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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우크라이나 위기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원인

우크라이나 Ulugbek Khasanov University of the World Economy and Diplomacy Associate Professor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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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위기는 러시아와 서방 진영 간 첨예한 대결의 장으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이라는 양대 진영간 분쟁 가능성이 날로 높아져 가는 상황이다. 이처럼 위기가 급속히 격화되면서 많은 서방 연구자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오늘날의 양국 관계와 과거 냉전기에 발생한 사태 간의 유사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독자적인 중립 유지가 불가능한 우크라이나는 냉전기에는 소련의 회원국이었다가, 소련 붕괴 이후에는 구공산권 국가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에 참여했고, 1994년에는 NATO가 주도한 평화를 위한 동반자(Partnership for Peace) 구상에도 가입했다. 이후 러시아의 세력 약화라는 기회를 잡은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왔는데, 2002년에 NATO-우크라이나 행동계획(NATO-Ukraine Action Plan)이 채택되는 등 소정의 성과가 있었지만, NATO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는 시도는 무산되어 왔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사회적 혼란기가 찾아온 것은 2013년 11월 무렵으로, 이후 2014년 3월부터는 크림반도의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되어 러시아 의회가 크림 반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요청을 승인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 악화에 우려를 표하던 러시아는 미국, EU, 우크라이나와 제네바 협약(Geneva Protocols)을 체결했고,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협정 내용 이행 여부 검토를 위해 군사행동을 일시 중단했다. 하지만 제네바 협정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양국 간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으며, 오히려 불신을 키웠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동부지역의 친러계 반군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및 영국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6만 명 규모의 방위군을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와중에 수도 키예프(Kyiv), 크림반도 및 동부지역에는 대규모 시위대가 발생해 인근 지역의 불안이 전보다도 가중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국내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한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 및 EU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상태였다. 이후 미국 국무부가 우크라이나의 친러계 반군이 러시아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던 와중에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어 크림반도 침공을 개시했으며, 각종 군사시설이 점령되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단독으로는 러시아군에 대해 제대로 된 반격을 수행할 수 없었다1).

오늘날 우크라이나라는 장기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미국과 러시아는 상대방이 제네바 협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2014년부터는 관련국 간의 이견 해소를 위해 이른바 노르망디 4개국(Normandy Four)이라 불리는 프랑스·독일·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회담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고, 2014년 9월 5일에는 러시아·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우크라이나의 3개 주체가 모여 전쟁 종식을 위한 민스크 협정(Minsk Agreement)을 채택하기도 했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완전한 종식은 요원한 과제가 되었다.

단순히 개별국가적 사안을 넘어 전 세계적 이해관계자들이 다수 결부된 국제적 차원의 문제로 비화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방 진영이 서로 간에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서방진영이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NATO 확장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러시아가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2).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의 역사적 배경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는 시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양국 간 긴장의 원인을 제공한 요인으로는 국경분쟁이나 이중국적 문제 등 각종 쟁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NATO의 동진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정체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정치·경제적 요소 이외에도 오랜 시간 동안 양국 관계에서 나타난 문화적 가치와 사고방식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일례로 현 러시아의 전신인 러시아 차르국(Tsardom of Russia)과 현 우크라이나 영토에 존재했던 카자크 헤트만국(Cossack Hetmanate)간 통일을 논의했던 1654년의 페레야슬라프 조약(Pereyaslav Treaty)은 양국의 지도층과 국민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나 마음가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문제는 매우 복잡한 배경 아래 놓여있다. 먼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많은 이들은 17세기부터 거의 360년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차르국 및 그 후신에 속해왔다고 인식한다. 1667년의 안드루소포 조약(Andrusovo Treaty) 당사국인 러시아와 폴란드는 드네프르강(Dneiper River)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일대를 분할해 이 중 현대 우크라이나의 북동부 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했으며, 러시아는 이후 3차례에 걸친 18세기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나머지 영토도 넘겨받게 된다. 참고로 러시아로 넘어가지 않은 영토인 갈리치아(Galicia) 지역의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772년에 획득해 1918년 1차대전 패전시까지 통치했다.

현대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오데사(Odesa) 및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소속된 역사가 길지 않은데, 이들 영토는 원래 18세기 말엽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종식과 함께 러시아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갈리치아를 비롯해 부코비나(Bukovina) 및 범카파르티아(Transcarpathia) 지역은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및 헝가리 영토였지만, 2차대전 당시 스탈린의 결정에 따라 소련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1939년에는 당시 폴란드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이 소련 치하 우크라이나와 통합되며 현대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이 형성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 사실들은 영토 측면에서 우크라이나가 시기별 러시아의 정세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영토 문제 이외에도 민족적 정체성에 따른 분열도 겪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정치·언어·민족문화적 차이에 더해 종교적 차이점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러시아 민족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는 반면, 우크라이나 민족에서는 러시아와는 독립된 교구를 지닌 정교회에 더해 16세기부터 유입된 가톨릭의 교세도 크게 나타난다. 이 같은 종교적 다양성은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많은 부분이 역사적으로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다양한 국가 소속이었던 역사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을 단순한 구소련 회원국이 아닌 중부·동부 유럽의 일원이라 여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
우크라이나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 루 마니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 주변국들은 우크라이나를 현재 영토에 기반한 주권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경우 우크라이나와 일부 영토분쟁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독립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이외에도 소련 치하에 들어간 적이 없는 중부·동부 유럽 국가들을 주요 근린국으로서 대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입장에서의 근린국에는 현재 CIS에 가입되어 있는 구소련 회원국들에 더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이 포함된다(조지아의 경우 원래 CIS에 가입해 있었지만, 러시아와의 군사 분쟁이 원인이 되어 탈퇴했다). 하지만 현재 CIS에 가입된 몰도바,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등의 나라들은 과거 소련이나 제정 러시아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공유하는 특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중부 유럽과 흑해 지역을 잇는 지정학적 핵심 위치에 있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이나 정체성 관련 문제에 역사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보여온 점도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 관계의 악화를 부추긴 핵심 요인 중 하나이다. 오늘날 러시아 내부에 존재하는 비러시아계 민족은 자치집단을 통치하는 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국내정세적 복잡성으로 인해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러시아가 주변국에 대한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점차 더욱 강경한 노선을 채택하며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에스토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여러 나라와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미국-캐나다, 미국-영국, 핀란드-노르웨이간 화합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현재 위기상황에 적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을 존중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현실적 여건상 러시아 정부가 이 같은 포용책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편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이커 틸리(Baker Tilly)는 우크라이나의 1차 에너지원 중 40%가량이 천연가스인 점을 지적하며, 우크라이나가 천연가스 필요량을 자체 보유자원으로 충당함으로써 분쟁 상대국인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현상을 타파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의 연간 가스 추출량은 지난 15년간 180~210억 입방미터 수준에 머물러왔지만3),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입안중인 에너지 전략에 따라 천연가스 생산량을 2030년까지 444억 입방미터로 확대해 국내 수요량의 90%를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4).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증산으로 에너지 자급을 실현할 수 있을 때까지 러시아 의존에서 탈피해 석유 및 가스 분야에서의 원자재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으며, 이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연계해 에너지 공급처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왔다5).

현재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구소련 영토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큰 영토와 세력을 보유한 국가이자 주요 무역주체로서 중부·동부 유럽에 큰 전략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지에 있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지정학적 다원주의와 러시아 팽창 봉쇄를 추구하는 데 있어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언급했듯, 오늘날의 많은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6).

위기의 주요 원인에 대한 분석
현재 위기를 촉발시킨 첫 번째 핵심 요인으로는 우크라이나와 결부된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냉전기 동구권을 철권 통치했던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는 공산권 붕괴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서의 현상유지를 도모했지만,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전 러시아 대통령의 통제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회원국들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당시 러시아가 골몰하던 최대 이슈는 재정위기에 더해 영토 안보 분야에서 일어난 서방 진영의 공세로, 러시아는 이 경험으로 인해 NATO와 EU에 의해 포위되어 자국의 영토 및 안보가 위협받을 가능성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접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안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고자 하는데, 이 완충지대에 우크라이나가 포함되는 것이다. 

둘째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는 서방세력의 영향력 확대도 경계하고 있다7). 러시아는 자국의 지정학적 앞마당으로 여기는 우크라이나 및 인접국들에서 절대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만약 인접국들이 NATO나 EU와의 동맹을 바탕으로 서방진영의 영향력을 늘리는 결과를 불러온다면 러시아의 입지가 필연적으로 약화된다는 점에서 러시아측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셋째, 우크라이나인 중 일부는 러시아 민족에 속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믿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국과 종교·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지역과 연계한다는 민족주의적 명분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다양한 소수민족8) 중에서도 특히 도네츠크 (Donetsk)나 루간스크(Luhansk) 등 동남부에 밀집해 있는 러시아계 민족을 돕는 데 관심을 두고 각종 군사·경제적 지원을 시행해왔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의 반러진영은 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이로 인한 혜택을 공유함으로써 민족적 분쟁을 종식시키고자 했지만, 지금까지는 그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넷째, 소련 붕괴 이후 서방진영은 분열된 상태에 있던 구공산권 진영에 민주주의, 자본주의, 인권 보호를 비롯한 다양한 개혁의 바람을 불러왔지만, 그 이면에는 러시아에 대한 견제 및 NATO의 역내 영향력 강화라는 목표도 존재했다9). 따라서 자국이 군사적으로 포위당할 위협을 인지한 푸틴 러시아 행정부는 NATO의 동진에 완강한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지만, 서방진영은 기존의 확장 정책에 별다른 수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점에서 서방진영의 군사협력체 확대 기조 또한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에 기여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째로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을 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파 정당과 시위대는 서방진영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무역이나 기술지원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따라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일부 희생해서라도 미국과 EU에 친화적인 대외정책을 펴고자 했다10). 하지만 이들의 행보는 인접국에서의 영향력 축소를 두려워하던 러시아를 더욱 자극하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석유·가스·곡물 등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자 한 의도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시도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 등을 위기 심화 요소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결국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의 제재를 감수하는 길을 택했다. 피해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외교적 대결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러시아의 내전 개입으로 인해 러시아 치하 크림반도, 도네츠크 지역, 루간스크 지역, 그리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라는 4개의 세력으로 찢어진 상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기 2개 지역의 정부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크림반도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만약 NATO가 구소련 회원국을 신규 가입대상에서 배제하라는 러시아측 요구에 동의하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국가의 독자적 입지가 위협받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 반대로 서방세력이 러시아측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군사행동 등을 통해 자국의 동유럽 국경 인근에 도네츠크나 루간스크와 유사한 친러계 완충국가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시도할 공산이 높다. 이 점에서 러시아가 상기 2개 정부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를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단순한 우호 세력의 정당화를 넘어 동유럽의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 각주
1) “Ukraine Crisis: Parliament Abolishes Anti-Protest Law,” BBC News, January 28, 2014,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5923199
2) “Ukraine Crisis Timeline,” BBC News, April 23, 2014, http://www.bbc.com/news/world-middle-east-26248275
3) Attraction of foreign investment in the development of domestic gas production enterprises as necessary preconditions for energy independence of Ukraine / Vol. 5 No. 2(19) (2014): Production reserves. Economics and management of enterprise. Development of productive forces and regional economy http://www.bakertilly.ua/media/Gazovydobuvannya_v_ukrayini.pdf
4) Ibidem
5) UNIAN Energy Weekly Issue July 10, 2011, №4, (004)
6) Chris Ernesto The Eurasian Chessboard: Brzezinski Mapped Out “The Battle for Ukraine” in 1997 http://www.globalresearch.ca/the-eurasian-chessboard-brzezinski-mapped-out-the-battle-for-ukraine-in-1997/5373707
7) William Tompson. "Putin's Challenge: The Politics of Structural Reform in Russia." Europe-Asia Studies 54, no.6 (2002): 933-57; Redman, Nicholas. "Russia's Breaking Point." Survival 56, no.2 (2014): 235-44.
8) Ibidem
9) Wallander, Celeste. "Russian-US Relations in the Post Post-Cold War World." Last modified April 23, 2014. PDF. 56 Granville, Johanna. "After Kosovo: The Impact of NATO Expansion on Russian Political Parties."
10) Ibid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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