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일대일로 구상 하의 태국-중국 간 협력사업 분석

태국 Pongkwan Sawasdipakdi Thammasat University Lecturer 2021/10/26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1. 서론
2013년 일대일로 구상(BRI, Belt and Road Initiative)을 발표한 이래 중국은 지역간 연계성 강화를 위해 많은 국가들에 투자를 시행해왔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바로 맞닿은 동남아시아는 특히 BRI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으며, 중국은 지금까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10개 회원국 중 베트남을 제외한 9개국에서 투자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태국이 BRI를 토대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사업은 라오스의 비엔티안(Vientiane)-보텐(Boten) 고속철도선과 중국의 윈난(Yunan) 지역 및 중국 내 여타 고속철도선과도 연결되는, 태국 북동부의 신규 고속철도선 건설이라는 한 가지의 프로젝트에 국한되어 왔다. 하지만 중국의 지원을 받는 라오스의 비엔티안-보텐 철도선이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2021년 12월 개통을 앞두고 있는 데 반해, 태국 북동부 고속철도선의 진척은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태국이 지역간 육로 연결 구상에서 지니는 중요성, 그리고 중국과 태국 간에 형성된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BRI 관련 양국 간 협력이 그 규모와 심도 면에서 제한적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대중 협력의 제한성과 관련 프로젝트의 시행 지연이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와 국가 자율성 및 독립 기조 유지라는 또다른 목표 간의 절충을 도모하고자 하는 태국 정치 엘리트들의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중-태 고속철도선 프로젝트의 현황, 그리고 프로젝트 시행이 여태껏  지연되어온 이유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2. 태국 유일의 BRI 프로젝트: 북동부 고속철도
2014년 쿠데타 이래 태국이 친중 노선을 타고 있다는 일반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BRI 참여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왔으며, 지금까지도 북동부 고속철도선이 BRI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유일한 프로젝트이다. 일설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크라 이스트무스(Kra Isthmus) 운하 건설에 투자해 타이만(灣)을 안다만해(海)와 연결함으로써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는 기존 경로보다 거리가 짧은 대체 운송로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고 하며, 이와 같은 운하 건설은 중국이 추진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이나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1) 전략 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년간 수행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는 국가안보적 측면에서의 우려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운하 프로젝트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프로젝트 추진을 반대하는 이들은 운하가 건설되면 말레이족 무슬림 비중이 높은 태국 최남단 지역과 불교 신자가 많은 기타 지역 간 물리적 장벽이 세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며, 지금도 최남단 지역에서 민족과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분리주의 단체와 태국 정부간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운하가 건설되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중-태간 BRI 협력은 그 규모에서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상으로도 많은 지연을 겪어왔다. 북동부 고속철도선 건설을 위한 중국과의 양해각서는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정부가 2014년 9월에 체결하였으며, 당초 2016년 착공과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였다(Bangkok Post, 2014). 하지만 양해각서 체결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태국 정부가 건설을 완료한 부분은 총연장 609km 중 고작 3.5km 구간에 불과하다(Prachachart, 2021).

이처럼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이유는 양국 정부 사이의 다양한 의견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의견차는 투자액 분담에 관한 것으로, 양국 정부는 본래 프로젝트 시행을 위해 태국-중국이 각각 투자액의 40%와 60%를 분담하는 합작 특수목적회사(Joint Special Purpose Vehicle)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최대 투자자인 중국 정부는 북동부 철도선이 지나는 구간에 대한 개발권 이양을 요구했고, 태국 정부는 국내 정치적 반대 압력때문에 이와 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2). 결과적으로 태국 정부는 중국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포기하고 투자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두 번째 의견차는 차관 금리에 관한 것이다. 원래 태국 정부는 프로젝트 시행 자금 확보를 위해 중국 정부로부터의 차관에 관심을 두었으나, 중국이 제시한 3%의 금리는 태국이 예상했던 2% 미만의 저금리와 큰 차이가 났다. 오랜 협상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금리 인하를 거부하자, 태국은 프로젝트 자금을 다른 방식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상기한 바 이외에도 건설계획, 소요비용, 중국인 공학자 및 노동자 채용 문제에 관해서도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Crispin, 2016). 현 시점에서 태국 정부는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만 중국의 기술을 이용하기로 결정했으며, 공개입찰을 통해 사기업의 참여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계획 변경에 따라 고속철도선은 원래보다 5년 늦춰진 2027년에 완공될 예정이다(Prachachart, 2021).

하지만 프로젝트의 지연이 중국과의 협력 의지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양국간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긴밀해졌다. 2016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태국의 제1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했으며, 태국 해군은 그 활용도나 필요성에 대한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잠수함 2대를 수입하기도 했다(Bangkok Post, 2021). 이에 더해 프라윳 정부는 북동부 철도선을 중국 화물열차 운용에 사용하기 위해 운행속도를 250km/h에서 180km/h로 조정하자는 중국 정부기관의 제안을 한 때 수용하기도 했다. 다만, 운행속도는 다시 250km/h로 환원되었는데 이는 양국 정부가 투자 분담과 같은 세부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국간 관계가 더욱 친밀해졌음에도 태국이 BRI를 더욱 폭넓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고속철도선 프로젝트 시행에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 절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태국의 국내 정치, 특히 자신의 정치적 권위와 정당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 엘리트 집단들의 행동 양태로 인한 것임을 설명해보기로 한다.

3. 경제성장 달성과 국가 자율성 유지 목표의 양립
고속철도선 프로젝트의 역사는 쁘라윳 정부 출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 철도선 건설에 중국의 협조를 구한다는 방침도 아피싯 웨차치와(Abhisit Vejjajiva) 정부(2008-2011년)에서 처음 논의된 것이나, 중국 당국과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아피싯 총리가 국내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의회를 해산하면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2011년 선거에서 압승한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정부 또한 고속철도선 건설 추진 의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접근 방식은 이전과 달랐다. 잉락 정부는 중국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국제 공개입찰을 통해 고속철도선 건설에 필요한 고급 기술을 보유한 외국 회사 및 기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고, 철도선 건설 자금도 중국과의 공동 투자가 아닌 국내 자본을 활용해 조달하고자 했다.

프로젝트의 세부 추진 방식에는 다소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3개의 행정부 모두에서 고속철도선 건설 계획을 한결같이 추진했다는 사실은 각 정부의 통치 정당성 확보에 동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련분야 연구자들에 따르면 집권 엘리트들은 주로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다(Kuik, 2013, 2017, 2021; Lampton, Ho, and Kuik, 2020). 이 중 첫째는 민주적 선거, 법의 지배, 사회적 정의 실현을 통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 둘째는 경제 성장 및 발전의 달성을 통한 성과적 정당성 확보, 그리고 셋째는 민족주의 및 종교적 감정을 활용한 집단주의적 정당성 확보이다. 모든 집권 엘리트는 상기한 경로 중 하나 이상을 밟게 되지만, 정확히 어떠한 요소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는 정치적 요구나 대중적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4. 결론 및 향후 전망
고속철도선 프로젝트는 유권자들에 경제적 결실을 제공함으로써 태국 정부의 성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며, 잉락 정부와 쁘라윳 정부는 각각 프로젝트 추진과정의 세부사항 변경을 통해 자신의 주요 정치 기반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일단의 평가에 의하면 ‘고속철도선 프로젝트는 단순히 관련 지역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이는 해당 지역 유권자들이 고속철도선을 통해 지역경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설득을 받아들인 상황이기 때문이다’(Aiyara, 2019, p. 336). 투명성이 결여된 선거 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정부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을 차기 목표로 삼았는데, 이 측면에서 태국 최초의 고속철도선 건설 자체가 정부 시책 성공의 척도로 쓰일 수 있었고, 기존 북동부선과 신규로 추가된 동부선 모두를 완공할 수 있다면 국가적인 경제 성장도 도모할 수 있었다.

성과적 정당성 이외에도 태국 정부 전반, 특히 쁘라윳 정부는 태국의 자율성과 독립을 강조하면서 집단주의적 정당성도 확보하고자 한다. 태국인들은 지난 수 세기동안 외부 세력에 의한 통제를 받는 데 큰 경계심을 가져왔으며, 특정 정치 행태를 비난하는 데 ‘매국’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Sawasdipakdi, 2021). 프라윳 정부가 철도선 인근 토지 관련 권리를 양도해달라는 중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게 된 것도 이러한 대중의 반감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성과적 정당성과 집단주의적 정당성 간의 균형 유지에 더해 철도선 프로젝트의 지연을 불러온 또다른 요인은 관료집단의 소극성이다. 정부 관료들은 특히 공개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건설 프로젝트에 위법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바탕으로 중국 당국과의 협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Aiyara, 2019; Sawasdipakdi, 2021). 태국 법률은 공공 사업 조달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입찰 과정을 거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미래 쁘라윳 정부가 실각하고 난 후 이 점이 문제가 되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한 관료들은 “정부가 헌법 제 44조를 통해 프로젝트에 적법하게 참여한 공무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시행해야만 고속철도선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 공표하기도 했다(Aiyara, 2019, p. 341).

태국 정부는 2021년 4월, 동북부 고속철도가 2027년까지 개통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기존에 공지된 프로젝트 완수 시기가 계속해서 지연되는 사태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어왔다. 비록 공개 입찰 과정이 도입되고 추진 방향이 국내 자금원을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하며 집단주의적 정당성은 프로젝트 시행에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게 되었으나, 국내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정부가 본 프로젝트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BRI에 기반한 유일한 중-태 협력사업인 고속철도선이 과연 언제쯤 현실화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각주
1) (역주) 중국 본토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인도양 인접 거점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적/군사적 목적으로의 활용이 가능한 중심지를 육성한다는 전략으로, 각 거점을 진주로, 이들간의 연계성 확보를 진주알에 실을 꿰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2) 다만 중국 대사관은 자국 당국이 개발권 요구를 한 사실이 없으며, 일부 태국 언론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China Daily, 2016).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EMERiCs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