지 않고 그들이 일상적인 소비가 가능한 평범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1:99의 신자유주의의 차별적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최근 트럼프의 당선은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와 우리 삶의 질을 상승시킨다는 것이 틀렸음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체제론 연구자들은 1990년대부터 이미 위와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과거 70년대까지 노동자와 자본가계급 사이의 사회관계에서 ‘불평등’이 문제였다면, 1980년대 신자유주의체제 이후에는 노동자(노조에 가입한 정규직)보다 더 아래에 있는 대중(행상, 비정규직, 빈농, 프레카리아트로 불리는 (반)실직자)의 ‘차별과 배제’가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런 문제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인식한 곳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이 집행되기 시작되면서 대중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집단적으로 [대안적 사회운동]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체제이론과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운동과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Q3. 세계체제론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브로델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과 라틴아메리카의 그것은 다르다. 우선 브로델의 경우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보다는 총체적 ‘해석’을 중시하고, 장기적·지속적인 패턴을 중시한다. 특히 정치 경제와 사회를 따로 구분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생산’ 중심으로 바라보지만, 브로델은 ‘상업’을 중시한다. 즉, 브로델은 우리의 상식인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시작했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월러스틴과 라틴아메리카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16세기에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 노동시키며 금, 은 등을 가져온 원거리 무역을 자본주의의 태동으로 보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니발 끼하노, 월터 미뇰로 등의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주장은 더욱 급진적이며, 유럽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16세기에 스페인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정복을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은 앞의 두 학자들과 같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가능하게 된 원시 축적이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적 억압에서부터 온 것으로 본다. 끼하노와 미뇰로는 이 폭력적 차별성이 17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중심주의의 근대성(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 근대 유럽의 인식론 철학)으로 합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폭력적 차별성을 ‘식민성’으로 인식하였으며, 이러한 폭력적 차별성이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어왔음을 비판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동력이 바로 이 ‘식민성’임을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역사의 ‘인식론적 단절과 전환’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를 근대성․(탈)식민성 담론이라고 부른다. 즉,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은 18세기가 아니라 그동안 약 1000년이 흐르면서 세계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헤게모니로 자리 잡은 근대성 자체가 전환되는 시간대인 것이다. 근대성 담론에 대한 대안적 전략은 각 지역(유라시아, 이슬람권,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정체성에 기초한 철학적 인식론의 틀을 유럽 중심적 근대성의 틀과 병행시키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최근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지금이 세계사적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까지 근대성의 범주에 포함하여 비판하고 있다.

 

Q4. 중남미를 이해하는데 세계체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남미와 세계체제 담론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체제(근대성, 신자유주의)의 근원적 출발이 중남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남미 대중이 가지는 독특한 삶의 태도, 기질, 성향 즉 집단적 에토스에서 나오는 대안적 비전으로 현재 위기에 처한 세계체제의 거시적인 단절,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유럽, 미국에서는 문제 해결의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최근의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위기 국면에서 양국의 엘리트 지도부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의 분노를 끌어안는 ‘포퓰리즘’에만 치우쳐 단기적이고 인종주의적 대응책을 내놓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라틴아메리카는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좌파 정부들(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대표,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의 ‘핑크 물결’로 평가됨)이 출현했고 동시에 이와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지는 에콰도르, 볼리비아의 원주민 공동체주의를 내세우는 정부들이 출현했다. 특히 후자는 새로운 대안의 비전으로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세계체제론의 비전과 상응하고 있다.


Q5. 중남미는 세계체제에서 어떠한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
1492년 스페인에 의한 라틴아메리카의 약탈이 유럽이 지금의 유럽이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약 50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과 혼혈인 메스티소들은 수많은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다. 그리고 19세기 독립 이후 현재까지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체제의 중심부인 유럽에 에너지, 광물 자원 등을 공급하는 기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잉카제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원주민 공동체주의적 제도를 식민시대에도, 독립 이후에도 유지해오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특히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안데스 국가의 원주민들)이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90년 초 집단적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정치적 주체로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990년대 이후에 펼쳐진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회운동을 견인한 것이 이들 원주민 세력이었다. 이들의 저항은 대안 없는 저항이 아니었다. 그들의 대안은 바로 안데스 원주민들의 공동체주의 문화로, 이 문화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극복하려는 전 세계인들의 인식론적, 실천적 패러다임 전환에 영감을 주고 있다.


Q6. 2차 대전 이후 세계체제는 어떻게 변화해왔나?
2차 대전 이후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전 세계에 자본주의, 자유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국가발전 담론을 전파했다. 물론 이에 대해 소련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냉전 상황을 유지했다. 이런 양극화된 세계체제 안에서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몰락과 냉전의 종식, 신자유주의의 부상으로 미국에 의한 일극 체제로 수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가 지속하기 힘든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점차 다극 체제를 향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다극 체제 중 하나의 축이 바로 라틴아메리카가 될 수 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오랜 정복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전환하려는 담론을 내놓고 있다. 이는 근대성 비판을 그 전제로 하며 현재 지나친 개발을 지양하여 생태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하려는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Q7. 패권국들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서 중남미는 그동안 어떠한 대안을 제공하였는가?
차베스가 등장하기 전의 라틴아메리카는 자유무역 지대 형성을 통한 중간 규모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대부분 소국들은 시장이 협소하여 경쟁적으로 미국 시장을 겨냥하면서 추진하는 자유무역지대를 통한 지역 통합에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1991년은 매우 중요한 전환의 시기였다. 이때 출범한 메르코수르(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대국이 참여하여 (역내 국가들의 단순한 자유무역지대화(化)가 아닌) 역내 무역을 활성화하려는 전략으로, 상당한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 특히 메르코수르는 역내의 소국인 볼리비아, 파라과이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로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면서 정치, 사회적 통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차베스와 룰라, 키치네르의 주도하에 2000년대 중반에 ALBA, UNASUR와 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통합운동이 출현했다. 메르코수르는 전통적인 무역 대신에 강국이 약소국을 도와주고 선물하는 칼 폴라니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험이었고, ALBA, UNASUR 등은 라틴아메리카가 유럽 세력에 대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이었다. 차베스 사망 이후 최근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우경화로 이러한 대안적 통합운동이 퇴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렇다고 좌절된 것은 아니다.


Q8. 지금의 세계체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현재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에 의해 과거 실크로드 국가들(대부분 이슬람 국가들)과 러시아와의 느슨한 연대 또는 통합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쿠데타 실패도 이러한 온건 이슬람주의 통합운동의 시대정신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세안 공동체가 가속화되고 라틴아메리카도 2000년대 들어 과거부터 가져왔던 비전인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이 구체화되고 있다. 한편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는 "유메리카" 세력이 유라시아-라틴아메리카 세력에 밀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단기적 전망이 아닌 장기적인 전망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다극적인 흐름을 보이며 전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체제가 유럽, 미국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약 천 년의 근대성을 뛰어넘어 과거 16세기 이전 즉, 유럽이 부상하기 전에 세계를 주름잡던 복수의 거대 정치 문화권의 현대적 의미의 복원이다.


Q9.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중남미는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중남미는 근대성이 가지는 폭력적 차별성 즉 식민성을 인식하여 근대성의 장점(경제 발전, 과학 발전, 비판 정신)을 받아들이되 모든 사회부문의 위계 서열을 거부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매우 생태적이다. 왜냐하면, 인간과 자연을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놓고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는 궂체적으로 에콰도르,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문화의 공동체주의로 실천되고 있기 때문에 공허한 담론이 아니다. 이러한 철학을 ‘좋은 삶’ 철학이라고 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을 한 국가 안에 실험하는 국가는 ‘복수 국민’ 국가라고 한다. 에콰도르는 2008년, 볼리비아는 2009년 신헌법에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생태적 위기와 맞물려 매우 설득력이 강하다. 이는 매우 거시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Q10. 중남미가 제시한 대응을 통해 세계체제와 중남미는 어떠한 변화를 마주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중남미가 제시하는 대안적 전망은 경영학적,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변혁세력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흐름 중 새로운 좌파 정부들(핑크 물결)의 힘은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와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우파 정부의 취임 등으로 인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흐름인 [원주민 공동체주의]를 실천하는 에콰도르, 볼리비아는 건재하지만, 경제적으로 약소국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강대국, 약소국을 막론하고)이 겪고 있는 생태적 위기와 사회경제적 위기(사회의 양극화, 삶의 질 또는 행복감의 저하)의 처방 또는 대안을 서구적 근대성(개인주의, 자유주의 철학)에 기대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대안적 비전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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