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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말레이시아 국왕 즉위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

말레이시아 홍석준 목포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인류학과 부교수 2012/05/15

2012년 4월 11일은 말레이시아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것은 이 날이 뚜안꾸 압둘 할림 무아드잠 샤(Tuanku Abdul Halim Mu'adzam Shah, 84세) 끄다(Kedah) 주(끄다 주는 말레이시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의 주왕(Sultan, 州王)이 말레이시아의 제14대 국왕(Yang di-Pertuan Agong, 國王)으로 즉위한 날이기 때문이다. 국왕 즉위식은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내 잘란 두따(Jalan Duta)에 소재한 왕궁 이스따나 느가라(Istana Negara, 王宮)에서 거행되었다.

미잔 자이날 아비딘(Tuanku Mizan Zainal Abidin, 국왕 임기 2007년~2011년, 뜨렝가누 주 주왕)에 이어 제14대 국왕으로 등극한 그는 지난 1970년 7월 25일, 당시 42세였던 해에 이미 제5대 국왕에 올라 첫 번째 임기를 지낸 바 있다. 한 명의 주왕이 국왕의 지위에 두 번 오른 일은 말레이시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말레이시아 지도자 회의(Conference of Rulers)는 9명의 주왕 중에서 1인을 국왕으로 선출하는데, 그 임기는 5년으로 되어 있다. 국왕은 국회와 내각의 권고에 따라 총리와 총리가 추천한 대법원 및 고등법원 판사와 군 총사령관을 임명하는 등의 인사권을 포함한 각종 행정권을 행사한다.

말레이시아 국왕의 역할과 그 의미는 말레이시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막강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말레이시아 연방헌법 제32조 1항은 연방 최고대표자인 ‘국왕’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국왕’은 말레이시아의 최고 통수권자로 정의되어 있다. 연방 헌법 제32조 1항에는 “연방의 최고 대표자를 ‘양 디-뻐르뚜안 아공(Yang di-Pertuan Agong)’이라 한다. 그는 연방 내 그 누구보다 높은 지위를 갖는다' 고 적혀 있다. 연방 최고 대표자, 즉 ‘국왕’에 대해 명시한 연방헌법 제32조 1항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입안한 곳이 레이드 경 위원회(Lord Reid Commission)였는데, 그 내용은 이 위원회의 권고를 따른 것으로 1957년 말라야 연방(Federation of Malaya)의 헌법이 정해진 이후 공표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느그리 슴빌란(Negri Sembilan)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아홉 지역의 수장이 번갈아가면서 ‘양 디-뻐르뚜안 버사르(Yang di-Pertuan Besar)’에 오른다. 느그리 슴빌란에서, ‘지도자’ 자리인 ‘운당 양 음빳(Undang Yang Empat)’은 연방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연방의 지도자를 뽑는다. 말레이계 지도자, 암노(UMNO)와 연합 집단 그리고 다양한 기타 단체의 의견을 고려하여, ‘양 디-뻐르뚜안 버사르’라는 명칭을 ‘양 디-뻐르뚜안 아공’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느그리 슴빌란 주의 왕과 혼동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뚜안꾸 압둘 할림 무아드잠 샤 신임 국왕은 두 번째로 국왕 지위에 오른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한 주왕 출신 국왕이다. 그는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제5대 국왕을 지낸 바 있는데, 당시 말레이시아의 권력 구도는 초대 총리인 뚠꾸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에서 제2대 총리인 뚠 압둘 라작(Tun Abdul Razak)으로 바뀌던 시기였다. 압둘 할림 현 국왕은 압둘 라만 초대 총리의 조카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압둘 할림이 첫 번째 국왕에 오른 시기가 뚠꾸 압둘 라만 총리 시절이었는데, 지금 제2대 총리였던 뚠 압둘 라작의 아들인 나집(Datuk Seri Najib)이 총리직에 있는 시점에서 두 번째 국왕에 올랐다는 점이다.

말레이사아 국왕은 입헌군주제의 핵심이자 주요 상징이며, 입헌군주제의 개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한다. 레이드 경 위원회를 포함하여 여러 단체가 말레이시아에서 입헌군주제가 가장 적합하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함에 따라, 국왕이 권력과 주권을 가지게 됐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삐냉(Penang), 멀라까(Melaka), 사라왁(Sarawak), 사바(Sabah) 주의 대표는 왕이 될 수 없으며, 영국 식민 지배 시기에도 군주제는 영국 식민행정부의 인정을 받아 지속되었다. 1963년 이후, 삐냉, 멀라까, 사라왁, 사바 및 연방 영토가 입헌 군주로서 양 디-뻐르뚜안  아공을 받아들였으나, 효력을 발생하게 한 선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왕은 연방헌법 제40조에 따라 내각 또는 내각의 대표자(일반적으로는 총리가 내각의 대표자 역할을 담당한다)의 권고에 따라 통치하며,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와 관련하여 다양하고 복합적인 책임과 의무 사항을 지니고 있다. 입법적 권력에서, 말레이시아 국회는 국왕, 하원(Dewan Rakyat), 상원(Dewan Negara)이라는 3대 요소로 이루어지며, 국왕의 존재 없이 국회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국회의 모든 청원에 서명하는 것은 국왕의 의무이고, 국왕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주권의 정점으로 간주된다. 모든 국민은 종족과 종교, 문화와 신념의 차이와 관계없이 국왕을 인정하고 존경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국왕은 총리와 부총리 및 모든 법원을 관장하는(치안법원 제외) 법무부 장관을 위시하여 외국에서 임무를 수행할 대사들과 고등 판무관을 임명하는 권한을 갖는다. 또한 연방헌법 제41조에서 명시한 것처럼, 국왕은 말레이시아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사면권은 없으나 군법회의에서 시도된 모든 군사적 공격을 취소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 나아가 그는 연방헌법 제150조에 따라 국가의 위기 사항을 선언할 수 있으며, 또는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권고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지도자 회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지도자 회의는 연방헌법 제38조에 따라 국왕과 국왕 대리를 뽑는 최고의 왕립 단체이다. 국가 정책에 관한 사안을 정하기도 하지만, 지도자 회의의 주된 고려사항은 사면, 취소 및 중단, 말레이 관습 그리고 이슬람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일반적으로 지도자 회의는 최고법관 임명을 심의하기도 하며, 32조에 따라 공익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말레이시아 신임 국왕의 즉위가 향후 말레이시아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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