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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전환기의 베트남, 중소기업 기술역량 강화가 산업고도화의 핵심

베트남 윤미경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19/12/26

베트남, 기로에 서다
베트남은 1986년 개방정책을 도입한 후 국제 분업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빠른 경제성장과 빈곤감소를 성취하였다. 저임금에 기초한 GVC(Global Value Chain)로의 편입은 초기에는 그 자체만으로 생산량 확대, 고용 증대 및 효율성 증대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개발 전략이 성공하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업고도화를 이루어 GVC내 낮은 부가가치 단계에서 높은 부가가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GVC로의 편입은 영원히 저임금의 낮은 부가가치 단계에 예속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Ohno(2009)는 후발국의 산업화 단계를 다섯 단계로 분류하고 있다.1) 농업중심의 후발국에 외국인투자가 유입되면서 산업화가 시작되는 “Stage zero”는 외국인투자기업 주도하에 단순 조립형 산업화가 전개되는 “Stage one”으로 이어진다. 수입된 외국기술이 확산되고 체화되면서 지원산업이 태동하는 “Stage two”와 산업기술을 마스터하여 첨단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Stage three”를 거쳐 자체 기술혁신을 통해 선도적인 제품을 기획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인 “Stage four”에 도달한다. 대부분의 중소득국이 “Stage two”에서 “Stage three”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중진국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분류 기준에 의거하여 보면 베트남은 “Stage one”에서 “Stage two”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에서는 생산성이 체감하기 시작하며 성공적인 이행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는 상당부분 숙련노동의 부족, 부품소재부문 등 지원산업의 낙후성, 높은 영세 중소기업 비중 등에 기인하고 있다.

 

중견기업의 부재
베트남 산업구조의 특징 중 하나는 지원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중견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전체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을 기준으로 1.4%에 불과하다. 이것은 2007년의 2.5%에서 감소한 것이다. 이에 비해 미소기업 비중은 2007년 61.7%에서 2017년에는 75.9%로 오히려 증가했다.2) 이러한 영세 미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규모의 경제를 살릴 수도 없고, 기술개발에 투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이 부재하다는 것은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업 후보군이 그만큼 취약함을 뜻한다. 중견기업들이 오히려 미소기업 군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중견기업 중 21.5%가 2007년에서 2015년 사이 시장에서 퇴출되었는데, 이는 연평균 3%의 속도로 중견기업 수가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2015년까지 살아남은 중견기업 중 19%만이 중견기업군에 남아있고 15.4%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으나 나머지 44.1%는 미소기업군으로 전락하였다.3) 결국 미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 역동성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첨단 중소기업들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다. Vietnam Innovative Start-up Accelerator (VIISA)와 Topica Founder Institute (TFI)와 같은 창업지원 조직과 VNG, VC corp, Vinabook, College Scout와 같은 스타트업 성공사례도 나타나고 있다.4) 이들 스타트업들이 중견기업의 빈자리를 메우고 향후 베트남 산업을 선도할 기업들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벤처기업 육성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이 높다. 민간벤처자금에 의존한 이러한 정책은 단지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요하거나 행정적으로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운영하고 관리하기가 용이해서 선호될 뿐이라는 것이다. 정작 산업고도화 단계로 전환하는데 핵심인 지원산업의 산업기술 촉진을 위해 필요한 자본집약적 설비투자와 R&D투자 등 대규모 공공투자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R&D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 없이 스타트업만 육성하려는 과학기술정책은 기술역량이 없는 소기업들을 양산하여 오히려 다국적기업으로부터 국내 중소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5)
  
영세한 미소기업이 베트남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는 자원의 왜곡을 가져오는 제도적 요인도 한 몫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토지, 금융 등 산업자원이 민간기업보다 생산성이 저조한 공기업과 권력기관과 유착된 대기업들에 편중되어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성이 저조한 대다수의 미소기업이 비공식 “가내수공업체 (household business: 이하 HHB)”로, 공식 등록된 중소기업에 비해 규제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Le Duy Bihn (2018)이 보고한 베트남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들 HHB의 수는 2016년 4.5백만에 이르며, 전체 GDP의 약 30%를 차지한다고 한다.6) HHB는 일반적인 비공식 부문 미소기업과는 좀 다르다. 이들은 도이모이 이전 시절 이루어졌던 사유화 시도의 하나로, 당시 인정되었던 베트남의 독특한 기업형태다. 도이모이 이후 기업가들이 HHB를 창업을 위한 기업형태로 선호하면서 HHB가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사업범위는 제한되어 있지만, 회계, 세금, 사회보장 의무 등 기업을 규제하는 모든 측면에서 공식 등록된 민간기업에 비해 우대를 받고 있다. 이에, 상위층에 속하는 HHB들은 보다 투명한 경영을 요구받는 공식 민간기업으로의 전환을 가능한 회피한다고 한다. HHB들은 저조한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그 유연함과 고용효과, 그리고 공식 기업들이 서비스하지 못하는 지역이나 계층에 서비스와 제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나름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중견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취약한 중소기업의 기술역량
2013~2015년 기간 동안 2,348개 베트남 중소기업이 응답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40% 정도의 중소기업만이 신제품을 도입하거나, 제품을 개선하거나 신기술을 도입하는 등의 혁신을 경험하였다. 한편, 미소기업과 소기업들은 자주 사소한 변화를 꾀하는 반면, 중견기업들은 횟수는 적지만 보다 양질의 혁신노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에 근거한 최근의 연구결과는 기업규모가 중소기업의 기술역량을 결정 짖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7) 기업규모를 대표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매출액이 높을수록 중소기업이 혁신 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의 사업규모 확대가 기업의 혁신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술역량이 보다 높은 중견기업들에게 자원을 배분하는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보통 기업의 “기술역량”과 혁신 활동을 구분하지 않고 R&D자금지원 등 친 혁신 환경을 조성하기만 하면 중소기업들이 바로 혁신 활동을 수행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개도국의 기술변화과정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 기반한 “기술역량접근” 문헌에 따르면 외부의 기술을 흡수하고 자체적인 혁신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기술역량”을 필요로 한다.8) 즉, 학습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다. 이러한 역량은 종업원의 훈련, 기존 기계장비의 능률적인 활용, 생산활동을 통한 기술적 학습, 원청기업과의 협력 등 기술적, 경영적 그리고 제도적 측면에서 작은 개선 노력들이 쌓이면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다. 중견기업들에 자원을 배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률적인 R&D자금 지원과 같은 정책 보다는 산업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컨설팅과 기술인력을 보급할 수 있는 미시적인 정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전망과 시사점
베트남의 경우 지역별로 중소기업 지원 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나 관련 부처간 조율의 부재로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첨단 생산관리기술이나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적 컨설팅을 제공할 만한 인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은 섬유·의류, 신발, 전자산업 등 주요 글로벌가치사슬에 베트남 중소기업들이 활발히 참여하는데 장벽이 되어왔다.9) 이러한 관점에서 베트남에 대한 한국산업진흥원의 산업혁신센터와 같은 산업기술ODA는 매우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산업혁신센터는 산업기술 전수, 시험인증, 인력양성 등에 초점을 두고 한국의 기술인력을 장기파견하여 현장에서 문제해결을 돕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국내 중소기업과 베트남 중소기업의 더욱 활발한 참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견기업 출현의 또 다른 중요한 경로는 외국인투자기업 또는 대기업으로부터 스핀오프 하는 것이다. 2018년 현지 생산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에 인상적이었던 사례들이 있다. 4P Electronics는 LG 베트남에서 10여년 간 종사하던 직원이 설립한 합작회사로 자동차 회사들에 오디오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LG의 1차 벤더로, 베트남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LG현지 공장 단지에서 LG와 긴밀한 기술적 협력 하에 생산을 하고 있다. 베트남의 독보적인 초콜릿 생산업체인 비나카카오는 자사에서 세 개의 회사가 스핀오프 하여 경쟁상대로 커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은 지역농민이 보유한 소규모 경작지에 유기농으로 카카오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국내 가치사슬 구축과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정부 정책의 개선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역동적인 기업 간 협력과 이를 통한 기술혁신의 확산을 기대해 본다.

 

*각주

1) Ohno, K. 2009. “Avoiding the Middle-Income Trap: Renovating Industrial Policy Formulation in Vietnam.”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Economic Bulletin 26(1): 25-43.
2) Le Duy Bhihn. 2018. “Vietnam Private Sector: Productivity and Prosperity.” Economics, Hanoi. pp. 42. 여기서 중소기업은 고용인 300명 이하를 의미하는 것으로, 베트남의 중소기업은 한국의 중소기업에 비해 그 규모가 작다. 베트남은 2018년 중소기업의 정의를 고용인 300명 이하에서 200명 이하로 바꾸었다.
3) Tang Chien Nguyen, Hoang Van Tran and Huan Minh Luong. 2019. “Chapter 2: Medium Sized Enterprises in the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Milan Vemic ed. Strategic Optimization of Medium-Sized Enterprises in the Global Market. Advances in Business Strategy and Comparative Advantage (ABSCA) Book Series. IGI Global. Hershey, PA, USA.  
4) Workshop on Financing APEC SME Innovation through Venture Capital. 2014.
5) Klinger-Videra, Robin and Robert Wade. 2010. “Science and technology policies and the middle income trap: Lessons from Vietnam.” Journal of Development Studies: 1-19.
6) Le Duy Bhihn (2018), 위의 글.
7) Yun, Mikyung. 2019. “Technological Capability of MSMEs and Implications for Innovation Policy: A Case Study of Vietnam.” APEC Study Series 19-02. KIEP.
8) Lall, Sanjaya. 1992. “Technological Capabilities and Industrialization.” World Development 20(2): 165-186.
9) Sakurada, Yoichi, and Nguyen Thi Tue Anh. 2019. Overview and Assessment of the Current SME Policy and Supporting Industry Promotion Policy in Vietnam.
https://doi.org/10.13140/RG.2.2.21923.3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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