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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역사]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이나 국내연구자료 기타 최승진 동유럽발칸학 발간일 : 2008-12-31 등록일 : 2017-07-24 원문링크

4세기 동안 폴란드가 통치하던 서부 우크라이나 갈리치아는 1772년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놓인다. 갈리치아를 대표하는 도시 르비프는 19세기 중반이후 명실상부한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수도로 부상하게 되는데 이는 러시아의 압제와 합스부르그 정부의 자치라고 하는 외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인텔리겐치아와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며 견인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특히 1863년 11월 봉기 후 르비프의 민중주의자들은 폴란드 민족주의자와도 방향을 달리하며 계몽과 교육 등 실질적이며 독자적인 실력양성에 매진하였다. 또 이들은 엠스 법령 후 활동이 어려워진 동부 지식인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각종단체(Просвіт,НТШ)를 조직하였고 저널(Правда, Зоря, Діло, Житє і Слово)을 창간하면서 전 우크라이나 지식인, 언론인, 작가들의 창구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나아가 사상의 효율적 전파를 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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