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국제어로 부상하고 있는 ‘스와힐리어’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양철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2018/11/26

국제어의 정의


국제어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은 다분히 모호하다. 화자수로 단순하게 정의할 것인지, 국제적 위세 (International Prestige)라는 추상적인 기준으로 정의할 것인지 명료하고도 일치된 견해가 없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국제어라고 주장하는 경우, 왕왕 타 언어에 대한 우월성과 배타성의 집단적 표출이자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자문화 중심주의로 인식된다.


이처럼 국제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국제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존재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민족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러한 광범위한 지리적 분포는 신대륙 탐험, 식민지배와 팽창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이들 언어들은 경제, 통상, 외교, 교육, 행정, 사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의 언어로 사용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 언어에 국제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유엔을 위시한 국제기구에서 공식어로 사용되며 언어능력을 평가하는 객관적 언어능력 시험이 제도화되어 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 언어는 또한 언어를 확산시키고,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의 교육기관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영국문화원, 알리앙스 프랑세즈, 공자학당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국제어라는 사회적 인식과 공인된 위상에 힘입어 여러 나라에서 외국어로 교육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이들 언어는 실용적 차원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기준에서 다른 언어에 비해 선호되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 아프리카 국가들을 언급할 때 영어권(Anglophone), 프랑스어권(Francophone), 포르투갈어권(Lusophone), 스페인어권(Hispanophone)으로 구분한다. 이는 관성적으로 구분한 편의상의 나누기는 될 수는 있지만 아프리카의 언어 상황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보편적 초등교육(UPE)의 확산으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식민 종주국의 언어를 배우지만,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정치적 활동과 과정에 참여하거나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이들의 언어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습득한 고유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언어의 문제는 참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들 만이 식민 종주국의 언어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식민 종주국의 언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엘리트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아프리카에서 선호되는 스와힐리어


그러면 아프리카에서 수천만명의 화자를 보유한 언어들 보다 스와힐리어가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컨대, 하우사, 요루바, 이보, 암하릭, 오로모, 줄루, 호사어 등은 수천만명의 모어 화자를 보유한 언어이다. 이들 언어는 정치, 경제적인 헤게모니라는 관점에서 특정 종족집단과 결부된 언어로 인식된다. 이에 반해 스와힐리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화자수는 적고 동아프리카에서 정치, 경제적 주도권을 갖고 있지도 않다.


동아프리카 해안지방을 따라 사용되기 시작한 스와힐리어 는 대상로를 따라 내륙으로 확산되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오늘날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동부와 중부의 여러 나라에서 공용어/공식어 혹은 국어/국가어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 코모로 제도, 남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마다가스카르, 르완다, 부룬디 등지에서도 교통어(Lingua Franca) 혹은 광범위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LWC, Language of Wider Communication)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이다. 스와힐리어를 구사하는 화자는 약 8천만 명에서 1억5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되는데 아프리카의 고유어 중에서 이토록 많은 화자를 가진 언어가 없다.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AU)도 아프리카의 고유어로 는 유일하게 스와힐리어를 공식어로 채택했고, 중동부 아프리카의 지역공동체인 동아프리카공동체(East African Community, EAC)도 스와힐리어를 공식어로 지정했다. 또한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중국, 이란 등 주요 국가의 국영방송국도 스와힐리어로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도 스와힐리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유엔과 바티칸도 다양한 분야에서 펼치는 활동을 스와힐리어로 홍보한다. 미국 정부는 세계의 주요 전략어의 하나로 스와힐리어를 지정하여 스와힐리어 교육과 보급에 정책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주요 국가들도 스와힐리어 교육에 국가적 관심을 갖고 전문가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스와힐리어의 확산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언어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영어나 프랑스어는 식민통치의 역사적 잔재라는 인식도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고유어를 외국어로 가르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짐바브웨 정부는 스와힐리어를 외국어 과목의 하나로 지정했고, 남아 공화국도 2020년부터 스와힐리어를 교육체계에서 가르치는 과목의 하나로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2011년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남수단의 경우도 스와힐리어를 교육 과목의 하나로 선택했다. 인구의 1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딩카족과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누어족의 언어를 선택해서 종족적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키는 것보다는, 중립적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채택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 선택이라는 점을 간파한 결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와힐리어를 채택함으로써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결속과 단결이라는 목표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간다도 지역 통합에 있어 언어가 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스와힐리어를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과목으로 지정했다.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도 대학에 스와힐리어 전공 과정을 개설함으로써 스와힐리어는 이제 동부아프리카의 지역 공통어에서 명실공히 汎阿主義(Pan-Africanism)를 구현하는 언어적 도구로 인식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러한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와힐리어를 국민 통합과 발전의 언어적 도구로 일찍부터 선택한 탄자니아도 스와힐리어의 사용과 교육 진흥을 위한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국회에서 의원들이 토론이나 질의를 할 때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이러한 국회 토론과 질의 및 답변이 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이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불가결한 요소다. 현 존 폼베 마구풀리 대통령은 외국 방문 시에도 영어 대신 스와힐리어를 사용해서 연설을 하거나 인터뷰를 한다. 그가 다르에스살람대학 교수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 선택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스와힐리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와힐리어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려는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에 부응하여 관련 연구기관이나 정부 부처도 스와힐리어 진흥을 위한 다각적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다르에스살람대학의 스와힐리어연구소(TATAKI)나 문화부 산하의 국립 스와힐리어평의회(BAKITA)가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있다.


탄자니아는 고유어 우선주의 언어정책, 즉 스와힐리化 (Swahilization)를 통해 다양한 기능을 실현했다. 개별 종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보다는 탄자니아인이라는 국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통합적 기능을 이루었고, 아프리카 고유어의 위상을 높이고 강화함으로써 외부 세계와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함으로써 구별적 기능을 실현했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이해하는 언어를 통해 국가의 운영과 경제발전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통해 참여적 기능을 이뤄냈다.


스와힐리어가 국제어로 자기매김하기 위한 노력 필요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는 가운데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제어로 자리매김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우선 정치, 경제, 행정, 사법,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확고히 사용되기 위해서는 추상적 개념과 전문용어를 스와힐리어로 만들어내려는 체계적 활동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과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은 다수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언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요구된다. 더불어 영어 구사를 지식과 동일시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스와힐리어를 지식 생산과 보급의 도구로서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이미 국제어로 발돋움하고 있는 스와힐리어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줄 것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