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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필리핀 보라카이 일시 폐쇄 조치와 두테르테 정치

필리핀 김동엽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문화연구센터 연구교수 2018/11/26

필리핀 정부의 보라카이 일시 폐쇄 조치


보라카이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약 10.3km2 면적의 이 작은 섬은 하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해변과 인근 바다의 아름다운 산호초 등으로 매년 국제 여행 잡지에서 선정하는 꼭 방문해야 할 아름다운 섬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보라카이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섬으로서 매년 수많은 한국인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이기도 하다. 2017년 보라카이를 찾은 관광객 총 200만 1,974명 중 한국인 관광객은 35만 6,644명으로 37만 5,284명이 방문한 중국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인총연합회는 보라카이에 약 1,500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친밀한 보라카이가 지난 4월 24일부터 일시 폐쇄되었다가 6개월이 지난 10월 26일 다시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국립공원에서 오랜 기간 등산객들의 발길로 환경이 훼손될 위험에 있을 경우 출입을 통제하여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번 보라카이의 일시 폐쇄 조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별다른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보라카이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이러한 조치를 취한 정부의 결정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보라카이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필리핀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이며,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약 0.1%에 달하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낳는 곳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동남아시아의 주변국들인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과 더불어 필리핀도 관광산업 육성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어 많은 투자와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보라카이를 일시적이나마 폐쇄한다는 것은 이러한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번 보라카이의 전격적인 폐쇄 조치가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보라카이의 환경훼손 문제가 최근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이미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재기되어 왔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1997년 보라카이 인근 해안에 녹조현상이 나타나자 필리핀 환경부에서 실태를 조사하여 환경재앙에 가까운 상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 장관은 관광객 들에게 보라카이 해안에서 수영을 하지 말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환경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특히 필리핀 관광 관련 업계에서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얼마 후 필리핀 관광부 장관이 보라카이를 방문하여 직접 수영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며 수질이 안전함을 홍보했다. 이어서 환경부 장관은 자신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해 사죄하고, 수질이 수영하기에 안전하다는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보라카이 환경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여 보호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필리핀에서 보라카이는 필리핀 경제와 관광산업 그리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이권과 일자리 등이 얽힌 복잡한 정치적 사안이었다.


필리핀 , ‘강한 사회-약한 국가’


보라카이 환경문제에 대해 과거 정부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인 필리핀의 경제적 현실과 국가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경우 개발도상국에서는 환경과 개발의 논리가 대치될 경우 개발의 논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개발도상국이 환경을 훼손하면서 개발에만 몰두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는 국가의 국정철학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논한 정치학자 믹달(J. Migdal)은 국가의 특성에 따라 ‘강한 국가’와 ‘약한 국가’로 나누었다. ‘강한 국가’는 사회에 대한 침투력이 강하여 사회와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사회로부터의 압력에 대해 자율성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강한 국가’는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으며,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함 으로써 국가 경제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강한 국가’는 그 동안 동아시아 경제발전 모델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었으며, 또한 권위주의 체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물론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 대한 유효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또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발전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폄하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내외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국가 경제를 보호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필리핀이 ‘약한 국가’로 간주되어 온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필리핀 영토 내에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슬림 반군과 공산반군의 활동 지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으로 국가의 사회에 대한 침투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정치와 경제계에서 지배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통적 엘리트 그룹은 국가 권력의 사유화를 통해 국가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적 연계를 통해 급속히 성장한 필리핀의 시민사회, 특히 비정부조직(NGO)들은 정부의 각 분야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막강한 압력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그동안 필리핀을 ‘강한 사회-약한 국가’의 범주에 포함되도록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강한 국가 표방


이러한 구조적 환경 하에서 출범한 두테르테 정부의 행태는 과거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집권 2년을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다양한 평가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출범과 함께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수 천 명의 인명 살상 사태는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을 무시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대통령이라는 비판의 이유가 되고 있다. 또한 필리핀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과 필리핀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계에 대한 도전적인 행태는 과거 정부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었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무슬림 국제 테러조직인 IS와 연계된 마우떼그룹(Moute group)에 의해 마라위 시가 점거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화기로 무장한 병력을 동원하여 강력히 응징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선포된 민다나오 전역의 계엄령은 아직까지도 철회되지 않고 있다. 또한 공산반군에 대해서도 집권 초기부터 추진한 평화협상 과정에서 공산반군의 요구가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판단되자 협상을 철회하고 강력한 토벌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근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규모 마약이 해외에서 수입된 기계장비 속에 숨겨져 필리핀 세관을 버젓이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관세청장을 전보 처리하면서 필리핀 군대에게 직접 세관업무를 관리·감독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와 같은 정책 추진 행태는 일면 권위주의적이며 ‘강한 국가’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불관용 원칙, 그리고 국가 경제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주도적 역할 수행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와 ‘부패 척결’이 필리핀의 미래세대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최우선의 사명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세력들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초법적 살해와 같은 인권유린의 행위가 범해지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사범의 인권을 얘기하기에 앞서 마약으로 인해 병들어가는 청소년들과 이와 연계된 각종 범죄로 인해 희생되는 수많은 무고한 인명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약과의 전쟁’과 더불어 두테르테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경제발전의 기반을 제공할 인프라 건설 사업이다. ‘빌드-빌드-빌드’(Build-Build-Build)로 지칭하는 이 사업은 수도 마닐라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대형 인프라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는가 하면, 세제를 개혁하여 세수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과 더불어 환경운동가 출신인 로페즈(Gina Lopez)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강력한 환경정책 추진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녀는 비록 의회의 임명 비준 거부로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재임 중 전국에 있는 광산에 대해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광산들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녀의 강력한 환경정책은 필리핀 광산업계로부터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보라카이의 일시적 폐쇄와 전격적인 환경복원 사업의 추진은 두테르테 정부 하에서 ‘강한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과 이에 관련된 수많은 이권과 이해 당사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정책 비전을 내세워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준 것이 이를 말해준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보라카이 임시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 군부대와 경찰력을 대거 투입하여 만약에 있을 집단적 저항에 대비하면서 전격적으로 복원 사업을 펼쳤다. 지난 10월 26일 새롭게 개장한 보라카이는 불법 건축물 철거, 도로 정비, 하수 처리시설 정비 등 다양한 개선 사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향후 또다시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환경시설을 완비하지 않은 건축물에 대한 사용인가를 불허하고, 방문객의 수도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통제하는 등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두테르테 정부의 보라카이 환경복원 사업의 전격적인 추진은 두테르테 대통령과 필리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동안 두테르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 필리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현 필리핀의 정치를 바라볼 수 있다.


1986년 국민혁명으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치권력은 여전히 일부 엘리트 그룹에 의해 독점되어 있고, 지표상으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불평등 구조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불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오늘날 필리핀 국민 다수는 반인권적인 독재자라고 비난받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며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아바로미터(Asia Barometer)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보다 더 나은 정치체제로 인식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비율보다 2~3배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필리핀 국민들의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그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 다른 질문에서 필리핀 국민들은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비율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필리핀 국민들이 정치라고 하는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현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가치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상의 두 질문에 대한 필리핀 국민들의 응답을 통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국민들의 삶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수용과 의존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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