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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선언, 아프리카 식량위기 심화 우려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EMERiCs - -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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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곡물협정과 그 이면(裏面)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흑해곡물협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중요한 영향 중 하나는 바로 식량 가격 인상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밀 수출국으로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밀 중 러시아산 밀이 18%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역시 세계 밀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계 제5위의 밀 수출국이다. 2019년 기준 양국에서 수출되는 밀은 전 세계 밀 거래량의 25.4%에 달한다. 양국의 밀은 흑해를 통해 해외로 수출된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밀 수출의 95%가 흑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양국의 밀 수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으로 흑해 항로가 봉쇄됨에 따라 흑해를 통한 밀 수출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밀을 포함한 식량 품목 전반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식량 가격 인상은 기근 위험성이 높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여러 빈곤국에서 심각한 식량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연합(UN)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2022년 7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곡물과 비료 수출을 위해 전쟁으로 차단된 흑해 항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하는 선박을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UN 대표로 구성된 조사단이 검사하는 조건이었다. 협정 기한은 4개월이며 매 2개월마다 협정에 따른 합의가 준수되었는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방 국가가 여전히 러시아의 곡물과 비료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드러냈고, 식량, 비료, 농기계 등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것을 서방 국가에 요구했다. 곡물 수출과 흑해 해로 안전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국가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으나 흑해곡물협정은 불안하게나마 지속되었다. 러시아는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가 민간 선박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복귀했으며, 2023년 5월에도 2개월간 협정 연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2023년 7월 러시아는 다시 협정 연장을 거부하고 파기를 선언했다. 


흑해곡물협정과 국제 곡물가격의 상관관계

흑해곡물협정은 곡물을 포함한 국제 식량가격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협정 발효 이후부터 2023년 7월까지 우크라이나는 곡물 3,300만 톤을 수출했으며, 톤당 1,360달러(한화 약 180만 원)까지 올랐던 곡물 가격은 620달러(한화 약 82만원)까지 떨어졌다. 흑해를 통한 곡물과 식량 수출 재개로 국제 식량가격도 안정세를 찾아갔다. 밀 가격은 2022년 3월보다 54% 하락했고 옥수수 가격은 2022년 4월 기록한 최고치보다 37% 하락했다.


이에 흑해곡물협정 파기가 다시 세계 식량가격 인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흑해곡물협정 만기가 도래했던 지난 7월, 협정 연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고 해당 우려는 7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전월보다 1.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흑해곡물협정이 체결된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상승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특히 밀 가격 지수가 1.6% 올라 9개월만에 처음으로 상승했다. 여전히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22년 3월보다 12% 낮은 수준이고 전쟁 이후 다른 주요 밀 수출국의 밀 생산과 수출이 늘어나면서 흑해곡물협정 파기에 따른 영향이 전쟁 발발 직후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도와 베트남이 쌀 등 식량 수출 제한에 나서고 기후변화로 전 세계적인 수확량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흑해 지역에서의 안보 불안이 장기화되면 결국 국제 식량가격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수출 곡물의 향방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비판한 주요 근거 중 하나는 협정이 본래의 인도주의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흑해를 통해 수출된 곡물 중 단 4%만이 식량 위기에 처한 국가로 향했다고 비판했다. UN에 따르면 실제 우크라이나가 수출한 곡물 중 43%가 선진국으로, 57%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었다.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산 밀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중국이며, 이어 스페인, 튀르키예,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뒤를 잇는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인 이집트가 가장 높은 순위에 있다.


그러나 UN은 우크라이나산 밀 72만 5,000톤을 아프가니스탄,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 케냐 등 식량 위기가 발생한 국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산 곡물은 식량 원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실제로 세계식량기구는 원조에 사용되는 식량 중 80%를 우크라이나에서 수급한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 또한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우크라이나산 밀의 주요 수입처가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라 하더라도, 국제 식량시장에 밀 공급이 확대되면 식품 가격 전반이 하락해 결국 개발도상국의 식량 안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러시아가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곡물수급 위기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국가들


러시아 흑해곡물협정 파기, 아프리카 식량 위기 심화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8,000만 명이 식량 위기 상황에 놓인 아프리카다. 독일 외무부는 국제 식량가격이 1% 증가하면 100만 명이 절대 빈곤 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분석했고, 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은 우크라이나에서 식량 수출이 중단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3,000만 명이 추가로 식량 위기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했다.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밀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이집트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밀이 전체 수입의 25%에 달하는 나이지리아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 역시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식량 위기에 놓이지 않더라도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막대한 대외 부채와 재정 적자로 재정 건전성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으며, 국제 식량가격 인상에 따른 수입액 증가는 아프리카 국가의 재정 위기와 물가 상승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UN이 아프리카 식량 구호에 사용하는 식량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된다는 점도 아프리카의 식량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UN이 에티오피아에 공급하는 우크라이나산 밀은 매달 2만 3,000톤에 달하며 이는 150만 명을 구호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심각한 식량 위기가 발생한 동아프리카 지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소말리아, 케냐, 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에서는 2023년 들어 식량 가격이 40% 가량 올랐고 현재 4,000~5,0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처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밀 수입량 중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흑해곡물협정까지 파기되면서 동아프리카 국가는 심각한 식량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아프리카 주요국, 러시아 흑해곡물협정 파기에 대한 불만 표출

이처럼 흑해곡물협정 파기에 대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불만을 드러냈다. 알리 엘-모실리(Ali El-Mosilhy) 이집트 공급부 장관은 이집트는 러시아의 협정 파기를 비판하며 즉각 협정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압델 파타흐 엘시시(Abdel Fattah al-Sisi) 이집트 대통령 또한 아프리카 국가가 세계 공급망 교란에 따른 경제 및 식량 위기에 처해있음을 강조하며 러시아에 협정 복귀를 촉구했다. 케냐 외무부 고위 관료인 코리르 싱오에이(Korir Sing’Oei)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가 세계식량안보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특히 이미 가뭄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은 동아프리카 국가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식량문제,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 주요 의제
지난 7월 27일에서 28일 양일 간 러시아에서 개최된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의 식량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루어졌다. 러시아 측은 식량과 비료 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도 수출할 수 있는 물류 회랑 구축이 의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아프리카에 곡물을 제공할 능력이 있으며, 부르키나파소, 짐바브웨, 말리,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에리트레아 6개국에 2만 5,000톤에서 5만 톤의 곡물을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2023년 상반기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공급한 곡물이 1,000만 톤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식량 뿐만 아니라 비료 가격도 인상시켰는데, 이는 비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국가에 타격을 입혔다. 특히 아프리카의 비료 가격은 국제 비료 가격보다 더 높으며, 이로 인해 농민들은 비료 사용을 줄였다. 브라질이 헥타르 당 비료 365kg를 사용하는 반면 케냐와 잠비아에서 사용되는 비료는 헥타르 당 70kg에 불과하다. 비료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농업 생산성도 더불어 하락했다. 2022년 케냐의 비료 수입 규모는 전년보다 30% 감소했고 이에 옥수수 생산량도 18% 줄어들었다. 비료 가격 인상이 초래한 농업 생산성 저하는 국제 식량가격 상승과 결합해 아프리카의 식량 위기를 심화시켰다.

서방세계 반향을 위한 아프리카의 지지 촉구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과거 서구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배에 따른 서방세계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감을 고조 및 역(逆)이용하여 러시아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의 지지를 구하고자 한다. 러시아 측은 곡물 대부분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서방세계 시장으로 수출되었다고 주장하며 지난 7월 개최된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서방세계의 신(新)식민주의에 맞서 러시아와 아프리카가 함께 투쟁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한편 드미트리 막시미체프(Dmitry Maksimychev) 케냐 주재 러시아 대사는 아프리카의 식량 위기는 러시아의 곡물과 비료 수출을 막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는 서방세계에 있다고 책임을 돌리며 식량을 무기화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서방세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내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고있다. 지난 2019년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는 45개국 정상이 참가한 반면 이번 회담에는 단 17개국 정상만 참가했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와의 무역 규모를 연 400억 달러(한화 약 53조 800억 원(한화 약 23조 8,860억 원) 규모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두 지역간 무역 규모는 180억 달러(한화 약 23조 7,687억 원) 규모에 불과하며, 해당 무역도 아프리카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양이 대(對)러시아 수출량의 8배가 넘는 심각한 비대칭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 또한 러시아 전체 해외투자의 단 1%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나 아프리카의 편을 드는 강대국으로서 위치를 강조해 아프리카 국가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흑해곡물협정 재개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

국제 사회 지도자들, 러시아 흑해곡물협정 재개 촉구 의사 표명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흑해곡물협정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UN 사무총장은 흑해곡물협정이 세계 식량안보의 생명선이자 곤경에 처한 세계의 희망의 등불이라고 언급하며 러시아에 협정 재개를 촉구했다. 인도 또한 흑해곡물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UN의 노력을 지지하며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 주재 유럽연합(EU),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대사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 수장들, 러시아산 곡물 공급 촉구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이 러시아에 곡물 수출을 막지 않을 것을 촉구했다. 무사 파키 마하마트(Moussa Faki Mahamat) 아프리카연합(AU, African Union) 사무총장은 전 세계, 특히 아프리카의 이익을 위해서는 흑해곡물협장이 연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서구도 아프리카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 참석한 아프리카 정상 가운데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압델 파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키 살(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 등 6개국 정상은 흑해곡물협정 유지를 촉구하면서 협정 유지를 위해서는 서방세계가 러시아의 요구 사항 일부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EU 국가 내 계류된 러시아산 비료 20만 톤과 곡물 수출이 재개될 수 있도록 UN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식량 무기화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증대
흑해곡물협정 파기는 러시아의 오랜 전략인 식량 무기화의 하나로 분석된다. 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부 장관은 8월 3일 러시아의 행동이 식량을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발언하며 세계 여러 국가가 러시아에 식량을 무기로 이용하지 않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흑해를 협박 수단으로 이용하고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인질로 이용하는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힐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서방세계가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을 막고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식량과 비료는 서방세계의 제재에서 제외되며, 러시아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격으로 더 많은 양의 곡물을 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식량 무기화를 둘러싼 러시아의 이중 전략
흑해곡물협정 파기 이후 곡물 수출을 방해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은 더욱 공세적인 성향을 띄고있으며, 이는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화한다는 비난을 증폭시키고 있다. 8월 3일 러시아는 다뉴브강에 접한 우크라이나 도시 이즈마일(Izmail)을 공격해 항구에 있는 곡물 창고를 파괴했다. 이어 8월 16일에도 러시아의 군사용 드론이 다뉴브강의 항구도시 레니(Reni)의 곡물저장시설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8월 16일 러시아 드론이 두 차례 해안지역을 공격했으며 주요 공격 대상은 항구와 곡물 저장시설이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또한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을 저지하는 동시에 서방세계를 거치지 않고 식량을 직접 수출해 흑해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습이다. 실제로 독일 언론 빌트(Bild)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튀르키예, 카타르와 새로운 곡물협정에 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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