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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자원의 저주를 넘어 핵심광물 시대 중남미의 전략
중남미 일반 이승호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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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과 핵심광물의 부상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목표 아래, 에너지 전환은 세계 많은 국가의 핵심 전략과제가 된 지 오래다. 주요 에너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은 결국 청정에너지 기술의 도입과 확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며 사용하는 데 반드시 투입되어야 하는 이른바 핵심광물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청정에너지 기술은 각각 서로 다른 조합의 핵심광물에 의존한다. 예컨대 구리는 태양광, 풍력, 전력망, 전기차, 배터리 저장 시스템에 꼭 필요한 광물이며, 수력, 집광형 태양열 발전, 원자력 기술 등에서도 폭넓게 활용된다. 코발트, 리튬, 니켈, 희토류, 흑연 역시 청정에너지 기술에서 쓰임새가 다양하다. 전기차, 배터리 저장 시스템, 소형 전자기기 등이 이들 광물을 주요한 투입 요소로 삼기 때문이다. 또한, 니켈은 지열 및 수소 기술에서, 희토류는 전기차, 풍력발전 기술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크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청정에너지 기술에서 핵심광물의 투입이 필수적인 만큼, 핵심광물에 대한 구조적인 수요 증가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달성을 위해 2040년까지 핵심광물 수요가 현재보다 4~6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IEA, 2021). 이는 청정에너지 기술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이 기존 화석연료 기반 시스템과 비교해 필요로 하는 자원의 종류와 비중이 유의미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핵심광물의 전략화와 중남미 자원부국의 과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핵심광물 수요 확대가 자유무역 질서에 기반한 세계화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 확대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격화되는 이란–이스라엘 분쟁과 같은 군사적 충돌과 지정학적 긴장이 잦아진 것은 물론, 주요국 간 전략 경쟁이 무역, 공급망, 첨단 산업, 안보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동시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에서 한발 물러난 채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을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핵심광물을 더 이상 단순한 원자재로만 볼 수는 없다. 탈세계화의 조짐, 공급망의 분절화, 그리고 글로벌 지정학 경쟁의 심화 속에서 각국은 핵심광물을 에너지 전환의 필수 투입재를 넘어 경제안보의 향방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핵심광물이 경제적 자원인 동시에 지정학적 무기이자 외교적 레버리지의 원천이 되고 있는 만큼, 이를 보유한 자원부국의 협상력은 필연적으로 높아진다(Kaup and Gellert, 2017; Lee, 2025).
바로 이 지점에서 풍부한 핵심광물을 보유한 중남미가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중남미는 구리, 리튬, 니켈, 희토류, 흑연 등 주요 핵심광물의 높은 부존도를 바탕으로 관련 가치사슬에서 이미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거나 앞으로 위상을 강화할 잠재력이 크다. 이러한 가운데, 역내 다수 국가에서는 핵심광물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되어 왔으며, 핵심광물 가치사슬 전반에서 국가의 통제와 개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역시 곳곳에서 관측되어 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회
천연자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중남미 자원부국은 오랜 기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을 해왔다. 많은 국가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전통적인 에너지원을 두고 국유화와 민영화 사이의 스펙트럼을 오갔다.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초반 자원 붐 시기에도 에너지원을 둘러싼 역내 논의와 정책 변화가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최근 이루어지는 핵심광물을 둘러싼 논의는 과거의 자원 논의와는 다른 조건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논의가 청정에너지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핵심광물에 대한 수요 증가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전히 핵심광물의 부존, 채굴, 가공은 소수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각국이 핵심광물 공급망의 탄력성 제고나 통제를 위한 정책 수단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점도 과거와는 다르다. 많은 국가가 자국 내 핵심광물 생산을 확대하거나 자국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핵심광물의 경우 우방국에서 조달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전략 비축, 수출통제와 같은 정책 수단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에너지원에 비해 핵심광물은 그동안 국가 차원의 전략 논의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중남미에서 핵심광물은 최근까지 상대적으로 개별 광업 부문이나 수출산업의 차원에서 다루어져 온 게 대부분이었고, 최근 들어서야 국가안보와 산업정책 의제로 떠올랐다.
정리하면, 혁신과 경제력의 상징으로 새롭게 부상한 핵심광물을 어떻게 국익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중남미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천연자원 관리 논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게임의 룰’ 아래 중남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핵심광물을 어떻게 발전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을까?
‘자원의 저주’ 귀결이 아닌 중장기적 국가 발전의 지렛대로
중남미 자원부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핵심광물 붐이 과거 많은 국가가 경험했던 ‘자원의 저주’로 귀결되는 것이다. 핵심광물 수출의 확대는 국가 경제의 채굴 부문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이른바 ‘네덜란드병’ 메커니즘을 통해 다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산업 발전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지면 중장기적으로 고용과 소득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긴다. 아울러 자원 가격 사이클에 따라 경제 전반이 크게 흔들리는 과거의 경기 순환 역시 되풀이될 수 있다. 또한, 자원을 선점한 사회집단이 생산성 향상이나 산업 고도화보다 자원 채굴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지대추구 행태가 강화될 위험도 있다.
중남미 각국이 핵심광물의 부존을 ‘자원의 저주’로 귀결시키지 않고 중장기적 국가 발전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서는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핵심광물이 부존되어 있는 것과 핵심광물이 상업적으로 생산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부존이 실제 생산 활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역내 대부분 자원부국에서는 채굴 산업의 초기 단계에서 외국인기업의 자본과 기술 도입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외국인기업에 충분한 투자 유인을 제공하되, 탐사권·채굴권 부여, 로열티 및 세제 설계, 부가가치 창출 기여 방안, 지역사회 환원, 환경적 책임 등 생산 활동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국가의 통제와 외국인기업에 대한 유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데 있다.
둘째, 핵심광물 채굴이 본궤도에 올라 생산 활동을 통해 막대한 지대가 발생한다면, 이를 단기적 재정 팽창이 아니라 장기적 재정 건전성과 산업 다변화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구리에서 발생한 지대를 정치권의 개입을 제한하며 국부펀드에 적립해 온 칠레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 원자재 붐 시기 역내 여러 자원부국이 채굴 부문에서 얻은 막대한 수입을 바탕으로 사회지출을 대폭 확대했던 경험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남미의 오랜 쟁점이었던 높은 빈곤율과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지출을 늘린 것 자체는 분명 옳은 방향이었지만, 자원 붐이 사그라든 이후까지 내다본 재정 운용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이들 사례는 핵심광물에서 발생한 수익을 일시적 호황의 과실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경기 변동을 흡수하고 미래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셋째, 1차산업을 단순한 핵심광물 채굴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닌 채굴 이후 제련, 정제, 소재화, 제조업 연계 확대 등의 공정에서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상업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게 물론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핵심광물 가치사슬 전반을 살펴보면 단순 채굴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부가가치는 제한적이다. 핵심광물 산업이 국가 경제 전반에 더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게 하려면, 이를 단순한 수출 자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 고도화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핵심광물을 지렛대로 삼아 중남미의 오랜 숙원인 ‘재산업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광물 기반 국가 발전을 위한 선결 조건
앞서 제시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가려면 몇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각 핵심광물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광물은 에너지원과 엄연히 다르며, 광물별로도 저마다 다양한 특성이 있다. 세계 경제의 수요 전망, 해당 광물을 둘러싼 시장 구조, 그리고 부존도, 매장량, 광산 생산량, 정제 생산량 등이 국가별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등이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핵심광물 부존국은 자국의 관련 산업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국 산업의 성숙도에 따라 해외자본과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결정되고, 이는 국가가 해당 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핵심광물 산업이 초기 단계에 있는 경우 해외 자본과 기술의 도입 없이는 산업 발전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정부가 초기부터 산업 전반에서 큰 통제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물론, 높은 부존도를 바탕으로 한 미래 가치나 핵심광물 관련 기술을 일부 보유하고 있는 경우 이를 일부 지렛대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셋째, 핵심광물의 주요 수요국이 핵심광물을 어떤 전략적 논리 아래 접근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Braunstein and Chuchko, 2025). 어떤 국가 그룹은 핵심광물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는 경향이 강해 국영기업을 최대한 활용하며 장기 투자를 통해 공급망 통제력을 확보하는 반면, 또 다른 국가 그룹은 민간기업 중심의 시장 메커니즘과 위험 분산 원칙을 중시하는 방향성 아래 핵심광물을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 두 방식을 혼합하는 경우도 최근 빈번해졌다. 어떤 수요국과 협력하느냐에 따라서, 또는 어떤 수요국이 특정 핵심광물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중남미 자원부국의 협상 환경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핵심광물을 지나치게 정치화해서는 곤란하다. 국가 통제를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 메커니즘을 더 중시할 것인지는 정책적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마땅히 따져야 할 조건들을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나가며
중남미 자원부국은 2000년대 자원 붐으로 말미암은 호황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를 겪던 와중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새로운 경제성장 엔진을 서둘러 모색해야 하는 이때, 중남미 자원부국에게 핵심광물의 전략적 가치 상승이라는 외생적 충격은 국가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가 저절로 국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충분한 고민 속에서 치밀하게 설계된 정책 없이 핵심광물 붐에 편승한다면, 중남미는 익숙한 '자원의 저주'에 빠져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객관적인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핵심광물을 둘러싼 국내외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정교하게 조율하며 산업을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핵심광물을 통해 안정적인 재정을 도모하고, 국내 부가가치 비중을 높이며,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긴장이 더욱 빈번해지는 가운데, 중남미 자원부국이 핵심광물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면 이는 곧 글로벌 경제와 국제정치에서의 위상 제고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핵심광물이 저주가 될지 축복이 될지는 국가의 선택과 역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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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International Energy Agency. (2021). The role of critical minerals in clean energy transitions: World energy outlook special report. IEA.
Kaup, B. Z., & Gellert, P. K. (2017). Cycles of resource nationalism: Hegemonic struggle and the incorporation of Bolivia and Indonesia.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arative Sociology, 58, 275–303.
Lee, S. (2025). What explains variants in resource nationalism in Latin America’s lithium industry? The Extractive Industries and Society, 24, 101697.
Braunstein, J. & Chuchko, M. (2025). Resource curse in the age of critical minerals: geopolitical forces and market maturity. Energy Research & Social Science, 127.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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