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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대학생 시위: 권위주의의 부상과 시민사회의 대응

인도네시아 김형준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2019/12/26

2019년 9월 대학생 시위
지난 9월 자카르타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수만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식의 시위가 인도네시아에서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2017년만 하더라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 입후보한 현직 주지사를 반대하는 집회에 백만 명에 이르는 군중이 참여했다. 따라서 9월 시위의 특이점은 그 참가자에서 찾아질 수 있었다. 이 시위는 대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1998년 수하르토 퇴진 요구 시위 이래 가장 많은 대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대학생 시위대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9월 17일 국회를 통과한 ‘부패방지위원회법 개정안’(Revisi UU Komisi Pembrantasan Korupsi)의 철회였다. 이 외에도 이들은 국회 표결을 앞둔 형법 개정안을 포함한 몇몇 법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인권 탄압적 정책 철회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대학생 시위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일관되지 않았다.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코위) 대통령은 부패방지위원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요구를 거절했지만, 형법 개정안을 포함한 문제시된 법안의 표결을 연기하도록 국회에 요청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대학생들의 열망을 적극 수용할 것이라는 입장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일부 장관은 시위대가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주요 대학의 총장을 소집하여 대학생의 시위 참여를 저지해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서 나타난 비일관성은 인도네시아의 최근 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형식적이나마 민주화 과정이 꾸준히 진행됨에 따라 시위를 통해 표출된 대중적 열망과 요구를 정당한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가 형성되었다. 반면 조코위 정권은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또한, 급진적 이슬람 세력의 활성화된 활동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보수화 경향이 강화되어왔다.

 

자카르타 시위는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 보수 이슬람 세력 사이의 미묘한 공존과 갈등, 공조와 대립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대중적 참여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배경을 검토함으로써 현재 인도네시아 사회가 놓여 있는 정치적 지형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방지위원회법 개정안 철회 요구
수만 명의 대학생이 참여했음에도 자카르타 시위를 추동한 뚜렷한 조직은 형성되지 않았다. SNS를 통해 확산한 시위 소식이 대규모 군중 동원을 가능하게 한 기폭제였다. 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점은 부패방지위원회법 개정안이 가진 폭발성이었다.

 

부패방지위원회(Komisi Pembrantasan Korupsi: 이하 KPK)는 부패 관련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 기관이다. 그 설립시기인 2002년은 수하르토 독재가 무너지고 한동안 지속된 정치사회적 혼란이 막바지에 이른 때로서, KPK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대한 열망을 구현하는 기관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대중적 기대와 지지를 등에 업고 설립된 KPK는 이후 거물 정치인, 선출직 공무원, 관료 등 정치경제적 엘리트를 잇달아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2016-2019년 기록을 보면, KPK는 87건의 직접 수사를 통해 327명을 기소했는데, 전직 장관, 국회의원, 주지사, 도지사 등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KPK의 활동은 부패 사건을 공론화하고 부패 정치인과 관료를 처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혁혁한 성과를 뒷받침한 요인은 KPK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한이었다. 부패 사건을 인지한 후 KPK는 법원의 영장 없이 수사하고 혐의자를 체포, 심문, 압수할 권한을 지녔다. 이로 인해 KPK 수사는 비밀스럽고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으며, 기소 후 거의 100퍼센트에 이르는 유죄 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다. KPK의
활동이 부패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를 개혁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인도네시아 엘리트에게 있어 KPK는 위협적이고 껄끄러운 대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19년 9월 말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있던 국회는 KPK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설에 따르면 개정안 논의에서 통과까지 소요된 기간이 2주에 불과할 정도로 모든 정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 개정안의 초점은 KPK의 초법적 권한을 약화하는데 맞추어져 있었다. KPK의 지위는 독립 기관에서 행정부에 소속된 기관으로 전환되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활동의 전반을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감독위원회에는 수사 과정에 영향을 미칠 권한이 부여되었는데 이를 예시하는 것이 감청권이다. 법원의 영장 없이 자유롭게 행할 수 있던 감청 활동은 감독위원회의 허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대학생들은 개정안이 부패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투명한 사회를 향한 개혁을 후퇴시킬 것이라 주장했다. 부패 정치인의 야합으로 인해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했음을 지적하며 이들은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조코위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대학생 시위를 일으킨 도화선이었음에도 조코위 대통령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위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난 12월 초 조코위 대통령은 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직 대법원 재판관, 지방법원 법관, 학술원 연구원, 전직 KPK 부의장 등을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했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이라는 KPK의 상징성을 고려해보면, 대통령의 위원 선임은 시민사회의 열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힌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이러한 행보는 권위주의로의 회귀라는 조코위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의심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 수 있었다.

 

형법 개정안 철회 요구
대학생 시위를 통해 제기된 또 다른 이슈는 국회 표결을 앞두고 있던 형법 개정안이었다. 인도네시아 형법은 네덜란드 식민지 형법에 바탕을 둔 것으로 독립 이후 일부 조항의 개정과 신설이 필요에 따라 이루어졌을 뿐이다. 식민지 유재를 탈피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지난 10여 년 동안 논의를 거친 형법 개정안이 9월 국회 표결을 앞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개정안 중 일부가 문제시되었고 이는 시위대를 결집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형법 개정안 중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혼전 성관계, 혼외 성관계, 혼전 동거를 위법화하는 조항이었다. 예를 들어, 개정 형법에는 “남편이나 부인이 아닌 대상과 성관계를 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새 형법에서는 낙태와 미성년자 피임, 밤늦은 여성의 외출, 동성애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다.

 

개인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은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이슬람법(shariah)의 국가법化 흐름에 비추어볼 때 그리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이래 이슬람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조례를 통해 유사한 행동을 불법화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보수적 이슬람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성적 행위 전반을 이슬람법의 관점으로 재단하려는 경향 역시 확산해 왔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형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슬람에 기반을 둔 몇몇 정당의 주도로 관련 조항이 개정안에 삽입되었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할 때 오히려 이례적인 현상은 성적 행동의 자유를 지지하는 요구를 대학생들이 제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슬람화 흐름 속에서 침묵을 지켜왔던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제기한 것이라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적 이슬람이 강화되고 이슬람 급진 세력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주장이 수용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시위대가 문제 삼은 또 다른 형법 개정안 내용은 대통령과 부통령, 국기와 국가 등 국가 상징물을 모독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었다. 2006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폐기된 대통령 모독죄의 부활은 권위주의적 정치와 보수화의 흐름이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점점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시위대의 추가적 요구
시위대를 결집한 핵심 이슈는 KPK와 형법 개정안이었다. 여기에 추가되어 제기된 요구 사항은 두 범주로 나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몇몇 법률안이었다. 이들이 문제시한 법안은 노동법 개정안, 토지법 개정안, 성폭력방지법 등이었다.

 

대학생들은 노동법 개정안이 사용자의 입장을 우선시함으로써 노동자의 권익을 훼손시킬 수 있음을 경고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거론된 조항은 해고 관련 규정으로서, 법원의 판결 없이 해고를 가능하게 한 개정안이 고용불안정을 야기할 독소조항으로 지목되었다. 이 외에도 무기계약직과 임시직 고용에 있어서의 제한을 완화한 규정, 건강 관련 노동자의 권익을 약화시킨 규정, 수습기간 연장 규정 등이 문제점으로 지목되었다.

 

토지법 개정안은 토지이용과 수용 과정에서 투자자의 이익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고 비판되었다. 인프라와 플랜테이션 투자 확대를 위해 삽입된 조항이 농민과 어민, 종족 집단의 희생을 강요하도록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방지법은 신속한 입법화가 요구되었는데,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안 심의가 지연되고 있음이 문제시되었다. 시위대가 제기한 두 번째 요구 사항은 포괄적 성격을 띠었다. 이로 인해 각각의 시위대가 강조한 내용과 지역적으로 제기된 내용에서 일부 차이가 나타났다. 시위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 민주적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를 범죄 집단화하려는 시도, 이들에 대한 탄압과 체포를 멈출 것
· 과거 인권 유린의 선봉에 섰던 책임자를 처벌할 것
· 경찰과 군인에게 민간 영역에서의 직위 제공을 금지할 것
· 파푸아에서 전개된 집합 행동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억압을 멈출 것
· 표현의 자유와 인권 보호, 국민의 정책 결정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
· 종족 간 차별 철폐, 경제적 평등성 제고, 여성 보호 등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통합성을 높일 것
· 수마트라와 칼리만탄에서 환경 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지역 엘리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것. 이들 회사의 허가를 철회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시킬 것


대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시민사회에서 논의되어 온 다양한 문제를 포괄했다. 이들은 노동자, 농민, 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권익을 증진할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환경파괴, 인권 유린, 경찰과 군부의 민간 영역 침해, 정치적 억압, 소수 종족에 대한 탄압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당면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국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 사항이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 1기 종료 시점에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시사점을 지닌다. 이는 민간인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민주주의적 절차와 관행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퇴진 이후 20여 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 과정이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실질적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여전히 필요함을 대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표현했다.

 

조코위 정부의 권위주의화와 시민사회의 대응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궁 주변의 쇼핑센터를 찾아가 시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2018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장에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서며 소탈한 시민으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 불시에 하위 기관을 방문한 그는 자리에 없는 공무원을 징계하고 민원을 직접 청취하기도 했다. 이런 깜짝 행보는 그에게 탈권위주의적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고, 이는 그의 정치적 성공을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첫 재임 기간을 거치며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기존 이미지와 차별적인 행보가 표출되었다. 그는 이슬람 단체를 강제로 해산했고, 파푸아를 비롯한 지역 수준의 집회를 강제진압했다. 그의 집권기 동안 대테러 기관과 검경의 활동이 강화되었고, 정치군인과 정치경찰이 득세하는 양상 역시 전개되었다. 국가이념인 판차실라(Pancasila)를 강조하며 국가통합을 우선시하는 그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너무 나갔다”라는 그의 언급이 우발적인 말실수가 아닐 수 있음을 의심하도록 했다. 이러한 모습은 조코위 정부의 권위주의화 경향을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기 동안 강성 이슬람주의(Islamist) 단체는 권위주의적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무정부적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공권력의 간섭은 최소화되었다. 강성 이슬람 단체에 대한 유화적 행보는 이슬람 세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코위 대통령의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그가 이슬람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마루프 아민(Ma‘ruf Amin)을 집권 2기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점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강성 이슬람주의자와 보수 이슬람 세력 모두 강력한 종교적 권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이들에 대한 조코위 대통령의 포용적 태도는 권위주의에 대한 친화적 성향을 드러내 주는 효과를 지녔다.

 

인도네시아 사회의 (재)권위주의화 경향에 대해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지 못했는데, 이 지점에서 이번 시위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생들의 시위는 정부와 정치권의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시민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표현해주었다.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지하는 시민사회가 여전히 대중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번 시위는 민주적 개혁을 일방적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학생 시위대에 대한 엇갈린 반응에서 보이듯, 정부와 정치권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는 대중 동원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상당 기간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사회의 권위주의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하게 표출시킨 이번 시위는 권위주의화와 보수화 그리고 탈권위주의화와 민주화 사이의 갈림길에서 어떤 균형점을 모색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조코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엘리트에게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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