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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파라과이 과오르 농민 분쟁과 농업 개혁 전망

파라과이 구경모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 교수 2016/12/29

지난 12월 10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Asunción)에서 인권의 날을 맞아 농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농민들의 토지 축출 현상을 비난하고, 농업 개혁을 요구했다. 과오르(Guahory) 지역에서는 지주들이 농민을 쫓아내 지주-농민 간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위와 관련하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구경모 HK 교수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Q1. 과오르(Guahory) 농민분쟁이 벌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과오르 농민 분쟁은 표면적으로 2004년의 ‘콩 전쟁’처럼 브라질계 대농장주와 파라과이 소농 혹은 빈농의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35년간의 군부독재정부를 이끈 스트로에스네르가 전체 국토의 약 20%를 무단으로 그의 측근들과 외국계(브라질계) 자본가들에게 불하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오르 농민 분쟁 이전인 2012년에 발생한 꾸루과뜨(Curuguaty) 학살은 바로 독재정부 시절 불하받은 전 상원의원의 토지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2012년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즉 파라과이의 농민 분쟁은 대농장주와 소농 혹은 빈농의 갈등을 넘어 군부독재세력과 반 군부독재세력 간의 힘겨루기를 대변하고 있다.    


Q2. 농민 분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게 되었나?
과오르는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270km 떨어진 까아과수 주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농민분쟁의 발단은 2014년 과오리 마을에 200여 가구의 무토지 농민들이 무단으로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과오르의 면적은 총 2,200헥타르로, 이 가운데 1,200헥타르는 브라질계 농장주들의 토지이며, 1,000헥타르는 농지를 관리하는 농촌개발과 토지 국립센터(Indert) 소유이다. 이에 정부는 2016년 9월 15일 검찰과 경찰은 1,2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농민들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경찰력 투입 후 4일 만에 브라질계 토지 소유주 108명이 2억5천만 과라니(한화 4,500만 원)를 검경에 지불할 것을 합의하고 공권력을 동원한 것이 자유당(제1야당)의 루이스 알베르토 상원의원에 의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브라질계 농장주들과 정부 공권력의 돈거래가 밝혀지면서, 국민 비난 여론은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에 과오르에 파견된 경찰력은 적극적으로 농민들을 쫓아내기보다 정주하면서 관망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Q3. 분쟁에 얽힌 당사자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무토지 농민들은 현재 점유하고 있는 토지가 농사도 짓지 않는 버려진 땅과 같으므로 그곳에서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토지 소유자들은 그들의 사유지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 달라는 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구가 서로 상충되면서 양측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파라과이 국민은 브라질계 농장주의 태도를 외세의 거대 자본농의 횡포로 이해하고 있고, 이에 반해 브라질계 농장주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야당에서 브라질계 토지 소유자들이 공권력 동원을 위해 검경에 돈을 지불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이 문제는 단순히 브라질계 농장주와 무토지 농민의 갈등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 세력의 힘 대결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주장이 향후 대선을 위한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다.

 

 


Q4. 위 문제와 관련하여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농민과 지주, 혹은 중재인들은 위해 어떠한 조치들이 취해졌나?
농지 문제는 정부기관인 농촌개발과 토지 국립센터(Indert, 이하 인데르트)가 담당하고 있다. 인데르트의 전신은 농촌후생센터(IBR)로서 농지개혁법이 개정된 1963년에 설립되었으며, 이 기관이 2004년에 인데르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과오리의 전체 토지 중 소유주가 브라질계 농장주로 밝혀진 1,200헥타르를 제외한 1,000헥타르의 토지가 인데르트(Indert)에 종사하는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불법으로 편취된 것이 밝혀지면서 궁지에 몰린 정부와 여당, 인데르트는 농민들에게 정착할 토지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인데르트는 중재 방안으로서 과오르와 인접한 곳에 정착촌을 만들어 이주를 유도하도록 결정하였다. 인데르트는 과오르에서 동쪽으로 46.8km 떨어진 곳인 으우(Yhú)에 1,500헥타르의 땅을 구입하였고, 12월 중순부터 60가구가 먼저 이주하였다. 아직 과오르의 남은 농민들은 전국농민연맹(FNC) 함께 이주를 거부하면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Q5. 해결을 위한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또한 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취해져야 할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오르 농민 분쟁은 파라과이 농민 문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분쟁에서는 정부가 농민을 새로운 정착촌을 구입해서 이주시키는 등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브라질계 농장주와 국가 공권력의 암묵적인 연대와 인데르트의 부패가 드러나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파라과이 농민 분쟁의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파라과이는 1940년에 농지개혁법이 제정되었고, 그 이후인 1963년과 2002년에 농지개혁법이 수정되었다. 특히 1963년에는 농지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기관인 농촌후생센터(IBR, 인데르트의 전신)가 설립되었으나, 이 기관은 군부 독재정권의 부를 축적하는 데 이용되었다. 농지개혁법은 개개의 농민들이 토지를 보유할 수 있도록 만든 법안이었으나 실제로는 토지가 군부독재 정권의 측근들과 이들과 연결된 외국계(브라질계) 자본으로 이전되었다. 이로 인해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토지를 잃게 되었고 일부 지주들이 파라과이 전체 토지를 장악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과오르와 같은 농민 분쟁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농지개혁법에 적시된 대로 올바로 토지 분배가 필요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으로 불하된 토지를 회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Q6. 과오르 지역의 농민 분쟁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과오르의 농민 분쟁은 일단 인데르트가 마련한 새로운 정착촌에 이주하는 것으로 일단락 맺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주하는 정착지의 가구당 토지가 농지개혁법에 적시된 규모의 토지보다 적어 일부 농민들은 전국농민연맹(FNC)과 연대하여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여당, 인데르트가 국민 여론이나 여러 조건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 농민들이 지속해서 이주를 거부하고 투쟁을 한다면, 인데르트에서 수정된 조건을 제시하면서 분쟁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국 농민 연맹이 이번 분쟁을 통해 다른 무토지 농민 혹은 빈농을 위한 농지 개혁을 실현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정부와 첨예한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Q7. 과오르 뿐만 아니라 파라과이 농민들은 농지 개혁(agrarian reform)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요구한 내용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대로 파라과이 정부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고루 분배하기 위한 농지개혁법을 1940년에 제정하였고, 그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실시되었지만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진행되었다. 또한 이를 관장하는 정부기관(농촌후생센터도 설립하였지만, 이 기관은 농지개혁법을 악용하여 국유지 혹은 등기화 되지 않은 토지를 국가 권력층이 사유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원되면서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그들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즉 농민들은 농지개혁법에 적시되어 있듯이 정당하게 토지를 분배해달라는 것이며, 또한 군부독재 정권 당시에 부당하게 뺏긴 토지를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Q8. 농민들이 개혁에 대해 요구하면서 경찰과 충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설명해 달라.
12월 10일 국제 인권의 날을 맞아 아순시온의 이탈리아 광장에서 농민 운동 조직이 농지개혁 요구와 과오리 농민 축출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특히 시위대는 단지 5%의 토지소유자가 전국 90%의 땅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경찰들이 시위대와 함께 움직이면서 일부 충돌이 있기도 했으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들 농민 조직은 꾸루과뜨 학살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요구하였다. 특히 학살 관련자가 한 명도 처벌되지 않고 넘어간 법원 판결에 대해 항의하였다. 꾸루과뜨 학살은 농민과 경찰의 충돌로 11명의 농민과 6명의 경찰이 사망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좌파출신의 대통령인 페르난도 루고가 탄핵을 당한 사건을 말한다.


 

Q9. 이와 관련하여 정부와 법원은 어떠한 입장을 보였나?
파라과이는 1954년부터 친미성향의 군부독재정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콜로라도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 농지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2008년 가톨릭 사제 출신인 페르난도 루고가 파라과이 최초로 문민 좌파정부를 수장을 맡아 농지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탄핵을 당하였다. 농지개혁을 추진한다면, 군부 독재정권 때 불하를 받았던 지금의 정치세력들(여당)이 모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들 여당과 관련된 인사들은 대부분이 대토지지주로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농지개혁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오라시오 카르테스 대통령과 콜로라도당은 농지 개혁과 관련하여 적극적인 행보를 취할 수 없으며, 다음 대선을 위한 전략으로서 개별 농민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임기응변식)으로 정책을 펼칠 것이다.

 


Q10. 향후 농지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가?
파라과이는 미국의 반공주의 정책의 메카로서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해도 우파 정부가 강하다. 이러한 역사적 유산으로 인해 파라과이는 좌파 정치나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하지 못하다. 우파 세력들은 파라과이의 정치경제 영역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농지개혁을 추진할 리가 만무하다. 다만 농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페르난도 루고가 2018년 대선에 출마하여 여권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다면, 여권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해 농지 개혁과 관련된 유연한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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