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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2021년 선거를 둘러싼 칠레 정치의 새바람

칠레 Diego Talias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 -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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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주변 국가들에 비해 놀라운 수준의 발전을 이룩한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적 모범 사례로 꼽히며, 또한 역내 최고 수준의 경제적 안정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Deutsche Welle 2019). 그간 칠레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장해왔는지 보여주는 지표로는 빈곤율의 감소와 일인당 GDP의 증가를 들 수 있는데, <그림 1>에서 보이듯 국내 일인당 GDP는 20세기 초부터 크게 증가해 오늘날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반열에 들었으며, 최근 몇 년간 약간의 감소폭을 경험할 때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그림 1> 라틴아메리카 주요국 일인당 GDP(단위: 달러, 현재가치)



하지만 이러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이른바 ‘칠레식 모델’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하는데, 그 배경 중 하나는 불평등이 증가하고 극소수만이 성장으로부터 이익을 얻어 경제적 계층화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칠레는 기존에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동력을 상실해 가는 성장 모델에 아직도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무분별한 자원 추출, 부의 집중, 그리고 극심한 불평등이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장모델의 변혁에 관한 논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Matamala 2021).

정치적 측면에서 칠레는 역내 주요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최근 수 년간 정부의 무책임한 행보로 인해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기도 하다(Luna 2016).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선거 참여율인데, 칠레선거관리위원회(SERVEL, Servicio Electoral de Chile)의 자료를 보면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가 전체의 46%에 불과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로 인해 칠레가 경제적으로는 양호하더라도 정치 영역에서는 향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경고해왔다.


상기한 문제들이 국제적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크게 터져 나온 것이 바로 2019년 10월의 시위 사태이다.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수 개월동안 계속된 대규모 시위의 물결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으며, 국가 역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된 시위는 지난 수십 년간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의 높은 폭력성을 띠었다(Palacios-Valladares 2020). 본 시위에서 자주 사용된 ‘30페소(당시 칠레의 버스요금 인상치로, 한화 약 45원)가 아닌30년을 위해서(It’s not for 30 Pesos; it’s for 30 years)’라는 슬로건은 본 사태가 단순히 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국내의 경제 모델 및 정치 엘리트에 대한 근본적 반발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9년 말에 발생한 시위사태로 인해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대통령은 본래 11월 개최 예정이던 APEC 회의를 취소하고 뒤따른 12월에 예정되었던 기후변화 정상회담 COP25(25th Conference of the Parties) 주최 또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칠레는 이 두 국제 행사를 주최함으로써 자국을 라틴 아메리카의 모범적 발전 사례로 홍보하려 했으나, 정부측이 시위대에 상해 및 보복 목적으로 불필요한 무력을 동원한 공격을 자행한다는 비난이 제기되면서 역으로 국격의 실추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Amnesty International 2019). 시위 발생 직후 사회 통제를 위해 마치 독재정권 시절과도 같이 거리로 다시 나선 군대, 그리고 죽거나 다친 시위대의 모습은 현대 칠레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신헌법과 정치적 변화
고강도 시위와 의회 내부 논의가 수주간 계속된 이후, 정부와 시위대측이 11월에 피노체트 독재정권(1973~1990년) 시기 만들어진 기존 헌법의 교체 절차 개시에 합의하면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시위가 마무리되었다. 자임 퀸타나(Jaime Quintana) 당시 상원의장은 이른 아침에 열린 의회 회견에서 ‘평화와 신헌법을 위한 합의(Agreement for Peace and the New Constitution)’를 발표하였으며, 본 합의는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주요 정당이 승인하였다. 그 내용에 따르면 신헌법은 기존 헌법 내용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 백지에서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신헌법 제정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국민투표는 본래 2020년 4월에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정이 동년 10월로 연기되었다. 본 투표에서 신헌법에 찬성한다고 답한 이들에게는 신헌법 제정의 절차에 관한 의견도 물었는데,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는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표단에 의한 이른바 제헌회의, 그리고 직접선출 대표에 의회 의원들도 포함되는 혼합식 회의가 있었다. 투표 결과 신헌법 제정안이 약 78%의 찬성으로 가결되고 그 방법으로서는 예상 밖의 큰 표차(79% 대 21%) 로 직선대표 기반 제헌회의가 선정되었다. 

투표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헌법 제정 반대  진영의 경우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와 결부된 반면, 제정 찬성 진영에는 이념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Melendez, et al. 2021). 어찌되었든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제헌회의를 구성할 대표 선거를 2021년 5월에 실시하기로 하였는데, 이미 의회 의원, 시장, 그리고 도지사(사상 최초로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되며, 이전까지 대통령이 임명해온 시장을 대체)에 대한 선거가 예정된 2021년은 이로써 매우 많은 선거 일정을 경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5월 제헌의회 구성원 선거 결과, 총 155석 중 거의 3분의 1에 달하는 48석이 2019년 시위에 참여한 무소속 후보들에 돌아가면서 기성 정당들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사전조사가 기성정당의 쇠퇴와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라는 결과를 예상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 결과는 특기할 만한 것이다. 무소속 후보 이외에 두 개의 거대 야당권에서도 당선자가 많이 나왔는데, 공산당 및 신좌파 정당들이 주도한 ‘존엄에의 찬성(Apruebo Dignidad)’ 정당연합에서 28명, 그리고 민주주의 이행 이후 정권을 잡았던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 출신 정당들이 중심이 된 ‘찬성 리스트(Lista del Apruebo)’ 정당연합에서 25명이 선출되었다. 반면 피녜라 대통령이 지지한 ‘가자, 칠레(Vamos por Chile)’ 정당연합은 37명의 당선자밖에 내지 못해 특정 조항 거부권 행사에 필요한 3분의 1 의석에 크게 모자라는 성적을 냈다(BBC News 2021). 

본 결과에 대해 한 전문가는 칠레가 새로운 세력의 포용 및 정치적 경쟁 강화라는 형태로 자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크게 높이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하며, 특히 성별 균등 의석분배, 원주민 의석 할당, 그리고 무소속 후보 리스트 허용이라는 선거체제상의 세 가지 제도적 혁신이 투표 결과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평했다(Palanza 2021). 본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회의는 기성정당에의 불신 및 반엘리트주의의 영향으로 무소속 대표의 비중이 늘어나 기존 의회와는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긍정적 변화를 위한 기회임과 동시에 정치세력의 파편화 및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성 또한 안고 있다(Negretto 2021).

또한 7월에 열린 대선 경선에서도 젊은 후보들이 기성 정치인이나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높았던 후보들을 제치고 선전하면서 이와 같은 칠레 정치의 변화 경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일례로 ‘존엄에의 찬성’ 연합 내 경선에서는 광역전선(Frente Amplio) 소속이자 학생회장 출신인 35세의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후보가 공산당의 세르히오 자두에(Sergio Jadue)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는데, 현직 의원인 보리치 후보는 사석에서 신헌법 제정을 위한 합의에 서명함으로써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중도우파연합 경선에서도 세바스티안 시첼(Sebastián Sichel) 후보가 49%를 득표하여 호아킨 라빈(Joaquín Lavín, 32% 득표), 마리오 디보르데스(Mario Desbordes, 10% 득표), 이그나치오 브리오네스(Ignacio Briones, 9% 득표) 등 지명도가 높은 이전 정부 인사들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시첼 후보는 현재 45세로, 피녜라 행정부에서 사회 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장관 및 국영 상업은행인 방코 델 에스타도(Banco del Estado) 은행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무소속 변호사이자 이전까지 정치적 지명도가 낮았던 새로운 인물이 집권 정당연합의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차기 선거와 미래의 변화
피녜라 정부를 대체할 의회 의원 및 대통령은 11월 21일의 1차선거 및 12월의 2차 결선에서 선출될 예정이다. 이번 대선에는 위에서 소개한 보리치 후보 및 시첼 후보에 더해 사회당과 기독민주당을 비롯해 1990~2010년, 그리고 2014~2018년 집권했던 콘세르타시온의 전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중도좌파연합인 ‘유권자 연합(Unidad Constituyente)’ 경선에서 선출된 야스나 프로보스테(Yasna Provoste) 후보도 참가한다. 이 밖에도 극우정당인 공화당(Partido Republicano) 소속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 후보도 대권에 도전한다. 현재 이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림 2>와 같으나, 지난 몇번의 선거와도 같이 그 누구도 최종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Suárez Cao 2021).

 <그림 2> 대선 후보 지지율
* 자료: Activa – Pulso Ciudadano1)  


대선 일정에 더해, 이미 신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제헌회의 또한 앞으로 몇 달간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 될 예정이다. 세계에 유래 없는 양성 균등 의석배분이 시행된 본 회의의 의장을 맡은 인물은 마푸체(Mapuche)족 출신 활동가인 엘리사 롱콘(Elisa Loncón)이며, 제헌의회는 앞으로 9개월간(추가로 3개월 연장 가능) 신헌법 내용을 작성해 2022년 중순에 예정된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의 승인을 구하게 된다. 지금은 절차 관련 규정 및 각 주제별 위원회 구성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후 대통령의 지나친 권한을 축소하는 정부체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본회의가 뒤따를 예정이다.

차기 의회 및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지난 2년간 칠레에는 이미 기성정당 출신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등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가 엘리트 수준에서의 변화 또한 야기함에 따른 것일 수 있으며(Luna 2021), 이를 바탕으로 향후 입법 권한의 변화 및 칠레 정치의 개혁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칠레식 모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특히 고도의 불평등과 같은 일부 핵심 측면에 대한 논의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한편으로 외교정책의 경우 지금껏 대선후보들의 우선순위에서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는데, 정치적 담론이 국내 문제에 매몰되면서 여러 국제적 사안들이 소외되고 있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논의된 바 있는 외교 관련 사안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위기나 무역 정책의 일부 측면에 불과하다. 다만, 차기 선거 이후의 의회 구성이 아직 칠레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에 대한 비준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Sahd 2021). 아직 선거 결과와 신헌법의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 및 칠레의 정치적 변화 맥락을 살펴볼 때 향후 외교정책상 개방 무역 전통에 대한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각주
1) 대선에 관한 다른 다양한 시각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chile.activasite.com/wp-content/uploads/2021/08/Pulso_Ciudadano_Informe_Agosto_Q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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